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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끼리 이런 자조 섞인 우스개를 많이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외국에서 자식 교육 시키고 오면 교육전문가 대접도 시켜주고, 신문에 칼럼도 연재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검색해보면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에서 자녀 교육을 시킨 경험으로 교육 관련 신문 연재를 하거나 책을 내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대부분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유럽 교육은 이렇게나 좋은데, 한국 교육은 큰 문제라는 식.

유럽의 교육에서 한국 교육이 본받을 점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로 참조할 만한 것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자녀 교육 하나 시킨 것으로 거대한 교육 시스템을 단편적으로 비교하고 무모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4일 방송된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새로운 나라를 만든 독일의 교육’ 편에서 김누리 교수는, 독일교육엔 없고 우리교육엔 있는 경쟁교육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경쟁 문화에 대해서도 이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지 그것이 정의라거나 반드시 필요한 무엇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새로운 나라를 만든 독일의 교육" 편에서 김누리 교수는, 독일교육엔 없고 우리교육엔 있는 경쟁교육을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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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미국 교육에 대한 동경

얼마 전에 독일 교육 예찬론을 둘러싼 논쟁이 한겨레 지면을 통해 전개된 적이 있다.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가 독일 교육 예찬론을 펼치자, 연세대 사회학과 최성수 교수가 '독일 교육에 대한 오해'라는 제목으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김누리 교수의 칼럼 내용의 술화구조는 '한국 교육 vs. 독일 교육'이다. 한국 교육은 경쟁 교육과 반교육이라는 맥락으로 연결되고, 독일 교육에는 교육 개혁, 새로운 나라가 연결된다. 결론은 우리가 독일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로 흐른다.

그러나 반론이 만만찮다. 어릴 때부터 직업 교육으로 갈 학생이 정해지는 병립형 학제의 특징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 독일 교육의 비경쟁적 요소는 실은 경쟁과 배제가 이뤄지는 지위 재생산이란 어두운 면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 유토피아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가릴 때만이 나타나는 환상이다.

그나마 이런 반론이 주류 언론 내부에서 체계적으로 나온 것은 우리나라 교육 담론계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현상에 속한다. 유럽이나 미국 교육에 대한 예찬론이 나오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거나 함께 한국 교육을 십자가에 매달아 못박아버리는 행태가 반복되어 왔다. 만약 독일 교육 예찬론이 나온다면 뒤이어 그 반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어떻게 한국 교육을 독일 교육처럼 바꿔나갈까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수순이 전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마디로 한국 교육 까기 올림픽에서는 언제나 승자만이 존재하지 패배자는 없는 아주 이상한 게임의 룰이 작동해 왔다. 독일 교육 예찬론에 대해 찬반 양론이 제기된다는 것은 이런 지적 풍토에 약간의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김누리 교수의 독일 교육 예찬론은 낯설지 않은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홍세화씨가 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이 1995년에 나온 이후로 유럽 사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동경은 거의 신드롬에 가까웠다. 문민정부가 출범했다고는 하나 수평적 정권교체의 희망이 보이지 않던 당시 시대상에서 이런 책이 갖고 있던 의의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로부터 우리는 또 많은 시간을 축적해 왔다는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책이 출간된 1995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겪은 삶의 경험 자체가 매우 특별한 것이었고, 해외여행도 활발하지 않았을 때라 막연한 동경 같은 것도 없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만 봐도 문민정부이긴 했지만, 군부독재와의 타협에 의해 형성된 정권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주기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서방 선진국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독일과 프랑스를, 영국을, 미국을 환상적으로 바라보기에 충분한 사회적 토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연히 교육이라고 이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21세기 이후에 새로운 버전으로 나온 것이 북유럽 교육 예찬론이다. 대표주자는 핀란드였다. 핀란드가 떠오른 것은 역설적이게도 국제 성적 비교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테스트였다. 경쟁 교육을 시키지 않아서 좋다는 나라의 수학 교육 우수성을 탐방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국가 성적이었던 것. 줄 세우기를 하지 않아 좋다는 나라인데 국가 간 줄 세우기 테스트에서 1등을 해서 좋다는 평가가 나오니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더 재밌는 것은 한국 역시 OECD PISA 테스트에서 핀란드와 수위 다툼을 하는 나라라는 것. 오히려 한국 학생의 성적이 더 높을 때도 있다. 그나마 더 아이러니했던 것은 같은 조사에서 핀란드 학생들의 수학 흥미도가 우리나라보다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방송 토론에서 학부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핀란드가 아니고, 미국도 아니다."

