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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지난 총선 때 투표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욕망에, 아니 정확히는 그 위선에 신물이 나서다. "남을 단죄할 땐 도덕주의의 칼을 쓰고, 자신의 처신은 도덕을 초월하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다"거나, "자신의 욕망엔 충실하면서도 대중의 욕망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니 그 속내를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강준만 교수의 꽤 오래 전 비판이 그야말로 실감나는 시간이었다. 주변에 앞으로는 투표하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까지 했다.

그 장담을 흔들리게 만드는 책을 최근 만났다. 보좌관이 쓴 책이었다. 그것도 16년 동안이나 국회에서 일한 사람이었다. 박선민 보좌관(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이 쓴 책의 제목은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후마니타스)이었다.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더 많이, 그들의 욕망이나 위선을 목격했을 것임에 틀림없을 사람이다.

인간의 모든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곳
 
태영호 "전대협 이인영, 주체사상 전향했나"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가 과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경력을 언급하며 '사상 전향' 여부를 질의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국회는 왜 늘 싸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정치의 본질을 간과한 것"이라며 "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 과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지난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사상 전향" 여부를 질의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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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국회의원일 줄은 몰랐다. 그 후배일 줄도 몰랐다. 성실한 후배는 단 한 번도 의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불평은커녕 자기 의원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자랑하기 바빴다. 그런데 후반기 상임위원회를 바꾼다고 의원이 '나가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른 의원실을 알아볼 말미도 주지 않았다. 2년 동안 함께 일했지만 해고는 하루아침이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보좌관마저 '뜨악'하게 만들었던 그 국회의원은 누구일까. 이뿐만이 아니었다. "환경을 생각한다며 텀블러를 늘 휴대하고 다니는 의원의 텀블러를 씻고 따뜻한 커피를 보충하는 일 정도는 약과"라는 또 다른 국회의원 이야기도 있었다. 저자는 "정치에서는 사회의 모든 갈등이 집합되고, 인간의 모든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동시에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못한 인간들이 마지못해 합의한 정치 체제"라고 강조했다. "부도덕에 대한 완벽한 심판, 사회악의 완전한 척결, 위험의 원천적 제거, 완전무결 공평한 사회와 같은 바람은 실현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가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민주주의에서, 그래서 정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토론하고 협상해 결과를 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와 정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는 왜 늘 싸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정치의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 과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문재인 행정부가 갈등을 대하는 방식  

뜨끔했다. 솔직히, 그 방식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늘 싸우고만 있는 것처럼 기사를 쓴 사람 중 하나였다. 나 같은 사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갈등을 다루는 방식', 그 목격자로서의 통찰이 책에 가득했다. 저자의 문제 의식은 입법부는 물론 행정부의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또는 "최선을 다해 합의가 가능한 입장을 찾는" 정치가 과거 16대 국회 시절보다도 오히려 후퇴했다는데 있다.
 
"20대 국회와 16대 국회의 움직임은 차이가 크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국회는 교섭단체 간 합의에 따라 여야 11명의 의원으로 '남북정상회담 관련 결의안 기초 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특위에서 제안한 '남북정상회담 개최 지지 결의안'은 남북 정상회담 전인 6월 9일 원안 가결됐다. 당시 의석 분포는 한나라당이 133석, 새정치국민회의가 115석, 자유민주연합이 17석으로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지난 2018년 9월 문재인 행정부가 '평양 공동선언'과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합의서'를 국회 동의 없이 비준한 것을 두고 "평양 선언의 의미를 단순한 선언적 합의로 스스로 격하시킨 것"이라며 "결과를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하지 않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설사 선언적 합의라 해도 이를 되돌릴 수 없는 공고한 공적 합의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이어지는 설명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국회 비준은 현 단계의 문제이지만, 미래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중략) 대통령이 남북 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데,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를 얻은 남북 합의서에 대해 효력을 정지시키고자 할 때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즉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효력을 정지시키지 못하게 함으로써 '안정적 이행'을 담보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여당과 야당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체제다. 만약 대통령이 바뀜에 따라 합의의 효력이 즉각 정지된다면 남북 간에 신뢰는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공적 대화와 사적 대화
 
 (노이다<인도>=연합뉴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도착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2018.7.9
 저자는 책에서 "기업이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자 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는 박근혜 행정부 때 확인한 바 있다"면서 "경제정책은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와 추진할 것이 아니라 정당과 입법부를 통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행사되면 대의 민주주의는 왜곡된다"는 경고도 함께 남겼다. 사진은 지난 2018년 7월 인도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 현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만났을 당시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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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문제 의식은 국회 안으로도 향하는데 특히 16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공동 발의 인원 현황을 분석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 결과를 보면 16대의 경우는 15.6명, 17대 16.8명, 18대 13.4명, 19대는 11.6명(당론 발의 1건 제외), 그리고 20대는 13.6명이었다. 또한 공동 발의 최소 인원인 10명으로 발의한 경우는 16대에서는 없었는데 비해 20대에 이르러서는 15건이나 됐다고 한다. 

