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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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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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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쉴 새 없이 터지는 굵직한 뉴스에 묻힌 중요한 결정이 있었다. 7일 국무회의에서 ILO 핵심협약 중 일부를 비준하기로 한 것이다. 이 핵심협약이라는 것은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국가라면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기본적인 노동권을 간추린 것으로 여덟 개가 있다. 이 중 한국은 무려 절반,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두 개와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두 개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이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중국, 마셜 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뿐이다.

30년간 무시해 왔던 것을 지금 와서 왜?

1991년 대한민국이 ILO에 가입한 이래 장장 30년간 어떤 정부든 ILO와 국내외 노동계의 줄기찬 요구에도 불구하고 협약 비준을 거부해 온 것은 압박의 강도가 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정부가 비준에 나서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나름 노동계의 입장을 반영하여 협약 비준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해당 협약 미비준이 한-EU FTA 위반사항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EU는 이 문제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항의했고 전문가 패널까지 소집해 본격적인 분쟁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집요하기로 이름 높은 EU가 결국 한국을 FTA 위반국가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 마찬가지로 같은 노동기준이 적용되는 한미 FTA 등에도 연쇄 파급효과를 일으키게 될 것이며, 통상국가의 정부 입장에서 이러한 사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자국의 노동자들이 수십 년간 요구해도 무시하던 것을 부리나케 노사정협의체에 올리고 협약 비준에 나서게 된 계기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이 협약을 비준하게 된다면 반드시 개정해야 하는 제도 중 하나가 바로 흔히 공익이라 불렸던 현행 사회복무요원 제도다.

현행 사회복무요원은 노동시간이나 장소 등에 대한 선택권 없이 민간인 신분으로 2년간 주 40시간의 노동이 강제된다. 굳이 법률적인 분석을 하지 않아도 강제노동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강제노동 금지협약, ILO 29호 협약은 말 그대로 자유의사가 배제된 강제된 노동(compulsory labor)을 금지한다는 것인데, 모든 강제노동 금지를 천명하면서도 다만 몇 가지 예외를 인정한다.

순수한 군사적 성격, 즉 징집된 현역군인이나, 시민의 의무로 하는 노동, 교도소에서의 노동, 재난 상황에서의 노동, 지역사회에서의 의무로 하는 경미한 노동, 총 다섯 항목이 있는데 사회복무요원은 어느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시민의 의무로 하는 노동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회참여 성격의 시민봉사에 가까운 것으로 징집시스템의 일부로서 운영되는 사회복무요원이 여기에 해당될 수는 없다.

결정적으로 ILO는 징집한 병력 중 초과 인원을 산업체에 배치한 한국과 유사한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운영한 이집트와 터키에 대해 협약위반을 지적했다. 협약 미비준국인 한국 정부에도 여러 차례 한국의 사회복무제도가 강제노동이라는 해석을 통보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2015년 ILO의 연례보고서에서 'ILO가 한국의 사회복무제도를 강제노동으로 해석하는 한 한국 정부가 (기본협약 비준에 이르는) 합의를 하기는 어렵다'라는 구절로서 확인된다.

정부의 꼼수, '공익 갈래? 현역 갈래?' 

정부도 현행 사회복무제도가 협약에 위배됨을 인정하고 있기에 지난해부터 병역법 개정 작업에 들어갔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고용노동부의 입장에 따르면, 사회복무요원으로 판정된 대상자에게 현역 복무나 대체복무를 할 선택권을 부여한다면 협약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사회복무요원은 애초에 현역 복무가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공공기관 근로로 배정된 이들이다. 때문에 현역 복무는 선택지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당신은 현역 근무가 부적합한 사람입니다'라면서 '당신이 원한다면 현역복무를 할 수 있다'라고 통보한다면 그 자체로 형용모순일 뿐더러 병무청의 병역 판정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공익들은 모두 현역 근무가 가능했다는 것인가?

