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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8일 국회본청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8일 국회본청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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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지사님께

먼저 대법원 무죄판결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가장 큰 적폐인 부동산 문제에 대해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라는 선명한 목소리를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사님이 주장하는 토지보유세 강화와 기본소득이 한국사회에서 실현되길 기원합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지사님의 최근 발언과 기사를 보면서 우려가 생겨서입니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절하겠다는 지사님의 의지는 분명하지만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방법론이 이전의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와는 다소 결을 달리 하는 지점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201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발표했던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공약은 토지불로소득 환수·지대추구 근절이라는 분명한 목표 하에 1주택자든, 다주택자든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해 전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고루 나누어주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주택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하여 올라간 토지 가치는 모두가 함께 누릴 권리가 있다는 철학이 담겨 있는 공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지사님께서는 언론 인터뷰에서 "실거주 1가구 1주택이 고가라는 이유로 압박하고 제재하는 방식을 동원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또 페이스북에 "실거주 1가구 1주택의 경우에는 세율을 완화하고 비주거 투기·투자용 토지에는 0.5~1%로 토지세를 중과세해야 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문제는 1주택 실수요와 다주택 투기꾼을 구분하는 이러한 프레임으로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지대 추구를 근절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 정부의 기조인 '다주택 투기꾼 징벌, 1주택 실수요 보호'라는 프레임으로 따라가는 듯해 우려스러운 마음입니다.

'1주택 실수요 보호' 프레임의 난점

'다주택 투기꾼 징벌, 1주택 실수요 보호'라는 프레임으로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에는 여러 가지 난점들이 있습니다.

① '똘똘한 한 채'로 투기 방식 변경 

부동산 불로소득은 다주택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교통이 열악한 지역에 정부가 지하철역·기차역·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하거나 공원을 만들겠다고 하면 해당 지역 일대 땅값은 급등합니다. 다주택자만 토지불로소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1주택자도 토지불로소득을 얻습니다. 20억 주택을 한 채 가지고 있는 사람이 5억 주택 3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교통·문화·교육 등 다양한 기반시설이 만들어진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서는 땅값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주택자는 투기 목적이니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1주택자는 실수요이니 불로소득을 용인하겠다고 한다면 과연 사람들의 부동산 투기심리가 꺾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 자산 가치가 상승할 것 같은 지역에서 '똘똘한 한 채'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지대추구 방식만 바꿀 겁니다.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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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양극화와 지방경제 붕괴 가속화 

또한 다주택 가구는 세대 분리를 통해 1주택자로 분화되어 나갈 겁니다. 이 과정에서 금수저 청년들은 부모의 지원을 받아 더 '똘똘한 한 채'를 마련하고, 흙수저 청년들은 무주택 또는 '안 똘똘한 한 채'로 세대를 이어 양극화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는 청년들도 '똘똘한 한 채'를 찾아 개발수요가 많은 서울로, 수도권으로 더 몰려들다 보면 지방경제는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지사님은 1주택이라도 실제 거주 여부를 확인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서울 주택 보유에 중과세하면 쏠림을 막을 수 있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실거주 기준을 충족하도록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 낼 겁니다. 주말부부로 살면서 남편은 지방에 있고, 아내와 자녀는 서울에 있는 기러기아빠로 실거주 기준을 충족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실거주 기준을 직장, 학교 등으로 한정하여 집을 살 수 있도록 한다면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하는 등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거주 확인을 위한 끝도 없는 행정인력 낭비와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만 가중될 수 있습니다.  

③ 기본소득 재원 마련 부족

만약 1주택자의 세율은 완화하고, 다주택 소유자 및 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등에 대해 0.5~1% 수준의 토지세를 매긴다면 기본소득을 위한 충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현행 비과세·감면 조항을 폐지하고, 1억 원 초과 토지에 세율 0.3%, 5억 원 초과하는 토지에 세율 1%, 10억 초과 토지에 세율 1.5%를 매겨 15조원의 국토보유세를 확보하는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공약에 따르면, 공시가격 2억 이상의 대다수 주택 소유자들부터 토지보유세를 걷어 기본소득으로 배분해야 국민 전체의 94%가 수혜를 볼 수 있습니다.