저자는 "가능한 더 많은 의원실로부터 공동 발의를 받고자 했던 노력이 사라지고, 최근에는 10명 이상이라는 법안 발의 최소 요건만 갖춰 발의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면서 "친한 의원실들끼리 '어깨 걸기'로 공동 발의를 한다, 어깨동무를 한 것처럼 서로서로 상대방의 법안에 대해 공동 발의를 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적 대화'로 법안 제·개정이 편의주의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확실히 정치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의 표현대로 정치는 공적 대화다. 잘 싸워야 하고 갈등을 잘 다뤄야 한다. 저자가 그 예로 든 것이 2006년 5월 최순영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표 발의해 다음해 국회를 통과한 '장애인의 교육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다. 무려 229명이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한나라당에서는 특히 나경원 당시 의원이 릴레이 서명에 앞장섰다. 저자는 "아마 전무후무한 기록일 것"이라며 이렇게 평한다.
 
"10명만 넘으면 발의할 수 있는데 왜 이런 노력을 기울였을까? 발의 후 법안을 제정하려면 결국 온힘을 다해 여야 모두를 설득해야 한다. 최 의원은 논란 과정을 앞당겨 발의 단계에서부터 설득한 것이다. 하나의 법안에 이렇게 노력을 기울이면 지금처럼 많은 법안이 발의될 수도, 발의될 필요도 없다. 사실 법을 제·개정하는 과정은 모두 이래야 하지 않나 싶다... (중략) 물론 비효율적이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하지만 법안의 제·개정은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
 
 박선민 보좌관이 최근 내놓은 책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부제는 '좋은 정치를 위한 국회 사용 설명서'다.
 박선민 보좌관이 최근 내놓은 책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부제는 "좋은 정치를 위한 국회 사용 설명서"다.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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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정책 전문가가 되지 않아도 권력을 향유할 수 있다면 대체 어떤 정치인이 '알아주지 않는' 노동에 힘을 쏟겠는가"라며 "결국 시민들은 '의제 설정'에 참여할 권리를 박탈당한다"고 경고한다. 그 책임은 언론에도 있다. "그 책임성이 정치인 못지 않지만 곧잘 비난에 앞장선다, 자신들의 책임은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정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지적에 대꾸하기 어려웠다. 그의 말대로 "정치에서 배제된 사람이 많을수록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정치는 권력관계의 반영이다. 자원은 균등하지 않다. 소득, 지위, 자산, 사회적 관계망 등 자원을 많이 가진 집단은 정치적 비용을 기꺼이 지출한다. 그들에게 정치는 확실한 투자처다. 자원이 부족한 시민들의 의사는 선택적으로 사장된다."

그런 점에서 "법조계 출신 정치인이 지나치게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입법부는 '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곳'이지 '법률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많아야 하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정치 교육의 중요성도 그래서 강조했다. "유럽에서 20대 의원의 등장이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은 청소년기 정치 교육이 탄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OECD 국가 중 상당수가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는 등 정치 활동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환기시켰다.

이처럼 책에는 정치의 가능성을 높이는 제언들이 가득하다. 시민이 정치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적을수록 '좋은 정치'라는 저자의 확고한 믿음 또한 분명하게 전달된다. 아무리 그들의 욕망과 위선에 신물이 나더라도, 어떻게든 그들을 감시하고 이용해야만 한다는 쪽으로 자꾸 생각이 기울었다.

끝으로, 저자가 17년차 정치인인 자신을 향해 던진 것으로도 보이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정치의 가능성은 그것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통해 확장된다."
 
 '사회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둔 나라에서 진보정당의 길을 찾고자 했던 박선민 보좌관은 2010년 돌연 스웨덴으로 향했다. "무상교육·무상보육, 우리가 하면 현실화 할 수 있을 거 같다"며 "진보정당을 힘 있는 정치세력으로 키워주기만 하면 스웨덴 만들어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박선민 보좌관. 2013년 박 보좌관은 앞서 스웨덴 복지체계를 둘러본 경험을 담은 <스웨덴을 가다>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일명 "도가니법"을 통과시키는데 일조한 숨은 주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마이뉴스 자료 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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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 좋은 정치를 위한 국회 사용 설명서

박선민 (지은이), 후마니타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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