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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창원시가 최근 폐쇄 여론이 많은 것을 고려, 개발용역에 착수한 마산합포구 서성동 성매매업소 집결지(자료사진) 2013.4.1
 폐쇄 여론이 많아 개발용역에 착수한 한 성매매업소 집결지(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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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P시에는 아직도 유리방이라 불리는 '성매매 집결지'(이하 집결지)가 있다. 집결지는 Y마을을 동서로 가르며 흐르는 개울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마치 섬처럼 뚝 떨어져 있다. 행정 구역상 Y마을이라 통칭되지만, 마을은 마을대로 집결지는 집결지대로, 전혀 상관없는 듯 살아간다.

십여 년 전, 남편과 사찰 납골당을 찾아가다 길을 잘못 들어 집결지 쪽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층으로 된 허름한 건물 일층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있었는데, 뭔가 야릇했다. 절의 위치를 물어보느라 차창을 내리자, 중년의 아주머니가 반색하며 다가와, 남편에게 놀다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곳이 말로만 듣던 그 집결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이없어하는 남편과 차를 돌려 나오는데,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에 진저리가 쳐졌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내 두려움의 근저에는, 행실을 잘못했다간 '사창가에 팔아먹을 년'이 된다는 뿌리 깊은 주술이 개입하고 있었을 것이다. 행실이 나쁜 여자는 '교정강간'을 통해 징벌하거나, 방종한 성에 대한 통제로 지옥과도 같은 사창가에 던져버릴 수 있다는 공포를 이용한 여성 통제 기제가 나의 '후기억'이라는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된 탓일 것이다.

동행한 남편은 집결지에 대해 어이없음 또는 호기심 외 어떤 공포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남성인 남편에게는 감옥 같은 곳에 붙잡혀 성을 팔며 살아야 할 어떤 삶이란 상상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잠깐이었지만 강렬했던 집결지에서의 감각이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을 읽으며 생생히 되살아났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은 '봄날'이라는 필명을 쓰는 여성이 20년간의 성매매 경험을 담담히 고백한 글이다. 글 중, 봄날이 악착같이 번 돈으로 마침내 빚을 갚고 집결지를 벗어나는 장면에서, 내 심장은 거의 터질 듯 두방망이질을 쳤다.

봄날이 빚을 청산하고 집결지를 떠나면서도 포주의 남자들이 쫓아와 자신을 다시 붙잡아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집결지를 벗어날 때, 우연한 그 날 집결지를 벗어나며 우악스런 손아귀에 뒷덜미를 잡힐까 불안했던 내 공포가 고스란히 겹쳐지고 있었다. 봄날이 집결지를 완전히 빠져나오며 안도하자, 나 역시 "아 이제 살았다"를 읊조리고 있었다.

내가 봄날의 그 복잡했을 감정(다시 잡혀갈 것 같은 두려움, 하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조바심, 그리고 마침내 노예의 족쇄를 끊어낸 해방감)에 깊이 이입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잠깐의 그 몇 분도 그토록 무서웠는데, 그곳에서 수년간 폭력을 겪으며 살아낸 봄날은 어땠을까.

봄날이 고백하는 20년간의 성매매 삶은 그야말로 성매매의 현장들을 집대성한 느낌이다. 17살에 가라오케라는 유흥업소에 발을 들인 그녀가 룸살롱을 거쳐 유리방 그리고 티켓다방까지 흘러가는 삶을 함께 경유하는 일에 독자는 상처받는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김홍미리의 말처럼, 독자는 이 이야기가 "리얼리티 '소설'"이기를 바라게 된다. 한 인간이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당하는 침탈의 현장을 상처받지 않고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두 차례 그녀의 이야기를 그만 읽을까 망설였다. 기지촌 여성 김정자의 증언집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을 읽고, 몇 달 동안 마음을 앓았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김정자 역시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오갈 데 없게 되자, 취업 사기로 흘러든 곳이 기지촌이었다.

그녀가 처음 기지촌 생활을 시작했던 파주를 기점으로 동두천, 평택, 대구, 부산, 삼각지, 군산을 돌아보며 피를 토하는 고통으로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 일에 독자 역시 숨쉬기 어려운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김정자의 증언을 읽는 동안 그리고 책을 마치고 나서도 한동안 김정자의 삶 속에 묶여 지냈던 것처럼,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역시 한동안 봄날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 앉게 될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너무나 미안하게도, 내 고통이 두려운 나머지,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을까 말까를 주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고통과 용기를 씨줄과 날실로 엮어낸 이 기막힌 증언을, 지금 내가 듣지 않는다면 누가 들을 것인가.

아무에게도 돌봐지지 않은 어린 소녀, 봄날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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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무자비하게 맞고 자랐다. 과거에도 지금도 가장 안전할 것 같은 집에서 맞고 사는 여자아이들은 많다. 가부장의 나라에서 가정 폭력은 여아를 훈육하는 매우 자연스런 수단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지독히 맞던 그녀에게 더 혹독한 폭력이 일어난다. 어느 저녁 봄날은 그녀가 다니던 공장의 통근버스 기사에게 강간당한다. 고작 열여섯 살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강간 사건은 한심하게도 해프닝으로 처리되고 만다.

"공장 사장은 아버지에게 그놈을 해고할 테니 그만 화를 풀라고 하면서, 결혼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장면은 얼마 전 재심을 청구한 '56년 만의 미투' 사건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자신을 강간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강간범의 혀를 깨물어 자른 여성을 젊은 남자의 앞길을 망친 가해자로 몰고, 그것도 모자라 고작 강간범과 결혼시키는 것으로 강간 사건을 해결하려 든 후안무치한 1964년 사건 말이다.

