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의 EPL 재개 첫 경기에 출전한 손흥민

토트넘의 EPL 재개 첫 경기에 출전한 손흥민 ⓒ AP/연합뉴스

 
손흥민과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가 나란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시즌 무관에 그친 토트넘은 마지막 희망이던 다음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이 주어지는 4위권 경쟁에서도 사실상 밀려나며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에이스로 맹활약하던 손흥민도 리그 재개 이후로는 5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치며 고전하고 있다.

특히 최근 조제 모리뉴 감독의 손흥민 활용법은 갈수록 뜨거운 감자가 되어가고 있다.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모리뉴 감독의 스타일에 적응하기 위해 손흥민도 수비 기여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로인해 오히려 손흥민 특유의 장점이 희석되며 팀도 선수도 함께 침체되는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표면적으로 놓고보면 손흥민은 모리뉴 체제에서도 꾸준히 주전으로 중용되는 등 감독의 신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시즌 공격포인트 기록도 16골 10도움(리그 9골 9도움)으로 준수하다. 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봤을 때 과연 모리뉴 감독이 손흥민이라는 선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손흥민이 모리뉴 체제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시기는 아직 전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공격적인 전술 색채가 강하게 남아있던 부임 초기(11월 말~12월 중순), 그리고 해리 케인 등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토트넘의 공격이 자연스럽게 손흥민 중심으로 돌아가는 비중이 높아진 올해 초(1월말~ 2월 중순)였다.

반면 케인-델레 알리-루카스 모우라 등 핵선수들이 모두 건재하거나, 모리뉴 감독의 수비적인 전술이 자리를 잡아갈수록 오히려 손흥민의 활약은 줄어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손흥민의 최근 경기별 히트맵을 보면 윙어나 공격수라기보다는 풀백 혹은 측면 미드필더처럼 활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손흥민의 장기인 역습 상황에서의 공간 침투나 슈팅 시도는 줄어들고 플레이메이커처럼 연계플레이에 더 주력하거나, 윙백들이 오버래핑을 할 때 측면 수비를 커버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손흥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었고 팀내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을 잘못 활용한 토트넘의 경기력도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비 가담이 손흥민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지지 않는 축구를 추구하는 모리뉴 감독은 토트넘에 오기 전부터 항상 공격수들에게도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요구하는 인물이었다. 모리뉴 체제에서 플레이스타일이 변하면서 저조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건 해리 케인이나 루카스 모우라도 마찬가지다. 결국 토트넘의 부진이 선수 개개인의 문제를 떠나, 몸에 맞지않는 옷을 입힌 모리뉴 감독의 전술적인 한계가 아닌지 의심해봐야할 대목이다.

덩달아 최근 에버턴전에서 벌어진 손흥민과 위고 요리스의 하프타임 언쟁 사건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토트넘의 주장이자 주전 골키퍼인 요리스는 당시 전반 종료 직전 손흥민의 수비가담을 지적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라커룸 안에서 팀원들끼리 조용히 할 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굳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팀동료와 충돌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례적이지만, 유독 손흥민만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었다. 다행히 두 선수는 축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화해하는 모양새였지만, 손흥민에게는 향후 수비 가담에 대한 더 큰 압박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일각에서는 모리뉴 감독의 배후설까지 거론되고 있다. 모리뉴 감독은 과거에도 공개적인 언론플레이나 독설을 통하여 선수단을 자극하여 분발을 촉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모리뉴 감독의 전성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트렌드가 바뀐 요즘 세대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모리뉴 감독은 사령탑 시절에도 성적부진과 선수단과의 불화가 겹쳐 경질당한 바 있다.
 
 조제 모리뉴 감독

조제 모리뉴 감독 ⓒ AP/연합뉴스


모리뉴 감독은 당시 앙토니 마시알, 마커스 래쉬포드, 제시 린가드, 헨릭 마키타리안, 알렉시스 산체스, 폴 포그바 등 우수한 공격자원들을 대거 보유했음에도 이들을 제대로 활용한지 못하다는 혹평을 받았고 선수들과의 소통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모리뉴 감독이 물러나고 현 솔샤르 감독 체제에서 마시알과 래쉬포드가 올시즌 전혀 다른 선수로 환골탈태한 것만 봐도, 감독과 선수간의 궁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축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지만, 그 선수를 만드는 것은 감독이다. 좋은 선수라도 감독을 잘못 만나 커리어가 꼬이는 경우가 스포츠계에는 비일비재하다. 유명한 감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손흥민 이전에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선수였던 박지성이 대표적이다. 지금이야 박지성은 어떤 지도자를 만나더라도 사랑받았을 선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평범한 선수로 사라질 수도 있었던 박지성의 커리어가 인생역전에 성공한 것은 오히려 누구보다 '지도자 복'이 많았던 덕분이었다.

허정무 감독은 프로 지명도 받지 못했던 무명 선수였던 박지성을 과감하게 올림픽대표팀에 발탁하며 첫 태극마크를 달아줬다. 히딩크 감독은 포지션 전향과 2002 한일월드컵 발탁에 이어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으로 불러들이며 유럽무대로 이끌어줬다.

또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당시 유럽 최고의 클럽인 맨유로 불러들인데 이어, 비록 풀타임 주전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활약하는 '빅게임 플레이어'로 쏠쏠하게 써먹었다. 이 세 사람 중 한 명만 없었더라도 박지성의 축구인생은 절대 지금과 같은 위상에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손흥민이 EPL에서 정상급 선수로 성장할수 있던 것도 포체티노 감독이라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포체티노 감독은 EPL 초기에 손흥민이 어려움을 겪으며 독일 유턴까지 고려하고 있을 때 이적을 만류하며 믿음을 심어줬고, 꾸준한 출전기회를 제공하며 그의 성장 가능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손흥민은 지난해 포체티노 감독이 토트넘에서 경질당했을 때 SNS를 통하여 "당신을 통해 축구 뿐 아니라 인생을 배웠다"라고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아스널에서 아르센 웽거 감독의 철저한 외면을 받으며 몰락한 박주영이나,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앨런 파듀 감독의 냉대를 받았던 이청용처럼, 감독 하나 잘못 만나 커리어 전반에 큰 타격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현재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펩 과르디올라(맨시티)조차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나 아야 투레같은 개성강한 선수들과는 궁합이 맞지 않아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손흥민은 나이나 기량으로나 현재 전성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현재 모리뉴 감독의 전술 하에서는 손흥민이 아무리 많은 경기에 출장한다고 해도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모리뉴 감독의 예전 명성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한들, 선수의 스타일과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토트넘은 13일 아스널과의 북런던 더비를 앞두고 있다. 성적부진으로 팬들의 사퇴요구까지 받고있는 모리뉴 감독으로서도 중요한 일전이다. 모리뉴 감독이 전술에 어떤 변화를 줄지도 관심사다. 이번에도 만일 손흥민이나 케인의 활용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어쩌면 이날 경기는 손흥민과 모리뉴가 올시즌 이후로도 동행을 이어가야할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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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무리뉴 북런던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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