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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달걀 18개를 훔친 A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달걀 18개를 훔친 A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 pixabay

구운 달걀 18개를 훔친 40대 남성 A씨에게 검찰이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한 사실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지난 1일 JTBC 뉴스룸을 통해 처음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검찰의 구형이 과하다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지적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코로나 때문에 무료급식소도 문을 닫은 상황에서 열흘 동안 굶다가, 자신이 이전에 살던 고시원에서 약 5000원치 달걀을 훔치는 전형적인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단순히 이 사건만 놓고 보면 1년 6개월이라는 구형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전과가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여론이 조금씩 변합니다. <중앙일보>는 1일 밤 '배고파 계란 훔쳤다는 코로나 장발장, 알고보니 보이스피싱범'이라는 기사를 통해 그가 절도 전과가 수차례 있고, 보이스피싱 범죄에도 연루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머니투데이>는 3일 오전 '생활고에 달걀 훔쳤다던 코로나 장발장 완전 꾼이었다'는 기사를 통해 그가 '상습 절도범'이며, '검찰 구형이 과하다'는 요지의 JTBC 보도가 '사실상 오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A씨는 기존의 범죄 전과로 인해 1년 6개월을 구형 받은게 맞습니다. 하지만 '꾼'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JTBC 뉴스룸은 2일 <고물 훔치고 10년 넘게 감옥을... 코로나 장발장의 사연>이라는 보도를 통해 A씨의 삶과 범죄 이력을 조명했습니다.

"생계가 막막해질 때마다 고물상과 건설 현장에서 물건을 훔쳤습니다. (...) 아홉 번에 걸쳐 700여만원 어치를 훔친 걸로 파악됐는데 총 13년을 감옥에 있었습니다. 2017년에 출소 직후엔 무보험 차량에 치여 장애을 얻었고 보상금을 못 받자 보이스피싱 조직에 자신의 통장을 팔았습니다."

법은 '생계형 범죄'를 봐주지 않는다
 
JTBC <'코로나 장발장' 달걀 18개 훔쳐…18개월 실형 구형> 보도 캡처
 JTBC <"코로나 장발장" 달걀 18개 훔쳐…18개월 실형 구형> 보도 캡처
ⓒ 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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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절도, 700여만 원, 13년... 아무리 횟수가 많다고 하지만, 700만 원치 물건을 훔친 이가 감옥에 13년 있는 것은 합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법에선 '동종 전과'가 있거나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고 판단하면 가중처벌을 합니다. 특정범죄가중법(특가법) 제5조4(상습 강도·절도죄 등의 가중처벌)에 따른 것입니다.

특가법 제5조4의 제5항1호는 '세 번 이상 절도 혐의로 징역형을 산 사람이, 또 다시 절도를 저지를 경우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제5조4의 제6항은 '상습 절도로 두 번 이상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이 3년 이내에 다시 상습 절도를 저지를 경우 3년 이상 2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상습'이란 범죄행위의 수법이나 동기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기 때문에 동종 전과가 있다고 해서 모두 상습범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이 처벌 조항은 과거에 비해서 완화된 것입니다. 특가법이 형법과 동일한 내용으로 '상습 절도죄'를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형량만 높다는 점(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을 2015년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언론들은 한 남성이 2만원 가량이 들어있는 동전통과 라면 10개를 훔쳤다가 특가법이 적용돼 3년 6개월형을 받은 것을 언급하며, '장발장법'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개정된 법도 과거보다는 구체적인 기준이 세워지고 형량 기준이 약화됐을 뿐입니다. 이번 사례를 비롯해 특가법이 '장발장법'처럼 적용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있는 게 현실입니다.

빈곤 문제를 다루고 있는 변호사들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특가법으로 기소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생계형 범죄에는 형법을 적용하거나 기소유예를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는 겁니다.

