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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2020년 5월 25일 치 지면에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이 없어 부끄럽다>라는 논설이 실렸다. 필자는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우대현 준비위원장이었다. 뒤이어 사흘 뒤인 5월 28일 치 같은 신문에는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이 없어 부끄럽다 2>가 게재됐다. 글을 쓴 이는 박진관 <영남일보> 문화부장이었다.

두 사람은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이 없다'는 사실에서 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일까? 두 사람의 글에는 대략 두 가지 이유가 밝혀져 있다. 먼저, 인구 10만의 소도시에도 독립운동기념관이 있는데 250만이나 되는 대도시에 그것이 없으니 부끄럽다고 했다. 그리고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지사들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전자는 비교에서 느낀 부끄러움이다. 소도시에 견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성의와 실천력 부족으로 훨씬 모자라는 결과에 봉착해 있는 데서 받는 현실적 부끄러움이다. 비교는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주는 충분조건인 것이다.

이에 비해 후자는 관념적 부끄러움이다. 왜 부끄러운지 객관적으로 논거를 둘 수치는 없다. 엄혹한 일제 강점기 시절 풍찬노숙의 고통 속에서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치열하게 일제와 맞선 독립운동가들에 견줄 때 자신의 삶이 너무나 안일하다는 데서 받는 양심상 부끄러움이다.

양심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도덕의식이다. 사람은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되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박완서가 1974년 발표한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이를 잘 묘파해준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화자 '나'는 지금 여학교 동기회에 참석한 뒤 귀가 중이다. 중년 여성인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 만남에서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본다. 고상한 척하지만 내면은 물질 숭배 사상으로 꽉 찬 현대인의 물신주의를 확인한 것이다.

1974년 박완서 소설이 최근 다시 떠올랐던 이유

호화롭게 살아가는 경희는 부끄러운 척하는 가식이 일상화돼 있다. 희숙과 영미는 '나'의 경제적 형편과 남편 직업 등에만 관심을 보인다. 동기회 모임은 서로 인간적 교감을 나누는 자리가 전혀 아니었다. 본심은 자기 자랑에 있으면서 겉으로는 부끄러워하는 체하는 표리부동으로 무장한 '속물들 시간'이었다.

이윽고 나는 남대문시장을 지나간다. 그때 일본인 관광객을 인솔하는 가이드의 말을 우연히 듣게 된다. 가이드는 "여기는 소매치기가 많은 지역입니다. 소지품 잘 챙기셔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얼굴로 치솟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대학 입학 무렵에 읽었던 이 소설을 거의 반세기 만에 회상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난 7월 27일 한국소설가협회가 발표한 성명이 문득 떠오른 탓이다. 이식(1584-1647)은 <택당선생별집>에서 소설을 '탄설(誕說)'이라 했고, 이덕무(1741~1793)는 <청장관전서>에서 '공담(空談)'이라 했다. 모두 사실이 아닌 희한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윤한홍 미래통합당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기영 차관에게 "추 장관 아들 수사와 관련해서 차관 발령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추 장관이 “소설을 쓰시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윤한홍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달 27일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기영 차관에게 "추 장관 아들 수사와 관련해 차관 발령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추 장관이 “소설을 쓰시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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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장관과 야당 국회의원들 사이에 오간 "소설 쓰네", "소설 잘 읽었다" 식 공방도 상대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것을 두고 한국소설가협회는 "소설 쓰는 것을 거짓말하는 행위로 빗대어 소설가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준 정치인들에게 엄중한 각성을 촉구한다"라고 성토했다.

소설가협회 "자긍심에 상처"... 나는 오히려 성명이 부끄럽다

정치인들끼리 벌인 "소설 쓰네" "소설 잘 읽었다" 식의 공방이 소설가의 자긍심에 상처를 준 행위일까. 나는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소설가협회가 이런 성명을 발표한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다만 나의 부끄러움에는 사회적 의미가 없으므로 양심 문제와는 무관하다. 시민들이 소설가 집단을 얼마나 하찮게 볼 것인가에 싶어서 발생한 아주 사적인 부끄러움일 뿐이다. 비교 끝에 깨달은 부끄러움도 아니고, 관념적 반성 과정을 거쳐 얻은 부끄러움도 아닌, 나의 체면에 손상이 올까 걱정해서 일어난 이기적 부끄러움이다.

