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꼰대인턴>의 한 장면

드라마 <꼰대인턴>의 한 장면 ⓒ MBC

 
1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꼰대인턴>은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켰던 tvN <미생>의 코믹 판타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오피스물이다. 신입사원 시절 최악의 꼰대 상사였던 이만식(김응수)을 이제는 부하직원으로 맞게 된 가열찬(박해진) 부장의 통쾌한 갑을 체인지 복수극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내세워 웃음을 자아냈다.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직장생활의 고단함, 고지식한 꼰대 문화와 갑을관계의 부조리함을 체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꼰대인턴>은 풋풋한 청년이었던 가열찬이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과정, 갑의 입장이었던 이만식이 을의 신분으로 내려가서 겪는 시행착오를 통하여 조금씩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성장극이다.

회사의 성공이 곧 대의이고, 내가 곧 회사라고 생각하는 과거의 이만식은 조직의 성공을 위하여 개인의 희생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꼰대였다. 사회 초년생 시절, 그러한 이만식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었던 가열찬은 정작 직장 상사가 된 현재의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이만식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을 발견한다. '꼰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단순히 나이나 성격의 차이가 아닌 사회 구조와 환경의 산물이며, 이들 역시 회사라는 거대한 먹이사슬 안에서는 똑같은 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진정한 꼰대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공감능력의 차이에 있다. 내 생각, 내 경험과는 다른 의견, 다른 사실과 마주했을 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일수록 꼰대지수가 악성에 가까워진다. 가열찬과 이만식 모두 회사와 사회라는 괴물이 만들어낸 후천적 꼰대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현실과 마주했을 때 고뇌하고 가책을 느낀다는 점에서 적어도 구제불능은 결코 아니다.

드라마는 가열찬과 이만식이라는 두 인물 중 어느 한쪽으로 섣불리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애정어린 시선을 보낸다. 마냥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인물로만 보였던 이만식은 자살 시도를 했던 거래처 사장을 오랜시간 남몰래 돌볼만큼 속정 깊은 츤데레로 묘사된다. 이만식의 방식은 올드하고 막무가내처럼 보이지만, 오랜 사회 경험과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하여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가끔씩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현자같은 통찰력도 보여준다.

가열찬은 개인의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망과, 한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구성원들을 지켜야하는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기 위하여 고민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드라마는 한때 철천지 원수였던 두 사람이 바뀐 처지에서 비로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금씩 의기투합해가며 '브로맨스'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꼰대와 어른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드라마의 매력을 살린 것은 악질 꼰대와 귀여운 어른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배우 김응수의 호연이었다. 최근 인터넷 밈현상을 일으킨 <타짜>의 '곽철용 신드롬'을 통하여 재조명받기도 했던 그는 <꼰대인턴>을 통하여 또 한 번의 인생 캐릭터를 선보였다.

 
'꼰대인턴 방구석 팬미팅' 김응수, 언재나 화이팅! 김응수 배우가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앞에서 열린 MBC 수목 미니시리즈 <꼰대인턴> 방구석 팬미팅 출근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꼰대인턴 방구석 팬미팅' 김응수, 언제나 화이팅! 김응수 배우가 6월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앞에서 열린 MBC 수목 미니시리즈 <꼰대인턴> 방구석 팬미팅 출근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또지면 넌 변사체가 된다", "신사답게 행동해" 등 언제든 곽철용표 대사를 날릴 것 같은 근엄한 보스 이미지와는 달리, 적당한 비굴함과 능글맞음을 오고가는 평범한 중년 아재 이만식에 빙의한 듯한 김응수표 코믹 연기는, 도저히 그가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랜섬웨어 사건으로 회사에서 해고되고 방황하는 이만식을 가열찬이 다시 데려오는 장면에서 보여준 김응수의 한없이 해맑은 표정연기는 두 사람의 '브로맨스 케미'가 가장 극대화된 <꼰대인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아쉬운 부분은 배우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이만식이라는 좋은 캐릭터를 좀 더 입체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만식의 과거 행적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가열찬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시점에서 이만식이 가지고 있던 꼰대로서의 정체성이나 캐릭터적인 매력은 오히려 반감되고 갈수록 코믹하고 과장된 감초 역할에 머물렀다. 

코미디 드라마임을 감안해도 회사임원을 지냈던 이만식이 시니어 인턴 역할에 너무 쉽게 적응하는 모습이나 가열찬과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급격한 변화 등은, 이야기 초반부의 설정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어서 오히려 일관성이 떨어져 보였다. 초반부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수 있는 전형적인 꼰대였다면, 후반부의 이만식은 진정한 어른의 역할에 대한 기대치를 반영한 인물로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기성세대의 사고와 입장 그 자체를 깊이있게 이해하기보다는, 오직 청년세대의 관점에서 보고싶은 기성세대만 묘사하는 데 그쳤다는 게, 이만식이라는 캐릭터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다.

웃음기를 좀 더 빼더라도 이만식이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이나 세대차이에서 오는 위화감을 설득력 있게 묘사했더라면 더 공감대를 불러올 수 있었을 것이다. 동료인턴이자 가열찬의 라면뮤즈였던 이태리(한지은)의 아버지였다는 생뚱맞은 반전은, 막상 이야기 흐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사족에 머물렀다. 

<꼰대인턴>은 <미생>과 비슷하게 회사생활을 통하여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사고를 통하여 한국 사회의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결말은 훨씬 낭만적이었다. 드라마 <미생> 역시 원작 웹툰보다는 훨씬 희망적이고 해피엔딩에 가까웠지만, 직장의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 전개 과정은 대단히 건조하고 현실적이었다.

그에 비하여 <꼰대인턴>은 시종일관 만화적인 상상력과 판타지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문제는 진지해야할 상황에서도 너무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 반복되다보니, 오히려 그동안 쌓아온 스토리의 일관성이나 캐릭터의 공감대까지 무너졌다는 점이다. 회사 경영권 싸움을 둘러싸고 납치, 협박, 녹취 폭로전 등으로 이어진 클라이맥스는 권선징악의 통쾌함보다는 오히려 스토리가 산으로 가버렸다는 느낌을 줬다. 

가열찬과 이만식의 브로맨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사가 어중간하게 마무리된 점도 아쉽다. 가열찬과 이태리의 러브라인은 줄곧 썸만 묘사되다가 마지막회에 급진전되고, 계악직 사원 탁정은(박아인)의 직장내 성추행 폭로는 회사생활에서 충분히 벌어질수 있는 일이지만, 정작 극중에서는 이전 에피소드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어서 뜬금없다는 느낌을 줬다. 다른 미니시리즈보다 짧은 12회 분량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개성 있는 조연들을 대거 배치해놓고도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쉬웠다.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꼰대인턴>은 오피스물 코미디로서는 참신한 설정과 매력적인 캐릭터, 현실적인 소재의 공감대 등을 고려할 때, 언젠가 한번 더 활용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에피소드 구성이나 캐릭터를 보완하여 언젠가 시즌2 혹은 새로운 리메이크로 재정비하여 돌아오는 것도 기대해볼 만하다. 물론 그때도 '꼰대인턴'이라는 설정에 김응수보다 더 나은 배우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김응수 꼰대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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