이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뒤, 고작 열여섯의 소녀에게 발생한 강간 사건에도 남성 강간 동맹은 공고했다. 어린 소녀의 성폭행 사건을 결혼으로 무화시키려하지 않는가. 저들은 자신의 집에 침입해 폭력을 휘두른 강도와 한집에서 가족처럼 도란도란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만일 그때, 봄날이 피해를 제대로 인정받고 가해자를 정의롭게 처벌했다면, 그녀의 삶의 방향은 다르게 선회했을 것이다. 적어도 스스로를 회복될 수 없는 '구겨진 휴지'로 내면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회가 피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재생산하는가에 따라 피해 당사자의 삶은 다르게 구성된다.

가족마저 그녀의 강간 사건을 무화시키는 가운데 봄날은 또 다른 인생의 위기를 맞는다. 공장 기숙사 생활을 하던 그녀는 군인인 남자와 연애를 하다 임신을 하게 되고 그 남자에게 버림받는다.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어 겨우 열일곱 살에 겪어야 했던 임신 중절은 그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일이었다."

이후 그녀는 강간을 당한 것도 임신 중절을 했던 것도 모두 자기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었을 테니. 공고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강자인 남성을 질책하는 일은 약자인 여성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없었을 테니. 그녀는 살기 위해 자신을 속여야 했다.

그녀에게 엄습한 폭력만큼 집의 가난도 무서웠다. 장녀인 그녀에겐 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고작 열여섯 열일곱의 봄날은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남자 손님과 술만 같이 마시면 용돈을 두둑이 챙겨주겠다는 사업주의 감언이설에 속아 봄날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성매매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녀의 삶의 여정을 같이 하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연이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 나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구나. 나라도 별수 없겠구나. 기댈 언덕도 아무 자본도 없는 어린 여성이 그녀보다 더 어린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마련할 방법이란 몸을 내놓는 것밖에 없겠구나.'

성매매 여성이었던 봄날의 기나긴 미투의 기록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된 성매매 여성을 비난할 때, 약속이나 한 것처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자발성. 쉽게 돈 벌고 싶어 선택했으니 책임도 온전히 혼자서 지라는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고안된 말. 하지만 어떤 인간도 그가 속한 사회에 영향받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자유의지만으로 상황을 통제하며 살아가지는 못한다.

살기 위해 누구나 돈이 필요하고 각자의 수단으로 돈을 벌 뿐이다. 그러나 그 수단이 전무할 때, 가난한 여성은 그저 마지막 수단을 쓸 뿐이다. 이것을 자발이라 다그칠 수 있을까. 게다 명목으로나마 '자발'이 성립하려면, 성매매 시장으로의 유입과 유출에 억압과 폭력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업주 혹은 포주에게 물린 기본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성매매 생활을 하며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상상을 넘어선다. 화장품, 의상, 헤어, 다이어트, 성형, 대출 금융까지, 성매매 여성을 매개한 소비 시장은 그녀들에게 빨대를 꽂고 있는 형상이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인 성매매 시장의 그물에 일단 걸리면, 이 거미줄을 끊고 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거미줄을 끊고 나왔다고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다. 탈성매매를 견지하기 위해선 제도적 법적 지원은 물론 심리적 안정을 위한 지원도 수반되어야 한다. 업주와 손님들의 착취와 폭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맞아도 내 잘못, 강간을 당해도 내 잘못, 남자에게 버려져도 내 잘못, 성매매를 해도 내 잘못"이라며 왜곡시킨 자아를 회복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폭력에 짓밟히며 이어갔던 무력했던 자신을 보듬고 토닥이는 일이 그 시작이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고 다시 살아나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일은 말하는 동시에 듣는 일이며, 자신의 말과 정서가 하나로 모아지는 이 기억의 과정을 정면 돌파하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바깥에 서성이게 두었던 자아와 화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의 증인이고 기억의 주인인 자만이 아픈 과거를 떠나보낼 수 있다." -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참고

탈성매매를 한 이후에도 폭력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봄날은 늘 아팠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 자학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날 때마다, 다시 업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타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또 받아들여지는 그 경험"을 통해 봄날은 조금씩 회복해 갔다.

"내 경험이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을 폭력이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다."

들불처럼 번졌던 미투의 물결을 타고 한 미투 집회장에서 그녀는 만인을 향해 자신이 겪은 폭력을 증언한다. 그날 밤에서야 그녀는 밤마다 찾아들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은 성매매 여성이었던 봄날의 기나긴 미투의 기록들이다. 잠깐, 벼락처럼 내리쳤던 미투 혁명의 현장들을 돌아보자. 우리는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그녀들의 고발을 온몸으로 들었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증언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을까. 우리는 성매매 여성을 성폭력 피해자의 자리에 서게 하는데 기꺼웠던가.

혹시 성매매 여성이 무슨 강간을 당하냐는 둥, 성매매 여성이 무슨 성폭력 피해자냐는 둥, 너무나 무심해서 더 참혹한 가해의 비수를 그들의 등 뒤에 조용히 꽂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이유로 성매매 당사자인 봄날의 증언은 매우 값지다. 극한 폭력과 노동 속에 살아남은 성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가 귀를 열 차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시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봄날 (지은이), 반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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