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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수돗물 유충 발생과 관련해 인천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들이 청라배수지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7월 22일 수돗물 유충 발생과 관련해 인천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들이 청라배수지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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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유충 사태로 그동안 정부가 내세운 '고도정수처리한 수돗물=더 안전하고 깨끗하다'란 수식에 금이 갔다. 환경부가 조사를 해보니, 전국 49개 고도정수처리시설 중 7개에서 깔따구 유충이 발견됐다. 인천 공촌·부평정수장과 경기 화성, 김해 삼계, 양산 범어, 울산 회야, 의령 화정 등에서 활성탄(숯) 여과지에 깔따구가 알을 깐 것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기술의 힘'만 강조한 정부의 수식에 반론을 제기했다. 고도정수처리한 수돗물이 더 안전하고 깨끗하기 위해선 적절한 인력배치와 관리 인력의 전문성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수돗물 정수처리 고도화, '맛과 냄새' 때문?
 
백제보 수문이 닫혀 있을 때는 녹조만 가득한 죽음의 강이었다.
 백제보 수문이 닫혀 있을 때는 녹조만 가득한 죽음의 강이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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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처리정수장은 표준처리정수장(취수장→착수정→혼화지→응집지→침전지→여과지)에 액화가스를 기화시켜 오존(O₃)을 만들어 주입하는 오존접촉과 활성탄(숯) 여과 공정을 추가한 것이다. 지난 21일 환경부는 수돗물 유충 사태에 대한 브리핑에서 고도처리정수장을 도입한 목적과 효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도입목적) 표준처리 공정에서 제거가 어려운 미량유해물질(맛냄새물질, 페놀류, 농약, 유기화합물질 등) 제거를 위해 사용. 국내 정수장에서는 주로 수돗물 불신을 유발하는 맛냄새 물질(여름철 조류 발생에 따라 유입되는 지오스민, 20MIB) 제거용으로 사용중. 맛냄새물질 등 미량유해물질에 대한 수돗물 불신이 높은 급수 지역 내 상시 고도처리가 필요한 경우에 도입

(도입효과) 입상활성탄 도입 시 맛·냄새물질 약 91~97% 제거 가능하며, 오존처리와 병행시 100% 제거 가능. 일반적으로 표준처리공정으로는 맛냄새물질 30~80% 제거"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고도정수처리 시설을 도입한 시기는 1990년대이다. 지난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등 낙동강에서 여러 건의 수질오염사건이 발생하면서 '안전하고 깨끗한 수돗물'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이에 1994년 1월 15일 국무총리실 주관하에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질관리 개선대책'을 발표, 1994~2006년까지 사업비 4359억(국고 2366억 원)을 들여 전국의 21개 정수장에 고도정수처리 시설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지난 2016년 '제3차 전국수도종합계획'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고도처리정수장 도입률을 70%까지 확대할 계획도 발표했다. 2018년 기준 고도처리정수장 도입률은 약 40%이다. 도입률은 전체 정수장 시설용량에서 고도처리정수 시설용량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기 때문에, '모든 표준처리정수시설을 고도처리정수장으로 바꾼다'란 말과는 다르다. 현재 전국의 정수장은 총 485개이며, 이 중 49개가 고도처리정수장이다. 나머지는 표준처리정수장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난 22일 환경부는 '그린 뉴딜'의 일환으로 오는 2024년까지 광역정수장 12개에 4300억 원을 투입해 표준정수처리시설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고도정수처리시설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도정수처리 수돗물의 안정성 담보할 수 없는 이유
 
박남춘 인천시장이 6월 17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수돗물 피해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6월 17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수돗물 피해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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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전문가들은 수돗물 정수처리 '고도화'에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수돗물 수질 등급이 낮은 지역만 고도화를 추진하고, 시설 운영·관리를 위해서는 전문성 있는 인력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번에 깔따구 유충이 발견된 인천 공촌정수장이다. 이곳은 지난 2019년, 3년 3개월 만에 총 390억 원을 들여 고도처리정수장으로 탈바꿈했다. 같은해 붉은 수돗물 사태로 한 차례 홍역을 앓았지만, 또다시 운영관리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순환보직으로 인한 전문성 결여도 전문가들이 수돗물 정수처리 고도화에 반대하는 이유다. 고도정수처리장은 표준정수처리장보다 일하기 까다롭다. 가령, 잔류오존의 농도 관리기술이 부족해 활성탄지에서 인체에 해로운 오존이 공기 중으로 과도하게 비산되어 작업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 지난 2010년 계명대학교 연구진이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자치법규 도입방안 연구'에 따르면 오존은 생체막과 조직을 구성하는 지질 및 단백질, 핵산 등을 공격한다는 보고가 있으며, 오존에서 유래하는 하이드록실 라디칼(hydroxyl radical, 활성효소의 일종) 등 다른 활성물질에 의한 독성도 우려된다고 했다.

활성탄 여과공정도 다르지 않다. 활성탄이 제 기능을 하려면 역세척이나 교체 시기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지만 현재 시스템으로는 쉽지 않다. 환경부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상수도사업본부 직원 중 기술직 인원은 2010년 8152명에서 2018년 6324명으로 8년간 약 1800명이 줄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정수시설의 '고도화'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2019년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에서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고도처리정수장(광역)을 추진하면서 '고도정수처리시설 도입 및 평가지침' 중 수질조사와 대안검토, 모형실험 등 사전절차를 적절히 수행하고 있지 않다고 문제 삼았다. 또, 환경부가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 사업에 대한 엄밀한 성과관리와 객관적인 성과평가를 하고 있지 않다며,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도 조언했다.

더 안전하고 깨끗해졌다는데, 국민 음용률은 7%

"2025년까지 고도정수처리시설 늘리겠다는 그런 계획인데, 지금 고도정수처리시설은 꼭 필요합니다. 왜 그러냐면 냄새라든가 그런 것도 제거하고..."

지난 21일 환경부의 수돗물 유충 브리핑에서 "고도정수처리장이 꼭 필요한가?"란 질문에 신진수 환경부 물통합정책국장이 한 대답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고도처리정수장은 표준처리정수장보다 물 10만t(30만 명이 하루에 쓰는 양) 기준 200억 원의 설치비가 추가로 든다. 게다가 활성탄이 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선 2~3년에 한 번씩 전체 활성탄을 교체해야 하는데, 약 20억~30억 원이 든다.

정부가 고도정수처리시설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했으나 우리나라의 수돗물 음용률은 굉장히 낮다. 지난 2013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과 프랑스, 캐나다 등 11개 회원국에서 평균 51%의 응답자가 '수돗물을 그대로 먹는다'라고 대답했다. 반면, 한국 응답자는 5%로 꼴찌를 기록했다.

설문조사도 다르지 않다. 수돗물네트워크와 수돗물홍보협의회가 지난 2017년 전국 성인 1만 2196명을 대상으로 '수돗물 먹는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는 응답이 7.2%에 불과했다. 수돗물 정책에 대한 정부의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한편, 지난 21일 환경부는 활성탄지에서 유충이 발견된 정수처리장의 고도정수처리과정을 중단하고 표준처리공정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태그:#수돗물유충사태, #수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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