우리는 교육 선진국이 아니고 후진국이라는 함의가 들어가 있다. 교육에 대한 우리 모두의 불만이 많고 개혁에 대한 열망도 높은 것은 이해하더라도, 과연 미국과 핀란드에는 우리와 같은 고민이 없는 것일까?

코로나19가 가져온 충격 중에 하나가 서구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갖고 있던 사회 인프라의 민낯이다. 마스크를 권장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마스크 쓴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풍토나 아직까지 코로나19가 미치는 파장을 가짜 뉴스쯤으로 취급하는 경향들이 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본적인 체계나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체계가 놀라울 정도로 후진적인 것을 목격할 수가 있다.

물론 이런 것들 하나로 서구 선진국이 쌓아온 수십 년의 성과들을 폄하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우리가 갖고 있던 막연한 환상을 거둬내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직업 교육 현황 이외에도 대학 평준화를 이뤄냈다는 프랑스의 고등 교육에는 그랑제꼴이라는 독점된 엘리트 교육이 존재한다. 대학 평준화만 이야기하고, 그랑제꼴을 빼먹는 것은 교육 현실을 왜곡하는 것일 수 있다.

미국으로 자녀 유학을 보낸 사람들이 한국의 공교육을 비난한다. 나름 경청할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불평등 교육 환경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 교육 찬양론 역시도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중학교 2학년·초등학교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3차 등교개학일인 3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과천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창문을 열고 수업을 받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중학교 2학년·초등학교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3차 등교개학일인 3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과천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창문을 열고 수업을 받고 있다. 2020. 6.3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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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대주의 이젠 그만

올해 18년 차 교사이다. 그것도 경기도에 근무해서 농촌, 대도시, 중소도시 등등 다양한 환경의 학교에서 근무했다.

그럼에도 한국 교육에 대해서 논하기 위해서는 경험만으로 부족하다. 여러 자료를 찾아봐야 하고 다른 환경에서 경험한 여러 교사들의 의견을 구해야 만이 겨우 어떤 상을 그릴 수 있다. 때로는 뻔히 우리 학교에서 하고 있는 업무인데도 해본 적이 없어서 책임감 있게 말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교육 경험이 일천한 사람들이 만물박사처럼 모든 것에 정통한 듯이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본다. 미국 그 넓은 땅덩이에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였기에 일반화된 미국 교육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도 많다. 높은 교육열로 한국에서 만족 못 해 바다 건너 미국까지 간 학부모들이 보낸 학교는 미국에서 과연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곳일까? 과연 미국의 오바마가 한국 교육 예찬론을 펼쳤던 것을 단순한 정보 부족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 어느 분야보다 다양한 변이가 많고, 여러 맥락이 작동하는 것이 교육 현장이다. 문화 사대주의의 시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교육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동안 MLB의 문화가 한국 야구 문화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했다. 코로나19로 미국 MLB보다 먼저 개막한 대한민국의 KBO를 바라보면서 본고장 야구 문화에 오히려 한국 문화가 전파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교육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고담준론이 아니라, 현실에 필요한 현장 교육학이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세계 속의 우리를 바라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 번쯤 우리의 경험을 세계 보편주의 시선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 발걸음을 시작해보려 한다.

태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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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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