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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 관심의 결핍
 불안, 관심의 결핍
ⓒ Anemone123,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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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 - 헬렌 켈러

최근에 화제가 된 트윗이 있다. 삶이 너무 힘들어 죽을 결심을 하고 지리산에 오른 어느 날, 생면부지의 사람들로부터 생각하지 못한 관심과 도움을 받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내 인생의 어느 지점에도 이 청년처럼 절망감에 지쳐 있을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런데 그 절망감을 견디게 해준 사람들이 나에게도 있었을까? 

딱 떠오르는 극적인 기억은 없었다. 그러나 추억의 조각을 찬찬히 뒤져보니 내 뇌리 저편에 저장되어 있던, 간혹 마음에 병이 생길 때마다 나를 치유해주던 면역력 같은 기억들이 있었다.

무더운 방학, 아이들을 불러모으던 선생님

'훌륭한 스승'에 대한 미담은 영화, 드라마, 책으로 제법 많이 다뤄졌다. 그러다보니 어쩌면 우리는 그런 스승을 인생에서 한 번쯤은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돌이켜 보라. 과연 우리 인생 속에서 진짜 존경을 오롯이 담은 '스승'이 존재 하는지. 주변에 질문을 던지면 그런 스승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내 인생에는 딱 한 분이 있었다.

중학교를 입학할 즈음 우리 집안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 나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끼니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사춘기 소년에게 가난은 불편함을 떠나 '부끄러움'이었고, 난 학교에서 존재조차 미미한 우울한 소년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니 처음으로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기본적인 가정환경 질문에 난 평범한 중산층인 양 했다. 그렇게 난 선생님에게 내 신상을 감추거나 포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날 분단장(당시에는 그런 게 있었다)을 시켰다. 아무런 존재감 없이 지내던 나에게 분단장이란 완장을 채우신 거다. 급우들은 물론 나조차도 의아했다. 국어 선생님이셨던 담임은 본인 수업시간에 유달리 나를 지목하고 책을 읽어보라 시키셨고, 가끔 교무실로 불러 과자 같은 주전부리를 주시면서 남아서 준다는 핑계를 대셨다. 

여름방학이 되자 선생님은 나에게 학교에 나와 공부하라 하셨다. 솔직히 공부는커녕 나에게 '내일'이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상황에서 별로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관심만큼은 뿌듯하고 기뻤다.

방학 첫날 교실에 나와보니 예상 밖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급우 몇 명에 공부는 담쌓은 요즘 애들 말로 '일진'이라 불리는 급우들까지 보였다. 우리가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동안 선생님은 운동장에서 혼자서 공을 차며 운동을 하셨다. 그러니 다들 도망가고 싶었지만 아무도 도망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여름의 더위와 교실의 갑갑함을 버티는 우리를 위해 선생님은 가끔 수박을 사 오셨다. 선생님이 수박을 대충 깨서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천방지축 사춘기 소년들은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공부 잘하는 놈, 못하는 놈, 주먹 쓰는 놈, 모두 같이 엉켜 낄낄거리며 즐거워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우리 반 말썽꾼들은 급우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괴롭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선생님의 관심 덕분에 암울하기만 했던 그 시절, 그래도 중3 학교생활만큼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당시 난 학교 글짓기 대회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상을 받았다. 이 글을 쓰면서 돌이켜 보니 어쩌면, 지금 이렇게 기고라도 할 수 있는 것은 그때 선생님의 덕분인 듯싶다. 

"어차피 누가 해야 한다면..." 잊히지 않는 민수의 미소

그런 좋은 기억이 또 하나 있다. 십수 년 전 피시방 사장 시절,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온 민수(가명)의 첫인상은 부정적이었다. 목이 늘어진 허름한 면티, 덥수룩한 더벅머리에 시커먼 피부, 왠지 성실과는 담쌓았을 것 같았다. '호'가 아닌 '불호'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민수는 자영업자들이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정말 보석 같은 청년이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사장들은 자정을 넘어 가게에 걸려오는 전화에 트라우마가 있다. 그 시간에 전화가 온다는 것은 뻔한 거였다. "사장님 심야 알바가 잠수 탔어요~", 그 전화를 받은 사장은 설사 수백 킬로 떨어진 곳에서 가족과 휴가를 즐기던 상황이더라도 가게로 달려가야 했다.

한마디로 시간, 장소, 사정 따위와 관계없이 바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 24시간 자영업자의 숙명이었다. 그리고 십수 시간의 철야 근무를 알바가 구해질 때까지 해야 했다. 당연히 나도 그동안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에 종종 처했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해보니 민수가 일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민수는 심야 근무자가 아니라 자정에 퇴근하는 오후 근무자였기 때문이다. 민수에게 말했다.

"왜 니가 이 시간에 있냐? 심야 알바는 어디 갔어?"
"녀석이 잠수 탔어요..."
"뭐야? 그럼 니가 계속 밤샘 근무한 거야? 나에게 전화를 했어야지!"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한다면 사장님보단 젊은 제가 하는 게 맞는 거잖아요, 전화 드리면 마음만 불편하실 것이고요~."


그러면서 녀석은 쓱 미소를 지었다. 당시에 받았던 감동은, 이전의 내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규모가 작은 영세 자영업은 직원 하나 때문에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할 만큼 내외부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그러나 우리 가게는 민수 같은 알바 덕분에 수년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다. 덕분에 당시 난 회사란 온실에서 이제 막 벗어난 초보 사장이었지만 경영자로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그가 내게 보여준 '헌신'과 '진심'은 가끔 나 자신을 반성하게 했다.

삶이 각박하다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돈, 명성 따위가 아니다. 사실 가족, 지인, 동료로 지칭되는 '사람'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한 심리학자 아들러는 "이 우주에 아무도 없이 나 홀로 존재한다면 '고민'도 없다"라고 했다. 그러하기에 삶의 힘든 여정을 견디게 해주는 존재 또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명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이 책 <불안>에 이런 문장을 넣었을 것이다.

"강도가 창문을 깨고 라디오를 훔쳐가는 역설적인 봉사를 해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달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후에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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