대체복무는 또 무엇인가? 노동부가 언급한 대체복무가 무엇인지는 알기 어려우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 36개월 동안 교정기관에서 복무하는 것은 아무도 선택지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특수직역과 관련된 대체복무는 애초에 강제노동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수가 한정되어 있고 전문성이 필요해서 실질적인 옵션이 될 수 없다. 만약 언급한 형태가 아닌 다른 종류의 대체복무를 만든다면 그 실체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6만 명에 달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대체복무로서의 무언가가 과연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때문에 이는 명백히 대상자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는 선택권으로서 볼 수 없으며 현행 사회복무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꼼수에 불과하다. ILO가 말하는 선택권이라는 것은, 현역 대상자 중에서 대체복무를 신청했을 때 이들을 위한 사회복무제도가 존재한다거나, 면제 옵션이 주어지는 사회복무제도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실질적으로 강제노동을 유도하는 선택권을 통해 제도를 유지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징병제의 그늘, 이제는 걷어내야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인 27일 오후 파주시 진서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인 27일 오후 파주시 진서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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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라도 동원해서 어떻게든 통상압력을 벗어나 보겠다는 정부의 눈물겨운 노력에 손뼉을 쳐 줘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사회복무제도는 철저히 대한민국 징병제 폐단의 산물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격한 징병제도 하에서 최대한의 징집률을 확보하고 사회기강을 확립한다는 명목으로 현역 부적격자까지 모조리 동원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공공기관과 사회복지시설은 이들의 '값싼' 노동력에 안주하게 되었으며 상관에 의한 괴롭힘과 업무 전가가 만연하다. 여기에 더해 더 불우한 처지에 있다고 흔히 여겨지는 현역과의 비교를 통해 이등 시민으로 간주되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분단된 휴전국가의 운명으로서 정당화된다.

그러나 설령 북한과 중국의 위협을 매우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철저히 비군사적 영역에서 복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이 전력에 변수가 될 수는 없다. 결정적으로 이는 대한민국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전쟁을 하거나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들조차도 군사적 활동과는 상관없는 이런 민간의 강제동원을 제도화해 운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일제의 강제징용을 비판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일본이 ILO 29호 협약 비준국이라는 점인데, 우스꽝스럽게도 대한민국은 29호 협약도 비준하지 않으면서 대규모 강제노동 체제를 심지어 비전시 상황에서 수십 년째 유지하고 있다.

현역병의 입장에서는 병역의무를 '독박' 쓴다는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역병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군 인권의 철저한 보장 등을 통해 완화되어야 하는 문제이지, 강제노역하는 민간인들을 늘리는, 불행의 총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된다. 현행 병역제도는 모두를 징집하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모두에게 보상하지 않으면서 의무만을 강조하는 제도다. 이런 '불행의 공평함'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부 입장에서 가장 유력한 전략은, 비준은 미룬 채 계속 애매한 액션을 취하면서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내놓으며 EU 쪽에는 ILO와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고 적당히 둘러대고 ILO 쪽에는 국내법 개정하는데 조율이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노동계 쪽의 요구는 미약하니 찍어 누르는 태도로 일관하며 하세월을 보내며 다음 정부로 폭탄을 떠넘기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벌어 왔고, EU 역시 한국 인민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게 관심사가 아니라 무역 분쟁에서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ILO만 적당히 잘 상대해서 편법을 관철시킬 수만 있다면 모두가 적당히 미소짓는 파레토 균형이 탄생할 수도 있다. 물론 이 테이블에서 배제된 한국의 노동자들과 병역대상자들은 그 대가를 감내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더 이상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라는 핑계나 선진국은 아직 아니라는 자기기만으로 사태를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긴장 완화를 위한 노력은 외면한 채 현재의 곪은 시스템을 고수해 결국 국민들의 대책 없는 희생과 국제사회의 규칙을 따라가지 못해 국가가 사실상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지키려 했던 통상강국으로서의 입지에조차 도로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고 있다.

시간 끌기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협약 비준과 함께 사회복무제도는 폐지하고 현행 '초강력'한 징병제를 궁극적으로는 축소해 나갈 계획을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해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대북관계 개선을 위한 집단적인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제사회와 병존하며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국가로 나아갈 것인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시민들도 이 냉전적 징병제에 대한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폭탄 돌리기는 이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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