1주택자에 대한 현행 세율을 그대로 둔 채로는 아무리 다주택자 보유세 과세를 높인다 해도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번 7·10부동산 대책에서 다주택자 종부세 과세 강도를 높혔지만 종부세 세수는 4조 남짓, 5조 원을 초과하기 어렵습니다.

보유세는 좋은 세금이다
  
6·17 부동산 대책 발표 3주 만에 다시 나온 '7·10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크게 올려 투기수요를 원천 차단하려는 고강도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부동산 관련 세금 인상은 예고됐던 것이지만,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취득세를 모두 한꺼번에 큰 폭으로 올려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단지 상가의 부동산 중개업소.
▲ 1주택자 종부세율도 오른다 최고세율 3.0% 6·17 부동산 대책 발표 3주 만에 다시 나온 "7·10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크게 올려 투기수요를 원천 차단하려는 고강도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부동산 관련 세금 인상은 예고됐던 것이지만,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취득세를 모두 한꺼번에 큰 폭으로 올려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단지 상가의 부동산 중개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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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지사님의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공약에는 '지대추구 근절'이라는 목표와 '모두가 함께 노력하여 만든 토지가치는 모두가 함께 누린다'는 철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러한 철학과 목표 하에서는 1주택자·무주택자·다주택자 모든 사람이 상승하는 토지가치의 몫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1주택 실수요자라 하더라도 주변에 역·공원·문화시설 등이 생겨 자신이 소유한 주택 아래 땅의 가치가 오른다면, 사회적 편익을 누리는 만큼 토지보유세를 내야 합니다. 모인 토지보유세는 지방에 살든, 서울에 살든, 무주택자이든, 다주택자이든 모두 1/n로 배분하여, 수혜를 보는 90% 이상의 국민들을 기본소득형 토지보유세의 지지자로 만드는 게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전략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사님도 아시다시피 토지보유세는 징벌적 세금이 아니라 아담 스미스,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 보수경제학의 최고봉들도 공히 인정하는 최고·최선의 세금입니다. 그래서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는 진보와 보수 모두 부동산시장을 건전화시키는 최선의 정책이라는 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다주택자들에게 매기는 징벌적 세금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인식 속에는 나쁜 세금, 징벌적 세금으로 자리매김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투명하고 왜곡 없는 부동산시장을 만들기 위해 공시가격 현실화율 및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높이면서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재산세, 종합부동산세도 1주택자들은 다 징벌적인 세금으로 인식하며 정부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보유세는 징벌적 세금'이라는 프레임은 참여정부 시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들이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 역시 종부세를 징벌적 세금으로 만들어버려 못내 아쉽습니다. 시장의 효율성과 형평성, 조세정의 모두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세금인 보유세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징벌적 세금으로 각인된 상황이 길게 보았을 때 대한민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1주택 실거주자는 투기가 아니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프레임으로 보유세를 건드리면 '보유세는 징벌적 세금'이라는 인식이 각인됩니다. 이 프레임에 걸리면 부동산 투기 근절도, 기본소득형 토지보유세도 성공하기가 힘들어집니다. '1주택 실거주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유세 완화'는 한 표가 아쉬운 정치인들에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주택자 보유세 완화'는 입에는 달지만 몸에는 쓴 불량식품과 같은 불량정책입니다.

토지보유세는 징벌적 세금이 아니라 시장을 건전하게,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기초가 되는 최선의 세금입니다. 보유세 강화를 통한 지대추구 근절, 모든 사람이 올라간 토지가치의 혜택을 고르게 누리는 기본소득이라는 정공법을 밀고 나가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적폐인 부동산불패신화를 청산하는 정치인으로 국민들의 기억에 남길 기원합니다.

태그:#토지보유세,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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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불로소득 없고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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