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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유명을 달리한 이후 여러 의견과 평가나 엇갈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13일 한 지지자가 서울시청 앞 영구차량에 손을 얹고 오열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13일, 한 지지자가 서울시청 앞 영구차량에 손을 얹고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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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매우 부산하다. 7월 10일, 날이 넘어오자마자 긴 수색 끝에 서울시의 수장인 박원순 시장이 시신으로 발견됐고, 이후 해가 저물고 난 뒤에는 한국군의 수장이었던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세상을 등졌다. 백선엽 장군이 일국의 군대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가 소위 '명예원수'로 추대될 뻔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백선엽의 사회적 지위를 마냥 무시할 순 없다.

이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시민들마저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러한 주장들이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둘로 쪼개질 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과 '사실상의 2차 가해'라는 비판이 충돌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6.25전쟁의 영웅'이기 때문에 그를 애도하는 것은 당연하고, 나아가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지 못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홀대유감론'이 존재한다(국방부는 "보훈처가 유족과 협의해 대전 현충원 안장을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 편집자 주). 반면, 백 장군의 사망을 추모하는 것은 일제에 맞섰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두 번 죽이는 행위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백선엽 장군을 둘러싼 논란은 이미 많은 언론이 다뤄왔기에 나는 이 글에서 박원순 시장 사망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언론의 역할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높은 자살률'은 우리 사회가 지금도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보여주는 단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의 자살률이 OECD 1위라거나 세계 최상위권이라는 제목을 단 뉴스 기사를 적어도 한 번쯤은 접했을 만큼 자살은 우리 주변에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일인 듯하다. 거창한 통계자료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 자체는 무척 지양해야 할 일이다.

생계가 어려운 사람은 물론 유명한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그 비극적인 결정을 했을까 생각하며 슬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자살은 우리 모두를 참담하게 만든다. 특히 유명인의 자살 이후에 자살자 수가 급증한다는 주장이 적잖은 연구 결과로 입증된 만큼, 자살 사건에 대한 언론의 잦은 보도는 오히려 다른 사람의 자살을 부추길 수도 있다(관련 기사 : "샤이니 종현 사망보도, 이런 글 탓에 누군가 죽을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은 자살 관련 사안을 보도할 때마다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준수하고 있는가 성찰해야 한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사회적 파장이 크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보도 자체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번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는 점을 언론은 유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살로 인해 고통이나 문제에서 벗어났다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 자살로 불명예스러운 사건이 종결되거나 자살이 억울함을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전달 되지 않도록 유의합니다." - 자살보도 권고기준 3.0 중 항목 (4)의 3번째 내용
 
언론 본연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의 통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사회 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을 나는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다.

언론이 이번 사건을 단순히 한 저명한 정치인의 사망이라는 사실로서 다루는 차원을 넘어서, 이러한 사건이 한국 사회에서 왜 이렇게 반복되는가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독자들에게 그 원인을 분석해 설명해주길 나는 간곡하게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한국의 '남성 중심적 구조'에 대해 여전히 익숙해져 있는 듯한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각성할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역할 
 
'친구 박원순' 떠나보낸 이해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오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영결식에 참석한 후 서울 여의도 국회로 돌아와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안경을 잠시 벗은 이 대표의 눈가가 촉촉하다.

고 박 시장 장례위원회의 공동장례위원장인 이 대표는 "제 친구 박원순은 저와 함께 40년을 같이 살아왔다"면서 "열정 만큼이나 순수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사람이기에 그의 마지막 길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고 말했다.
▲ "친구 박원순" 떠나보낸 이해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오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영결식에 참석한 후 서울 여의도 국회로 돌아와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안경을 잠시 벗은 이 대표의 눈가가 촉촉하다. 고 박 시장 장례위원회의 공동장례위원장인 이 대표는 "제 친구 박원순은 저와 함께 40년을 같이 살아왔다"면서 "열정 만큼이나 순수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사람이기에 그의 마지막 길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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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진심으로 박원순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더는 이러한 비극적인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나는 왜 하필 민주당을 언급하고 있는가? 이것은 박원순 시장이 단순히 민주당 소속이었다는 이유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13일 민주당 지도부가 첫 '사과' 메시지를 내고, 이해찬 대표는 "예기치 못한 일로 시정에 공백이 생긴 데 대해 책임 통감한다"라며 "피해 호소하는 여성 아픔에 위로를 표한다. 이런 상황 이르게 된 것 사과드린다. 당은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사과했다.

지난 6일에 법원이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했던 손정우를 미국으로 송환하는 것을 불허한 결정은 많은 사람을 분노케 했다. 이 때문에 해당 결정을 내렸던 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3일 현재 5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다. 나는 사법부의 판결과 법원의 성범죄 양형 기준이 매우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대해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국회'의 직무유기에 대해 분명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법부는 정해진 법 절차에 의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일 뿐 그들이 법적 체계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기란 어렵다. 또한 현행법대로 처벌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관은 그 법을 어기지 않은 이상은 결과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

하지만 국회야말로 이들 사법부의 관대한 처벌을 관련 법 자체를 제·개정함으로써 사법부가 반드시 일정한 수준의 형량을 선고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요컨대, 사법부는 그저 법의 수동적 행위자라면 국회는 법적 근거를 만드는 적극적 행위자다. 이것이 바로 국회가 지금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주장이 마치 내가 사법부를 변호하려는 것으로 들릴 수는 있겠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법원의 역할은 명백한 한계가 있으며 지금과 같은 판결을 내리더라도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국회가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입법기관이며, 지난 21대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민주당은 정의당과만 연대하더라도 관련 법안을 특별한 제약 없이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수 있다는 정치적 현실을 주장하고자 한다.

만약 다음에도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분명히 민주당의 책임이다. 집권당이면서도 압도적인 다수당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민주당이 한국 사회의 성폭력을 뿌리 뽑겠다는 마음만 먹는다면 이번 21대 국회에서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나는 자신한다.

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민주당이 진심으로 박원순의 죽음을 추모한다면, 국민에게 21대 국회를 통해 '법률'이라는 결과로서 보여줘야만 할 것이다. 

정치인의 대응 방식

정치인의 모든 행위는 그들이 속한 사회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의 주류가 '자살'과 '성범죄'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인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공공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박원순은 이런 식으로 세상을 등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재판에 임했어야 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고, 청와대 사람들과 이해찬 대표도 조문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비록 정치인도 사람이기에 자신의 동료가 떠났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릇 정치인이라면 아직도 어딘가에서 흘려지고 있을 피해자의 눈물을 먼저 닦아주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조사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박원순 시장은 정말 명예롭게 죽음을 택한 것인가? 나는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보다도 여성 인권의 향상을 위해 노력했던 변호사가 성추행 피고소 이후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행위를 한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정한 것과 같다. 고소인의 고소와 박 시장의 죽음의 직접적 관계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상호 연관관계는 있다고 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고소장이 제출됐다면 법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통해 해명할 기회가 열려 있음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이 박원순 변호사가 아니고 누구인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행위는 법에 따라 판단을 받아야 할 이번 사안을 사람들 각자의 판단에 맡기게 만들었다. '법에 따른 지배'와 거리가 있다.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한다. 

박원순은 '가지 말았어야' 했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여당 대표도 그런 식으로는 애도를 표하러 조문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이러한 태도는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성폭력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치인들이여, 진정으로 박원순을 추모하고 그의 가치를 존중한다면 지금 당장 머리를 맞대길 권한다. 그래서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시민들이 이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달라. 간곡한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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