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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에 문을 열어 6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켜온 신촌 '복지탁구장'이 폐업을 결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탁구장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복지탁구장' 폐업 안내문
 "복지탁구장" 폐업 안내문
ⓒ 이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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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여섯 번 바뀌고, 한 사람의 평생이라 해도 좋을 긴 시간 동안 지역 주민과 신촌 일대 대학생들의 사랑방이 되어준 '복지탁구장'. 며칠 전 동생이 대학 시절 자주 다니던 탁구장에 오랜만에 갔는데 코로나19로 폐업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아쉬운 마음에 19일 폐업일을 불과 며칠 앞둔 날, 부랴부랴 '복지탁구장'을 찾았다.

'서울시 미래유산'인데... 폐업 결정한 신촌 복지탁구장
   
'복지탁구장'은 신촌역 3번 출구로 나와 연세대학교 방향으로 50미터쯤 걸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탁구장이 있는 4층까지 올라가는 계단 창문에는 '복지탁구장'의 짤막한 마지막 작별 인사가 붙어 있었다.

탁구공이 튀는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탁구장 안으로 들어서니 한창 탁구를 치던 여성 회원 한 분이 나와 맞아준다. 체온 측정 후 간단한 인적 사항을 기록했다. 언뜻 봐도 중년의, 부모님 세대인 듯한 세 쌍이 탁구공을 주고받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때 '복지탁구장' 취재를 허락한 이윤자씨가 도착했다.
 
2014년부터 '복지탁구장'을 운영해온 이윤자 씨
 2014년부터 "복지탁구장"을 운영해온 이윤자 씨
ⓒ 이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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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4년 2월부터 '복지탁구장'의 관리를 맡아 햇수로 7년째 탁구장을 운영해 왔다.
   
"제가 탁구를 워낙 좋아해요. 중학교 선배님과 탁구 얘기를 자주 나누다가 우연한 계기로 '복지탁구장'을 소개받았어요. '복지탁구장'을 만든 윤요섭씨와 제 중학교 선배님이 50년 지기 친구였거든요. 저는 30년 넘게 하숙집 운영을 하다가 2014년에 이 탁구장 관리를 맡게 된 거죠."

'복지탁구장' 건물은 본래 1958년에 3개 층으로 건축됐다가 61년에 4층을 올렸고, 그다음해인 62년 5월에 기계체조 선수 출신 윤요섭씨가 문을 열었다. 이윤자씨가 탁구장을 맡기 전까지는 건물주인 윤씨가 직접 운영했다고 한다.

"작년에 윤요섭 선생님이 돌아가셨고 지금은 그 아드님이 건물을 물려받았어요. 사실 손님이 줄고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은 건 코로나19 이전, 몇 년 전부터 이어진 거죠. 그런데 그동안 건물 임대료를 아주 조금만 내도록 배려해주셨어요. 이 신촌 한복판에서 경제적인 계산으로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죠. 저도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라 제가 워낙 탁구를 좋아하고 오랜 시간 이곳을 찾는 회원들, 손님들이 계시니까 운영을 계속해온 거예요."

코로나19로 인해 폐업을 결정했다기에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이라 예상했는데 이윤자씨는 꼭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지난 6월 초, 양천구 탁구장에서 22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탁구장이 새로운 감염 확산 진원지로 떠오르는 것이 직격탄이 됐다. 서울시는 서울시 내 탁구장 350여 곳에 대해 운영 자제 권고와 감염병 예방수칙 준수 명령까지 내렸다. 탁구장 운영이 전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탁구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던 게 결정적이죠. 주민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유입되는 손님들도 있었거든요. 서울시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그 엄격한 규제를 지키면서 탁구장을 운영하는 게 불가능해졌어요. 지금도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면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 환기하고 있잖아요. 열 체크라든지 인적사항 기록, 문진표 작성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서는 저도 숨이 차서 못하는데 어떻게 손님들한테 마스크 쓰라고 하겠어요. 서울시에서 나와 적발되면 벌금을 물어야 하고. 결국 운영을 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거죠."

