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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두고 그야말로 한국사회가 뜨겁다. 특히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취준생들과 정규직 노조에서 반발감이 큰 모양새다. 20대의 '박탈감'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이번 정규직 전환을 두고 '로또취업'이라 규정하는 목소리도 있는 한 편, 인천국제공항에 취직하기 위해 토익을 10번이나 봤다던 '눈물겨운' 경험이 언론기사를 통해 퍼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분노의 목소리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똑같은 20대로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왜 언론은, 그리고 정치권은 '공사의 정규직 사무직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20대 청년'의 목소리만 담고 있나? 

<복학왕>의 현실은 언론에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인 삶의 경로가 공공기관 정규직에 붙어서 안정적인 인생계획을 꾸리는 데에 있지는 않지만, 나 역시 주변으로부터 공공기관에 도전해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보통 공공기관 채용시험이 쉽지가 않고 '스펙'도 나름 받쳐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대학을 다니면서 학점도 채우고 스펙도 관리하며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이런 경로를 따라 대학 4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하지만 그건 오롯이 내가 4년제 사립대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놀랍게도(?) 수도권이 아닌 곳에도 사람이 살고, 대학이 있으며 그곳에서 삶을 꾸려 나가는 이들이 존재한다. 단순한 숫자로만 봐도 명백하다. 대학교육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수도권 대학의 입학정원은 18만7940명이고, 수도권 외 대학은 29만6835명이다. 

결국 서 있는 곳의 차이가 가치관과 삶의 태도의 차이를 부를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청년세대들은 자기계발에 몰두하면서 성공을 위해(정확히 말하면 취직을 위해) 달려간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잘 될까 말까 한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이다. '생존'이 목표가 되면서 더 악착같이 취직을 위해 스펙을 쌓고 학점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는 <복학왕의 사회학>(2018)을 통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더 나아가 오늘날 비수도권 대학생들이 그런 '표준적 삶의 모델'을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최 교수가 해당 책과 논문을 쓰는 데에 있어 영감을 받았다 하는 기안84의 네이버 웹툰 <복학왕>은 독자들로부터 '리얼리즘'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코믹함을 살리기 위해 과장된 묘사들도 있지만, 결국 <복학왕>이 보여주는 것은 서울 바깥에서 대학을 다니는 이들의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처절한 삶이다. 

공부에는 딱히 흥미도 소질도 없는 것 같은데 별다른 꿈은 없는, 적당하게 살다가 적당한 직장을 얻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는, 최 교수는 이를 '적당주의'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적당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은 웹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지방대 학생들이 채택한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들의 삶을 구성하는 사회경제적 자본이 그러한 적당주의 스타일을 강화하는 데에 일조한다. 

그렇게 경쟁에서 탈락하고 정규직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인 그들의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갖는단 말인가? 좋은 직장, 안정된 직장을 위해 자기계발에 힘쓰면서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포섭된다는 분석이 오늘날 청년세대를 바라보는 주류의 관점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시선마저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청년담론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사회학자 최종렬 교수는 이것을 지방에서 20대들을 가르치면서 직접 몸소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충실히 담아내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 텐데, 인천국제공항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들의 모습을 보면 같은 20대 청년으로서 너무나 씁쓸한 것이 사실이다. 기사만 보면 세상에는 정규직의 안정된 고소득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스펙을 쌓는 청년들만 존재하는 것만 같다.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게으른 저널리즘'이 아닌가 싶다. 

공정성 넘어 공공성으로 

사실 이런 '게으른 저널리즘'은 이번만 드러난 문제는 아니다. 작년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정국' 때도 한국 언론은 '핀트'가 어긋난 비판에 일조했다. 분명 조국을 부모로 두었기 때문에 누리는 것이 가능한 부분이 있었고, 특혜 논란에서 벗어나기 힘든 의혹들도 많이 존재했다. 

이것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대학생들이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언론들이 서울 상위권 대학의 학생들의 정치적 집단행동을 조명하는 데에 더 집중하는 언론들의 행태가 더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조국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에 대해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각자의 사회경제적 위치는 너무나도 달랐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거나, 아니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부모가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이런 논란도 있었다. 고려대학교의 조국 규탄 집회 참가자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에서는 집회 집행부에 세종캠퍼스 학생이 한 명 참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논란이 되었던 것. 세종캠 학생의 참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은 '안암캠(서울캠)에서 진행되는 집회에 왜 세종캠 학생이 참여하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본교와 분교 사이에 '계급'이 나뉘는 문제는 대학가의 오래된 뜨거운 감자였다. 같은 법인 아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캠퍼스의 위치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냐는 것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국 사태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통해 좋은 학벌과 그 이후의 임금 수준이 결정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쳐야 한다는 것 아닌가? 학벌주의와 서울중심주의를 공고히하는 방식으로는 조국을 비판하기 어렵지 않을까.

결국 노력한 대로, 능력대로 인정을 받는 것이 공정한 것 같지만,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사실 기회조차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그 기회를 잡고,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을 적용했을 때 그에 따라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또한 누군가의 '노력'의 가치는 너무 쉽게 폄하된다. 그리하여 수능, 토익, 공채시험 등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형태로 노력이 가시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노력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분교는 본교 학생보다 수능점수가 낮으니까 차별받아도 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보다 덜 노력했으니까 차별받아도 된다는 논리는 그렇게 생겨난다. 

결국 '공정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로 공정한지를 물어야 하는 이유다. 오히려 우리는 공정성을 넘어 공공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는 '덜 배제하고 덜 차별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이번 '인국공 사태'를 통해 '누가 정규직이 되어야 하는가'를 넘어서 우리 사회는 청년세대를 경쟁으로 몰아넣는 불합리한 노동시장의 구조를 지적하는 것이 '뉴노멀'이 되어야 한다.

태그:#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공공성, #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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