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발렌시아·오른쪽)이 25일(현지시간) 스페인 발렌시아의 메스타야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리메라리가 헤타페와의 홈경기에서 상대 수비를 뚫고 돌진하고 있다.

이강인(발렌시아·오른쪽) ⓒ AFP/연합뉴스


 
한국축구의 유망주 이강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발렌시아와 2022년 6월까지 계약되어 있는 이강인의 향후 거취를 두고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강인은 발렌시아에서도 최고의 유망주로 꼽혔지만 주전 자리에 안착하진 못했다. 지난 시즌에만 감독이 세 명이나 거쳐갔음에도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발렌시아에서는 통산 1군에서 35경기 출장 2득점, 출전 평균시간도 34.1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이강인의 이적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강인과 발렌시아를 둘러싼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발렌시아는 다음 시즌 하비 그라시아 신임 감독 체제로 대대적인 리빌딩을 예고하고 있다. 많은 주전급 선수들이 정리 대상 명단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인같은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겠다는 구단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발렌시아의 구단주이기도 한 피터 림은 이강인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며, 지난 시즌에도 코칭스태프에게 이강인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의 출전기회를 늘릴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인은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 출신인 페란 토레스와 함께 발렌시아의 미래로 꼽혔던 선수였다. 그런데 토레스는 구단의 재계약 요청을 거부하며 갈등을 빚다가 최근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토레스를 놓친 발렌시아로서는 자연히 시선이 이강인에게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또다른 최고 유망주인 이강인마저 잃는다면 리빌딩의 취지가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발렌시아는 지난 5일 2020-21 시즌에 착용할 새 유니폼을 공개했는데 이강인이 메인 모델로 나섰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장면이다. 보통 유니폼 모델은 팀 내에서 상징성이 큰 선수를 내세운다. 이강인이 아직까지 발렌시아에서의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이강인을 이적대상으로 분류했다면 이런 결정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구단이 이강인을 다음 시즌 팀 전력의 핵심선수로 분류한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발렌시아 지역신문인 <수페르데포르테> 등 현지 언론들은 이강인이 다음 시즌 발렌시아의 주전이자 공격수로 포지션 변경을 통해 중용될 가능성을 전망하기도 했다. 이강인은 청소년 시절부터 공격형 미드필더가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성인 무대에서는 아직 확실한 주포지션을 잡지 못했다. 

그동안 발렌시아는 일자형 4-4-2 포메이션을 주 전술로 사용해 이강인을 활용할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이강인은 중앙 미드필더부터 좌우 윙어까지 여러 포지션에서 테스트를 받아야했다. 이강인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투톱의 처진 공격수로 기용하거나, 아니면 다이아몬드형 4-4-2의 꼭짓점에 위치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것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물론 이강인의 발렌시아 잔류와 내년 시즌 주전 경쟁을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발렌시아의 리빌딩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고 벌써부터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이강인이 자칫 정치 싸움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맨시티로 이적한 토레스가 최근 자신과 이강인이 발렌시아 1군 선수단 내부에서 왕따를 당했다고 폭로하여 논란이 된 것을 주목할 만하다. 토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마르셀리노 감독이 경질당했을 때 몇몇 선수들이 자신과 이강인을 원흉으로 지목하며 소외시켰다는 것이다.

마르셀리노 감독은 재임 시절 이강인을 크게 중용하지 않았고 유망주 중심의 리빌딩을 원했던 피터 림 구단주의 불만을 샀던 것이 경질의 배경으로 알려졌다. 이는 마르셀리노 감독을 따르던 선수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이강인과 토레스가 타깃이 되었다는 것이다. 토레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강인같은 어린 선수가 발렌시아에게 그동안 버텨온 게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토레스는 특히 선수단 내 영향력이 큰 주장 다니 파레호를 실명으로 거론하여 저격하기도 했다. 토레스는 "파레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처음 내가 1군에 들어갔을 때 나는 17세였다. 1군 합류 이후 파레호에게 인사를 건네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토레스의 인터뷰가 알려지며 국내 팬들은 파레호에게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다만 스페인과 발렌시아 현지 여론은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도 감안해야한다. 일단 왕따 의혹부터가 토레스의 일방적인 주장인만큼 걸러들어야할 필요는 있다. 토레스는 맨시티 이적과정에서 많은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발렌시아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반면, 파레호는 주장이자 꾸준히 핵심 선수로서 활약하며 발렌시아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파레호가 리빌딩을 추진중인 발렌시아 선수단내에서 정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지만, 발렌시아 팬들 사이에선 파레호를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발렌시아 팬들은 이강인의 후원자인 피터 림 구단주의 구단 운영 방침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만일 발렌시아가 이대로 주축 선수단 정리를 강행하고 나서 다음 시즌 성적이 좋지 않거나, 이강인의 출전기회가 늘어났는데 활약이 기대에 못 미치기라도 할 경우, 고스란히 그 부담을 이강인이 짊어져야할 수도 있다. 이강인으로서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팀내 파벌이나 내부 갈등의 중심에 서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이강인의 선수 이미지나 축구에 집중하기 위한 환경 측면에서도 좋을 게 없다.

이강인에게는 앞으로 1~2년이 성인 프로선수로서의 연착륙과 앞으로의 성장세를 가늠할 중요할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꾸준히 경기에 출장할 수 있으면서 심리적으로도 축구 외적인 문제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될 안정된 환경이 절실하다.

발렌시아의 상황은 아직도 변수가 너무 많다. 한 시즌 더 발렌시아에 남아서 주전경쟁에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적에 대한 가능성도 최대한 열어두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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