'복지탁구장' 바로 옆에는 1957년부터 63년째 운영하고 있는 신촌의 또 다른 명물, '홍익문고'가 있다. 2012년 신촌 일대 재개발 계획으로 철거 위기가 있었으나 지역 주민들이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 모임'을 결성해 애쓴 결과 지금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선 어디가 끝일지 짐작조차 어렵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아니 규제라도 좀 완화된다면 '복지탁구장'이 다시 문을 열 수도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없죠. 폐업을 하는 걸요. 60년 가까운 세월과 추억이 담긴 곳을 문 닫으면서 하루 이틀 고민했겠어요? 울기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저는 제가 이 탁구장을 끝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탁구장에 생계를 위해 나온 게 아니잖아요. 이 나이 먹어서는 아침에 눈 뜨면 갈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이고 행복이죠. 제가 워낙 탁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예전에 한창 탁구를 칠 때는 두세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안마시고 신나게 쳤었어요. 그렇게 좋아했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을 때까지 이 탁구장에 나올 거라고 했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안타깝죠."

"70, 80대 되어서도 오는 곳인데...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워" 
 
'복지탁구장'은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복지탁구장"은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이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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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도 지정된 '복지탁구장'은 '홍익문고', '미네르바'와 더불어 신촌 주변 수많은 대학생들과 지역 주민이 찾아드는 사랑방이었다. 황금기에는 손님이 하도 많아 대기 번호표를 끊어주고 복도 계단까지 길게 줄을 서 기다렸다 입장했을 정도란다. 대학 시절부터 70, 80대가 되어서까지 탁구장을 찾는 손님, 자녀와 함께 오는 손님도 있다.

"저쪽에서 지금 탁구 지도해주고 계신 분도 84세이신데 초창기 훌륭한 탁구선수들을 길러낸 분이에요. 그 제자도 70대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데 아마 오후에 곧 나오실 것 같아요. 그렇게 여기는 오랜 세월 이곳을 찾아주는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죠. 우리 탁구장은 명절에도 문을 열어요. 차례 지내고 오후에 자녀들, 손주들이랑 같이 탁구 치러 나오는 손님들이 계시거든요.

얼마나 보기가 좋아요? 저도 일곱 살 손주에게 탁구를 가르쳤어요. 라켓까지 사고 다 준비해놨는데 코로나 때문에 탁구장에 못 나오게 돼 버렸지만. 근처 대학생들도 친구들이랑 탁구 치러 많이 오는데 그러면 제가 게임 제안을 해요. 저한테 이기면 이용료 안 받는다고. 그럼 열이면 열 하자고 그러죠. 밑져야 본전이니까. 십중팔구는 제가 이기지만요.(웃음)"

 
'복지탁구장' 회원이 마스크를 쓴 채 원로 탁구 코치에게 교습을 받고 있다.
 "복지탁구장" 회원이 마스크를 쓴 채 원로 탁구 코치에게 교습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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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장에 들어서는 사람마다 탁구장에 있는 다른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회원들과 이윤자씨가 주고받는 빈 도시락통이 눈에 띄어 물었더니 간식이나 밑반찬을 담아 나눠 먹는 거란다. 이씨는 인터뷰 중에도 탁구장 손님들과 나눠 먹을 감자를 삶는다고 분주했다.

"제가 오후에 출근하면, 탁구장 회원들이 알아서 탁구장 문을 열고 탁구를 치고 계세요. 음식 나눠 먹는 것은 우리 세대의 문화랄까.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걸 모를 거예요. 폐업 전에 가깝게 지내는 몇몇 회원들과 인사 나누는 자리를 가지려고 해요. 그런데 이분들이 벌써부터 나를 막 울린다니까요. 그동안 '복지탁구장'에 애정을 갖고 찾아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신촌역 3번 출구 앞 길 모퉁이, 6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많은 이들의 사랑방이 되어준 '복지탁구장'은 오는 19일 일요일 영업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등에 함께 게재될 수 있습니다.


태그:#복지탁구장, #신촌탁구장, #코로나19, #코로나19폐업, #서울시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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