특가법 제5조 4에 대한 위헌 결정을 받아냈고, 현재 수원지법 국선 전담을 맡고 있는 정혜진 변호사는 "누군가가 절도로 처벌받았는데 자숙하지 않고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가중처벌할 필요성이 인정될 수밖에 없다"며 "생계형 범죄자가 아니라 수천만 원짜리를 훔치는 범죄자도 있기 때문에 현행 법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 변호사는 "생계형 절도를 반복해서 징역형을 받은 사람들은 출소해도 경제적 안전망이 없으니 또 절도를 하게 된다"면서 "검찰이 특가법이 아니라 형법으로 기소할 수도 있는데, 좀 유연성을 발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김도희 변호사(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장)는 "검찰이 피고인의 사정을 감안해서 특가법에 규정된 형량보다 낮게 구형한 것 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기소유예'를 하면 좋지 않을까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검찰이 특가법으로 기소하면 실형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한국도시연구소와 경향신문이 지난 4월에 펴낸 '떠도는 사람들의 빈곤과 범죄 보고서'에선 "2018년 한 해 동안 특가법상 상습 강도·절도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1762명 중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단 1명에 그쳤다(법원행정처, 2019)"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왜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렸나
 
A씨는 지난 3월 23일 배가 고파서 수원의 한 고시원에서 구운 달걀 18개를 훔쳤다
 A씨는 지난 3월 23일 배가 고파서 수원의 한 고시원에서 구운 달걀 18개를 훔쳤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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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법이나 검찰의 태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A씨와 같은 가난한 이들이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게 우선일 겁니다. A씨가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더라도, 밥은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면 '달걀'을 훔치진 않았을 겁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였지만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거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에서 행정기관에서 소재 파악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원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체포될 당시 A씨는 다른 고시원(현재 폐업)에서 원장의 배려를 받아 '후불'로 고시원을 이용했습니다. 또한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었고, 알려졌다시피 식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것은 생존 범죄"라고 강조합니다. '생계형'을 넘어서 정말 살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라는 것입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무료급식소들이 문을 닫은 상황이 A씨에게는 큰 타격이 됐을 거라고 진단합니다.

나아가 이 활동가는 생존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빈곤층에 대한 '급식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어느 곳으로 가면 무조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공공 무료급식소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어 그는 수형자들에 대한 '사회 복귀 과정'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감옥에 갔던 A씨의 경우 출소하면 주거나 생계에 관해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런 복지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교도소 등에서 충분히 일러줬는지 의문이라는 겁니다.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가 빈곤층의 경제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에 장발장은행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장발장은행은 경범죄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돈이 없어서 노역을 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단체입니다. 이곳에 찾아오는 이들이 늘었다는 사실은 벌금조차 내지 못하는 저소득층의 생계형 범죄가 증가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장발장 방지법'이 필요하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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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장발장'과 같은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법 개정'을 포함한 사법체계 개혁을 이야기합니다. 앞서 언급한 '빈곤과 범죄 보고서'는 특가법의 실형 하한을 낮추는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하고, 징역형뿐만이 아니라 벌금형도 추가해야 된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또한 "상습적으로 무전취식 등 생계형 범죄를 행하는 가난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에 무력감을 토로한 판사도 있다"며 엄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복지 시스템과 연관시킬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5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불합리한 사법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복지시스템과 형집행제도를 연계하는 '현대판 장발장방지법'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또한 '양형개혁법'을 제정해 "양형 판단 주체를 다양화하고 형량 결정의 재량권을 넓히며, 생계형 범죄 등의 법정형 하한을 내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판사 출신 국회의원의 포부에도 불구하고 아직 변화는 멀어보이기만 합니다. 코로나19로 악화된 사회안전망에, 범죄의 규모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반복된 범죄'라는 점을 더 중시하는 사법체계는 어디선가 또 다른 '코로나 장발장'을 탄생시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A씨에게는 지금껏 '인간의 얼굴을 가진 법'이 적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하루 빨리 '장발장방지법'이 탄생하길 기원합니다.

태그:#코로나장발장, #장발장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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