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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난민법의 시행으로 공항의 문이 열렸지만 공항에 온 난민들은 여전히 인권 침해를 받고 있다. 기획 '난민, 공항에 갇히다'를 통해서 '공항 난민'의 현실과 대안을 짚는다.[편집자말]
영화 <터미널> 주인공 빅터(톰 행크스)는 JFK 공항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가기 직전 고국인 크로코지아에 쿠데타가 일어나 일시적으로 유령국가가 돼 고국에 돌아갈 수도, 뉴욕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된다. 공항에 머물면서 좌충우돌 끝에 주인공은 친구도 생기고 아름다운 승무원과의 로맨스도 키워나간다. 그런데 만일 주인공이 아팠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한국판 터미널'이라고 불리는 앙골라 난민인 루렌도씨 가족의 소송을 대리하면서 긴급상륙허가 절차를 조력했다. 루렌도씨의 부인 바체테씨에게는 원래 발치해야 할 치아가 있었는데 공항에 체류하며 치료를 미루다 보니 진통제를 써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입을 제대로 벌리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바체테씨는 어떻게 치과에 갔을까
 
 긴급상륙허가로 진료 중인 바체테씨
 긴급상륙허가로 진료 중인 바체테씨
ⓒ 송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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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상륙허가'는 배나 비행기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잠시 국내로 입국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공항 난민도 이 제도에 의해 잠시 입국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긴급상륙허가 신청권자는 공항 난민이 한국에 올 때 타고 온 비행기의 항공사이므로 환자가 아프다고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긴급상륙허가 신청을 요구하자 파견할 항공사 직원이 없다는 이유로 기다리라는 답을 받았다. 공항 난민은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고가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 무상 진료가 가능한 곳을 찾다가 일산에 위치한 병원을 제안했더니 항공사에서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근처로 알아볼 것을 요청해왔다. 

다행히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인천시 부평구의 치과를 연결해주었고, 항공사도 긴급상륙허가에 협조해주기로 했다. 

병원 진료 스케줄과 해당 항공사 직원의 일정, 방문에 동행할 변호사 일정을 맞춰 날짜와 시간이 결정돼야지 긴급상륙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는 의미다. 출입국항에 있을 동안은 왕진도, 긴급상륙도 뜻대로 할 수 없기에 바체테씨는 주사기로 투약해야 하는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을 손가락을 이용해 잇몸에 직접 바르면서 결정된 상륙허가일까지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드디어 지난 10월 4일 금요일 오후 3시 30분, 약속된 시간이 되자 항공사 직원은 바체테씨를 인솔했다. 항공사 직원이 출입국관리법 제15조에 따라 신청서를 제출했고, 바체테씨는 행정당국의 허가를 받아 입국심사대를 통과해 입국할 수 있었다. 변호인 접견을 위해 공항을 몇 번이나 방문했지만 공항 밖을 함께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라 괜히 긴장이 됐다.

별도의 차량 지원이 없어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바체테씨와 함께 택시 뒷자리에 앉아서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며 손을 잡았다. 손이 차디찼다. 그 긴 시간을 공항에서 머무르다가 바라보게 된 한국의 풍경이 어떠한 느낌일지 짐작하니 머리가 복잡했다. 조금 더 따뜻한 계절의 풍경이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접견을 하러 가는 공항버스 안
 접견을 하러 가는 공항버스 안
ⓒ 송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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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치아 뽑아... 적절한 시기에 치료됐다면 

병원에 미리 진료 일정을 잡아둔 터라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바체테씨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데 통역인을 대동하지 못해 진료에 필요한 의사소통은 번역 앱을 이용했다. 우선 치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본인의 동의를 받아 발치와 신경치료를 진행했다. 

입국허가가 늦어질 경우를 대비해 가능한 모든 치료를 진행하고, 약을 처방받았으며 진료 내역과 처방전 내용, 주의사항을 번역 앱으로 열심히 전달했다. 진통제를 건네면서 냉찜질이나 얼음을 구하기 어려울 테니 차가운 물이나 캔 음료수로 통증을 완화하라고 당부했다. 

진료를 마치고 상가에서 나오니 이미 주변이 어둑해져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 입국심사대에 도착해서야 긴급상륙허가 일정이 마무리됐다.

결국 바체테씨는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 취소소송에서 승소해 287일만에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 머무는 동안 총 6개의 충치를 뽑았다. 6월경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충치 2개를 뽑았고, 2심 승소 직후에 충치 4개를 더 뽑았다. 

안압이 높아져 실명 위기가 오기도 하고, 우울 증세로 상담받아야 했다. 긴급상륙허가를 진행하기는 하였으나 만약 악화되기 전에 적절한 시기에 의료지원을 진행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항이라는 공간이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듯, 긴급상륙허가도 말 그대로 긴급한 경우에 한해 진행돼야 하는 절차이다. 현재 우리나라 출입국항에서 생활 중인 난민 신청자의 건강권과 의료 접근권 침해가 매우 심각하다. 

공항난민이 입국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승구역, 송환대기실에 머물고 있다고 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까지 제한해서는 안 된다. 위급 시, 공항 내에서 최소한의 의료시설과 의료진에 접근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체계를 갖추기 어렵다면 적어도 인근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야 하고, 환자의 요청이 있다면 최대한 빠르게 일정을 조율해 긴급상륙허가를 통해 적시에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지원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관련 기사] [난민, 공항에 갇히다①] 이집트인 모하메드, 인천공항에서 주먹질을 당하다 http://omn.kr/1nzxk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송윤정 기자는 공익사단법인 '정'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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