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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근 유재석, 이효리, 비가 뭉쳐 만든 혼성 그룹 '싹쓰리'가 큰 화제입니다. 덩달아 유두래곤, 린다G, 비룡이라는 세 사람의 '부캐'도 주목받고 있는데요. 이들처럼,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나만의 부캐를 찾아 활동하고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신입 그룹 싹쓰리 20세기 아이돌 싹쓰리의 활약이 즐겁다.
▲ 신입 그룹 싹쓰리 20세기 아이돌 싹쓰리의 활약이 즐겁다.
ⓒ 싹쓰리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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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그룹 '싹쓰리'의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소싯적 좀 놀아 봤다면, 엄마한테 등짝깨나 두들겨 맞게 했던 통 넓은 힙합 바지와 이마 아래로 양쪽에 한 가닥씩 늘어뜨리는 게 포인트인 더듬이 모양의 촌스러운 헤어스타일까지, 싹쓰리가 올여름 고스란히 재현해낸 20세기 감수성은 '그땐 그랬지!'부터 '그땐 그랬어?'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각종 음악 방송 순위는 물론 음원 차트 1위까지 팀명대로 '싹쓸이' 하고 있는 이들의 성공은 이효리, 비, 유재석이라는 슈퍼스타의 본캐를 대신하는 '부캐'(린다-G, 비룡, 유두레곤)들의 활약 덕분이다. 

'부캐'란 온라인 게임상에서 사용하던 용어로, 자신이 원래 사용하던 계정이나 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부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차츰 일상 생활로 사용이 확대되면서 요즘엔 '평소의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네이버 지식 백과 참고).

어린아이부터 어르신 세대에 이르기까지 고루 인지도가 높아 국민 MC라 불리는 코미디언 유재석이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라는 '부캐'를 내세워 트로트 음원을 발표하는 과정이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통해 방송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난 이후로 '부캐'는 이제 대중들에게도 제법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이로써 '본캐'만으로는 그동안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넘치는 끼와 열정을 갖춘 멀티테이너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의 장이 열린 셈이다. 대중들은 본캐와는 다르게 다소 서툴고 어색하지만,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초짜 부캐를 향해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활약에 열광하고 있다.

어느새 본캐가 돼버린 부캐

학원 강사로 벌써 십 년이 넘게 잔뼈가 굵은 내 본캐는 사실 작가 지망생이었다.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등단을 꿈꾸며 습작을 해온 내가 학원 일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공모전에 당선될 때까지 잠깐만, 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이십대 중반에 강사 일에 처음 도전했다.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는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제일 컸다. 낯을 가리고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부터 빨개지는 소심한 성격의 내가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 앞에서 강의는커녕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버벅거릴까 걱정스러웠다.

지금 나는 아이들 앞에서 목소리도 크고 자신감도 넘치는, 이제는 "쌤!"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십삼 년 차 열혈 강사다. 내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가끔은 버겁고, 또 가끔은 후회스러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재미있고 보람차다. 그러나 아직도 작가 지망생이라는 내 부캐는 학원 강사라는 본캐 안에 숨어서 또 다른 때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 나는?드라마 대본 작법 강의를 들으러 다닌다.
 요즘 나는 드라마 대본 작법 강의를 들으러 다닌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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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드라마 대본 작법 강의를 들으러 다닌다. 나와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 중에는 나처럼 평범한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도 있고, 영화판이나 광고계에서 한가락 하던 실력자의 본캐를 겸손하게 감추고, 글쓰기 공부 자체를 즐기고 싶어 오는 열정적인 문학도도 있다. 그러니까 내가 공부하는 그 시간 그 강의실 안은 열정 만랩 부캐들의 집합소인 셈이다.

사실 나는 십 년이 넘게 학원 강사 일을 하면서도, 전업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각종 공모전에 미끄러지길 수십 차례. 몇 달에 걸쳐 내가 영혼을 갈아 넣고 쓴 소설을 아무도 뽑아주지 않고 읽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마치 내 영혼 따윈 어떻게 되든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느껴져 더 서럽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 즐거움 중 하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이 투명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열정과 욕심, 패기와 오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징글징글하게 공모전에만 매달리던 내가 이제는 잘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의 경계와 한계가 분명하게 들여다보인다. 그렇게 어느 순간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났더니, 글쓰기 자체를 이제는 전보다 훨씬 더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욕심도, 집착도 없이 

나는 여전히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드라마 대본을 쓰고 소설을 고친다. 가끔은 이렇게 고마운 지면을 얻어 기사도 쓰고 서평이나 영화 리뷰도 쓰고 있다. 나의 부캐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또 성장 중이다. 언젠가는 때가 오리라, 생각하면서. 꿈을 꿀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고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고 무엇보다 내가 즐거이 기꺼이 몰입할 수 있는 본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가끔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었다'라는 농담으로 누군가의 열정을 무모한 치기로 몰아세울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서툴지만 그럼에도 도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세상 모든 부캐를 응원하고 싶다.

시키는 일이나 잘해야지, 나이가 몇인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스스로를 부정하는 말은 이제 좀 내려놓고 자신의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먹고 사는 게 바빠 오래전에 놓아버린 꿈일 수도 있고, 문득문득 생각나는 설렘일 수도 있고, 어쨌든 지금 당신의 지친 그 마음 한편에는 당신이 꺼내어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열정 만랩의 부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본캐만으로 만족하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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