울산 김도훈 감독. 사진은 지난 6월 6일 포항 스틸러스전 당시의 모습.

울산 김도훈 감독. 사진은 지난 6월 6일 포항 스틸러스전 당시의 모습. ⓒ 한국프로축구연맹

 
리그 우승을 향해 질주하던 프로축구 선두 울산 현대의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울산은 8일 홈인 울산 문수축구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15라운드 경기에서 수원 삼성과 0-0으로 비겼다. 울산은 선두(승점36·11승3무1패)를 유지했으나 한 경기를 덜 치른 2위 전북(승점35)이 대구를 2-0으로 제압하면서 승점차가 1점으로 좁혀졌다. 울산의 연승 행진이 중단된 것은 5경기 만이다. 득점에 실패한 것은 지난 6월 28일 전북전 0-2 패배에 이어 올시즌 두 번째였다.

울산에게는 여러 모로 아쉬운 경기였다. 수원전은 올시즌 K리그 관중 입장 재개 이후 울산이 홈팬들 앞에서 치른 첫 경기였다. 울산은 올시즌 34골로 리그 팀득점 1위를 달리고 있으며 3골 이상의 다득점을 뽑아낸 경기만 여덟 차례나 될만큼 화끈한 공격력이 돋보이는 팀이다. 따라서 올시즌 리그 10위에 그치며 부진하고 있는 수원을 상대로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실제로도 전체적으로 경기를 주도한 것이나 득점찬스를 더 많이 만들어낸 것은 울산 쪽이었다.

하지만 울산은 경기 내내 수비를 두텁게 걸어잠근 수원의 골문을 좀처럼 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울산 선수들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비치기 시작했다. 경기가 좀처럼 잘 풀리지 않은 탓인지 무리하거나 거친 플레이도 나왔고 불리한 판정에 나올 때마다 심판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울산 선수들의 입장에서 보면 판정에 불만을 느낄 만한 장면이 몇 차례 있었다. 수원 진영 안에서 울산 주니오와 경합하던 수원 수비의 핸드볼로 보이는 장면이 VAR 판독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고 넘어간 상황이 있었다. 공중볼 경합이나 몸싸움 시에 울산 선수들에게 좀 더 자주 휘슬을 부는 듯한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수원 쪽에서 보기에도 VAR 판독까지 이어졌던 수원 한석희와 울산 박주호의 박스안 터치 장면 등 몇 차례 아쉬운 상황들이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다. 경기 중 심판의 판정에 100% 만족하는 선수들은 아무도 없다. 무엇보다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는 최대한 빨리 잊고 경기에 집중하는 게 프로다운 태도다.

하지만 울산 선수들은 경기 종료가 임박할수록 수원보다는 오히려 심판과 싸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의 '워스트'는 단연 울산 수비수 김태환이었다. 김태환은 이미 경기 초반부터 심판 판정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후반에는 이미 경고가 한 장 누적된 상황에서 수원 김민우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불필요한 동작으로 상대를 넘어뜨리며 추가 경고를 받아 퇴장당했다.

이 장면은 한창 결승골을 위하여 공세를 펼치던 울산의 팀 분위기에 결정적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김태환은 원래부터 거칠기로 유명한 선수이기는 하지만, 이날 이 모습은 선수가 자제력을 잃을 경우 오히려 자신의 팀에 해를 끼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김태환이 이미 전반부터 심판을 향하여 선을 넘는 행동을 하는 등 불안한 조짐을 보였음에도 주변에 이를 제지하거나 다독이는 리더십을 발휘한 동료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심지어 울산은 무승부로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뒤끝을 드러냈다. 몇몇 선수들이 심판을 에워싸고 항의를 이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정승현이 또 경고를 얻었다. 경기중도 아니고 끝난 뒤에 경고가 나온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심지어 정승현은 대기명단에만 있었고 이날 경기에 출전도 하지 않은 선수였다. 쓸데없는 항의로 심판을 자극해 경고를 얻어 다음 경기까지도 팀전력에 지장을 주는 자충수를 둔 셈이다. 이때는 심판들도 다소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고, 선수들과 일촉즉발의 분위기로 흐르기도 했다.

그나마 김도훈 울산 감독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한 끝에 더 이상의 불상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김 감독은 지난해 판정에 대한 불만으로 시계까지 풀고 심판을 위협했다가 K리그 상벌위에 회부되어 징계를 받았던 적이 있다.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당시 김 감독의 눈빛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날도 김 감독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그라운드로 달려나가자 많은 이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대형사고를 우려하여 옆에서 강하게 만류하는 모습도 나왔다.

하지만 다행히 김 감독의 목표는 심판이 아니라 선수들을 자제시키는 것이었다. 김 감독이 심판과 울산 선수들 사이를 가로막고 강한 어조와 제스처로 선수들에게 돌아갈 것을 지시하자 그제야 분위기가 진정됐다.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진도 김 감독이 올바른 대처를 했다고 칭찬했다.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은 김 감독이 좀 더 일찍 선수들에게 판정보다 경기에 집중하라고 주문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점이다.

김 감독은 경기후 인터뷰에서도 "판정에는 승복해야한다"며 담담하게 반응했다. 선수들을 강하게 뜯어말린 장면에 대해서도 "심판한테 항의 해봤자 팀에 손해다. 경기가 끝난 이후 감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필요가 없다"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성숙한 대응을 보였다. 만일 사령탑마저 당시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또 다시 시계를 풀었거나, 심판 판정에 책임을 돌리는 식으로 대응했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컸을 것이다.

시즌은 아직 길다. 때로는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경기도 있고, 판정에 불만이 생기는 상황도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대처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때일 수록 냉철함이 필요하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동요할 때 강하게 분위기를 휘어잡고 평정심을 찾게 해줄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다. 울산에게는 승점 2점을 손해본 것보다도 더 많은 교훈을 느꼈어야할 경기였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김도훈감독 울산현대 김태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