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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가 시작되면서 집밥이 늘고 있습니다. 집밥 노동을 포함, 요즘 벌어지는 주방의 변화를 '나의 주방이야기'로 다뤄봅니다.[편집자말]
코로나19로 집콕 생활이 오랜 기간 이어지다 보니 슬슬 그 여파가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시작한다. 운동량 부족으로 늘어나는 뱃살과 과부하된 가사노동에 점점 아파지는 손목으로 말이다. 뱃살은 미뤘던 등산으로 어찌해 보겠는데, 가족들 끼니 챙기는 일은 어떻게 헤어날 방법이 없다.

남편이야 주로 밖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해도, 온라인 수업하느라 집에 있는 아이들 삼 시 세끼 차려 내는 게 이토록 힘에 부치는 일이었던가 새삼스럽다. 지인들의 평이 좋은 볶음밥과 칼국수 같은 반조리 냉동식품과 동네 배달음식을 적절히 이용하는데도 말이다. 

무심히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도 손쉬우면서 맛있어 보이는 메뉴가 눈에 띄면 바로 캡처해서 저장해 둔다. 요긴하게 바로 써먹을 것처럼 말이다. 아침 먹고 치우고, 소파에 앉아 한숨 돌릴라 치면 "엄마, 점심은 뭐예요?" 큰 애가 묻는다. 어찌어찌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볼일 좀 보려 컴퓨터 앞에 앉으면 지나가던 작은 애가 묻는다. "엄마, 오늘 저녁엔 뭐 맛있는 거 없어요?"라고.

끊임없는 아이들의 끼니 채근이 괴롭다 못해 점점 무서워지는 지경이 되어 간다.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가지 않는 한, 맛도 좋고 건강한 집밥 메뉴 걱정은 탈출구 없이 돌고 도는 현실판 뫼비우스의 띠가 아닐까 싶다.  

삼겹살이나 고등어처럼 프라이팬에 굽기만 하면 맛있는 한 끼가 보장되는 메뉴는 고민이 덜하다. 하지만 매 끼니를 삼겹살과 고등어로만 채울 수는 없는 일. 시금치, 숙주, 생취, 도라지 등의 나물 반찬은 아이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해 냉장고만 들락거리다 결국은 내가 먹어치워 버리기 일쑤다.

그나마 오징어나 낙지로 볶음을 하면 금세 없어지니 다행이다. 종종 닭으로 백숙과 찜을 하고, 오랜만에 한 번씩 잔치국수와 들깨 수제비까지 하다 보면 어느새 또 메뉴의 밑천이 바닥난다. 할 수 없이, 시간 오래 걸리고 손 많이 가서 선뜻 시도하지 않는 메뉴들, 오이소박이나 장조림, 잡채, 김밥 같은 것들도 큰 맘먹고 해 본다.

여기까지도 다 해 보고도 또 뭘 해 먹나 막막해질 때 디폴트처럼 언제나 머리에 떠올리게 되는 반찬들이 있다. 바로 어릴 적 엄마가 해주셨던 소박한 재료의 감자채 볶음과 황새기구이가 그것들이다. 
  
집밥 하다 생각난 엄마표 반찬들
 
     감자채 볶음
  감자채 볶음
ⓒ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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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엄마는 일하시느라 늘 바쁘셨다. 주중은 물론, 그 시절엔 토요일도 반공일이라고 낮 12시까지 일을 하셨기 때문에 오후 1시나 되어서야 집에 오셨던 것 같다. 엄마 오기만 목을 빼고 기다리던 10살 안팎의 고만고만한 배고픈 세 자녀에게 퇴근한 엄마가 후다닥 해주셨던 메뉴 중 하나가 바로 감자채 볶음이다.

감자를 주 재료로 약간의 양파와 당근까지 채를 썰어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굵은소금 두 꼬집 정도 흩뿌려준 후 뒤적뒤적 뒤지개로 휘저어 익혀 먹는 요리이다. 볶아진 감자채도 고소하지만, 우리들이 가장 좋아했던 방식은 감자채를 볶은 냄비나 프라이팬에 밥과 고추장을 크게 한 숟가락 넣어 감자채와 함께 썩썩 비벼먹는 방법이다.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타기 직전까지 바삭하게 익은 진한 갈색의 얇은 감자채 덩어리까지 박박 긁어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았다. 거기에 운 좋게 시원한 열무김치 두 어 젓가락과 참기름 서너 방울까지 함께 비벼 먹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다른 반찬 하나 없이, 감자채 비빔밥만으로도 "음, 맛있네!"를 연발하며 숟가락을 바삐 놀리던 그때가 엊그제만 같다. 정신없이 바쁜 엄마였기에 늘 아쉽고 부족했던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그 감자채 볶음 비빔밥을 양껏 먹고 나면 왠지 조금은 채워진 듯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맛과 정경이 생생한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해주셨던 반찬 중에 아직도 생각하면 입 안에 군침이 도는 또 한 가지는 바로 황새기 구이이다. 황새기는 황석어라고도 불리는데 생선 조기의 새끼를 이르는 말이다. 가만히 기억해 보면 우리 집엔 볏단에 꼬아 꾸덕꾸덕 말린 황새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의 고향이, 지금은 쇠락했지만 해산물, 수산물 상업활동의 중심지였던 강경포구이다. 그러다 보니 각종 생선들을 어린 시절부터 즐겨 드셨던 터이고, 타 지역에 살게 돼도 자주 신경 써서 구해 두셨던가 싶다. 

"엄마 하면 떠오르는 요리 뭐니?" 물었더니
 
     황새기 구이
  황새기 구이
ⓒ 이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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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간혹 아침상에 연탄불에 구운 노르스름한 황새기를 댓마리 올려주셨다. 그럼 어린 우리들은 물론이고 아버지까지 없는 살림에 황새기 구이를 찬으로 올려내는 엄마의 살림 솜씨에 감탄하시며 맛나게 드셨던 것 같다.

엄마가 생선살을 발라 자식들 숟가락에 돌아가며 놓아주시면, 짭조름하면서 기름지지 않은 고소한 생선 맛에 밥 한 그릇 뚝딱은 순식간이었다. 다섯 식구에 대여섯 마리에 불과할 뿐이니 생선들은 금세 가시만 남게 마련이었지만 버려지는 건 거의 없었다.

엄마는 우리가 먹고 남긴 가시와 머리통까지 입 안에 넣고 오도독 씹어 드셨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그저 신기한 눈빛으로 엄마의 오물거리는 입을 올려다보곤 했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 나도 자식을 길러보니 그게 다 엄마 마음인 줄 이제야 조금 헤아려진다. 

엄마는 아시는지 모르겠다. 내가 반찬 걱정할 때 종종 감자채 볶음과 황새기 구이를 요긴하게 써먹는 줄 말이다. 메뉴로 뿐이겠는가. 늘 아쉬운 엄마의 사랑을 채워주었던 마음의 양식이었기에 더욱 귀한 추억들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음을 말이다. 

열심히 집 밥 해먹이다가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본다. "너네는 나중에 커서 엄마 하면 떠오르는 요리가 무엇일 것 같니? 그런 게 있긴 하니?" 딸이 대뜸 말한다. 

"음, 뭐 미역국? 글쎄요... 그때그때 다른데, 최근엔 김치볶음밥인 것 같아요."

듣자 하니 입맛에 맞는 메뉴가 한둘 있긴 한데, 사랑까지 전달되어 마음에 남는 요리는 아직까지는 없다는 말로 들린다. 에휴, 코로나로 열심히 집 밥 해 먹여 손목이 저리도록 아픈 건 나만의 추억이 되려나 보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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