사람들이 한국소설가협회와 같은 인식을 했다면 모파상은 사회에서 매장이 됐을 터이다. 모파상은 1850년 8월 5일 출생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이 2020년 8월 5일이니 꼭 170년 전이다. 모파상이 남긴 소설 중 대중에게 널리 읽힌 작품은 단편 <진주 목걸이>와 장편 <여자의 일생> 등이다.
  
 <여자의 일생> 프랑스 작가 모파상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
 <여자의 일생> 프랑스 작가 모파상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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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목걸이> 주인공은 가난한 공무원의 아내 마틸드다. 그녀는 장관 초대 만찬에 갈 때 남의 이목을 생각해 친구로부터 진주목걸이를 빌린다. 그런데 그것을 그만 잃어버린다. 그녀 부부는 빚을 내어 똑같은 진주목걸이를 사서 돌려준 후 10년 동안 파출부를 하고 퇴근 뒤 아르바이트를 해 빚을 갚는다. 그런데 어느 날 길에서 마틸드는 진주목걸이 주인과 마주친다. 한눈에 봐도 삶에 지친 모습이 역력한 마틸드를 위로하며 그녀는 "그 진주목걸이 가짜였어!"라고 말한다.

<여자의 일생> 주인공은 잔느다. 귀족의 딸로 태어난 잔느는 열두 살부터 열일곱까지 수도원 기숙사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는다. 해안 별장에서 꿈 많은 시간을 보내던 중 단정한 얼굴에 지성적 눈매가 돋보이는 줄리앙을 소개받고, 마침내 그와 결혼하게 된다.

그런데 줄리앙은 형편없는 친구였다. 그의 관심은 온통 처가의 재산뿐이었다. 게다가 하녀 로잘리를 임신하게 해 아이를 낳고, 백작 부인과 불륜을 즐긴다. 잔느는 로잘리를 집에서 내보낸다. 그러던 중 줄리앙이 백작에게 죽임을 당한다.

잔느는 외아들 폴에게 온갖 정성을 쏟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아들 또한 아버지를 닮아 끝없는 방탕에 빠진다. 끝내 폴 때문에 모든 재산을 처분한 잔느는 오두막에서 생활하는 처지가 된다. 잔느는 찾아온 로잘리를 맞아 함께 산다. 이때 며느리가 죽고 손녀가 그녀에게 보내진다. 잔느는 손녀를 붙들고 미친 듯이 입을 맞춘다.

겉모습을 중시하지 말고 본질을 평가해야

<여자의 일생>에도 <진주 목걸이>와 동일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잔느가 줄리앙과 사귀게 되는 시초가 그의 출중한 외모에 있다는 사실이다. 줄리앙의 뛰어난 외양은 마틸드에게 있어 진주 목걸이에 해당한다. 즉 두 소설은 허상을 벗어나지 못한 두 여인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모파상은 본질에 천착하는 대신 피상적인 겉모습에 가치를 부여하면 인생이 불행해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모파상은 파국을 자초하는 소설 속 주체를 여성으로 설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려는 목적은 없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진주 목걸이>의 남편이 고초는 아내와 마찬가지로 겪고, <여자의 일생> 남편이 죽임을 당하는 게 그 증거다. 여성단체가 여성비하를 이유로 모파상을 비난할 일은 없어 보인다.

마찬가지로, 법무부 장관과 몇 야당 국회의원들 사이의 "소설 쓰시네" "소설 잘 읽었다" 공방은 애당초 소설가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줄 사안이 되지 못한다. 소설가들 자긍심에 상처를 준 것은 한국소설가협회 자신이라고 본다. 한국소설가협회가 성명을 발표한 행위 자체가 이기적 창피함에 기반한, 희한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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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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