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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2019년까지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아시아에서 온 이방인으로 미국에 살면서 혹시라도 내 존재가 누군가(들)의 화를 사게 되진 않을까 두려운 순간을 여러 번 마주했다.

동네 주택 단지 곳곳에는 '거동이 수상한(suspicious) 자', '사적 소유의 경계를 넘는(trespassing) 자', '배회하는(loitering) 자'를 보면 신고하라는 문구가 선명히 나붙어 있었다.

운전을 하다 교통경찰을 상대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양 손을 다소곳이 운전대에 올려 놓고 최대한 침착하고 정중하게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한낮, 동네를 하릴없이 배회하거나 경찰 앞에서 괜한 몸짓을 했다간 총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티셔츠에 달린 모자를 덮어 쓰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백인 자경단의 총에 맞아죽거나, 범죄를 저지르다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흑인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빈곤 가정의 아이들을 맡아 돌보는 공보육기관에서 일하던 내게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만 네 살, 다섯 살 흑인 남자 아이들에게 '티셔츠에 달린 모자를 쓰지 말라'고, '장난감 자동차를 호주머니에 넣는 건 도둑질'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모자를 뒤집어 쓰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교실을 돌아다니면 교사들은 모자를 홱, 낚아채 벗겨내고 "손 빼!" 하고 소리를 쳤다. 장난감 자동차를 잠깐 호주머니에 넣었다고 그걸 꼭 정색하고 '도둑질'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싶었지만, 동료 교사들은 단호했다.

그 이유는 물론 이 아이들이 커서 "적절치 않은 장소에, 적절치 않은 시간에, 적절치 않은 피부색을 하고 있었다는 이유(p.6)"로 총에 맞아 죽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차별과 폭력이 '나쁜 개인'의 문제일까
 
 데릭 젠슨 지음 '문명과 혐오' 겉표지
 데릭 젠슨 지음 "문명과 혐오" 겉표지
ⓒ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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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해서라도 그런 일을 막고 싶다고는 하지만, 그런 태도 속엔 주류 백인 사회의 시선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런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피해 흑인의 행동 거지를 비난하는, '그러게 왜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하냐'는 공격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가해 경찰의 행위가 욕을 먹더라도 '질 나쁜 경찰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데릭 젠슨은 책 <문명과 혐오>에서 고대의 노예제, 미국 역사 초창기의 원주민 학살, 나치의 유대인 학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착취, 인종 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가 가담하고 있는 무자비한 환경파괴에 이르는 일련의 폭력을 모두 '문명과 함께 시작된 제도적인 혐오와 착취'의 일환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러한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며 잔혹하기 짝이 없는 착취와 살육의 장면들을 낱낱이 펼쳐 보인다. 집단 린치를 당하고 불에 타 죽은 임신 8개월의 흑인 여성, 벌거벗은 채 구덩이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총살 당한 유태인들, 가학적이고 엽기적인 포르노물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웹사이트를 묘사하는 대목들은 욕지기를 불러왔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분명 타인을 저런 식으로 짓밟고 학살하는 비인간적인 파렴치한들과 다른데, 그런 나를 끌어다 '다시 똑바로 보라'고 말하는 그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저자가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보고 듣는 인종차별이나 혐오 범죄가 결코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강물을 오염시키고 원주민들을 그들 땅에서 쫓아내고 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노동자들을 착취할 때, 대부분 의식적인 혐오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그것을 혐오심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고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문화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대가로 이익—권력, 물질적인 소유물, 위세—을 얻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고 심지어 그걸 부추긴다." 

폭력의 문제를 나의 것으로 마주하기

데릭 젠슨은 한 친구의 말을 들려준다.
 
"만약 어떤 남자가 여자친구를 때린다면, 그 남자의 친구들이 농구 할 때 그를 끼워주지 않아야 하고 그 이유를 그에게 알려주어야 해요. 다른 남자들이 나서서 그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성숙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남자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켜야 해요. 그리고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매번 그렇게 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같은 계층에 속하는 구성원들이 자기 계층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에 책임을 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타인에 대한 폭력은 비뚤어진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묵인하고 용인하는 우리'의 문제이며, '타자를 인식하는 방식'으로부터 비롯되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사람들 사이에 이런 문제의식이 많이 공유되기 시작한 건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폭력의 피해자를 향한 연대, 침묵해 온 사람으로서의 부채의식과 반성은 대부분 폭력의 피해자와 같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같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아직 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들을 향해 비난하기는 쉽지만, 나는 과연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홀로코스트가 특이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 삶의 방식을 의문시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에게는 죄가 없는지 물음을 던지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하면 우리들 하나하나가 더 큰 홀로코스트, 즉 지구와 그 주민들에 대한 대량 학살에 대해 착한 독일인이 될 수가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변함없이 점잖은 백인 남자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문명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더 큰 홀로코스트, 즉 지구와 그 주민들에 대한 대량 학살'이라는 구절에서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벌써 몇 개월째 코로나 바이러스로 마비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그동안의 '대량 학살'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지구상의 어떤 존재에게는 엄청난 폭력이었을, 지금도 모두 끊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나의 사소한 행위 하나 하나가 사무친다. 한편으로는 이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만의 책임은 아니지 않느냐며 회피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과 회피심리로부터 오는 자기혐오를 직시하고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겁한 내가 쩔쩔매는 사이 이미 그 일을 나서서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내며, 나 역시 한 걸음 더 그 길로 나아가겠다고 약속한다. 인류에게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

문명과 혐오 - 젠더·계급·생태를 관통하는 혐오의 문화

데릭 젠슨 (지은이), 이현정 (옮긴이), 아고라(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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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엄마.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다. 비영리단체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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