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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명의 아이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시간에 등교하고,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책상에 앉아, 똑같은 시간표와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고, 똑같은 시험을 치러 똑같은 형식으로 평가를 받고 대학에 진학하는 게 과연 정상적인 교육인지 의문이 들어요.'

30년도 더 지난 고등학교 시절, 내심 존경했던 한 선생님께 던진 느닷없는 질문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고, 엉뚱한 질문 한다고 혼내시기는커녕 이해해주시리라 여겼기에 부러 찾아가 여쭌 것이다. 여느 선생님들 같았으면, 대번 쓸데없는 공상을 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며 혼쭐이 났을 게 틀림없다.

늘 진지했던 선생님의 우문현답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산업사회에서는 표준화하고 획일화된 교육이 불가피하지만, 장차 너희가 커서 맞이하게 될 정보사회에서는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교육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수업내용부터 교실 공간까지, 그때의 학교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을 것이다."

당신이 제자 앞에서 예측한 미래 사회는 고작 '정보사회'였다. 처음 부팅시키기 위해 별도의 플로피디스크를 삽입해야 하는 286 컴퓨터조차 보기 드물 때였으니, 미래에 대한 그의 상상력을 탓할 순 없다. '정보사회'라는 말조차 고루하게 여겨질 만큼 세상은 그의 상상보다 훨씬 빠르게 변했고,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선생님과의 인연을 뒤로 한 채 대학에 입학했고 서른 즈음에 운명처럼 교사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교단에 선 뒤 20년 넘게 줄곧 선생님의 답변을 화두로 삼았다. 주어진 조건에 허덕이면서도 표준화하고 획일화된 교육을 탈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과 끼를 발현시키기 위해 상담부터 수업방식까지 바꿔가며 관행에 맞섰다고 자부한다.

'학교는 거푸집이 아니다.' 이따금 익숙함에 길들어 의지가 나약해질 때마다 부러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메모장의 글귀다. 수업 시간 자신도 모르게 다양한 얼굴과 재능을 가진 수많은 아이를 똑같은 사람이 되라며 이끄는 것 같아 놀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따끔한 죽비가 되어주는 나름 고마운 금언이다.
  
갑자기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이유가 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는데도 '표준화하고 획일화된 교육'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을 요즘 들어 새삼 절감하고 있어서다. 교사 대상 연수마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의 줄임말)식으로 진행되는 현실이다. 아이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말살하는 교육이라고 나무라기에 앞서, '표준화하고 획일화된' 지금의 교사들부터 탓해야 옳을 성싶다.

'일타강사' 말 받아 적는 진학 컨설팅, 시도교육청의 몸부림
  
 
 최다니엘은 2012년 방송된 KBS 월화드라마 < 학교 2013 >에서 잘나가던 전직 언어영역 일타강사이자 기간제 교사로 나왔다. 당시 그는 선생의 질이 아이들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신념과 학원처럼 학생을 대하면 학교가 달라진다는 생각으로 학생을 대했다.
 최다니엘은 2012년 방송된 KBS 월화드라마 < 학교 2013 >에서 잘나가던 전직 언어영역 일타강사이자 기간제 교사로 나왔다. 당시 그는 선생의 질이 아이들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신념과 학원처럼 학생을 대하면 학교가 달라진다는 생각으로 학생을 대했다.
ⓒ (유)학교문화산업전문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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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로서 불쾌한 연수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진학 컨설팅'. 학교는 물론  최근 들어선 시교육청까지 나서서 교사의 연수 참여를 독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연수야 교사의 역량을 제고하고 재충전하는 재교육으로서 중요한 과정이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배우는 기회로서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진학 컨설팅'이라는 이름의 연수는 교사의 자질과 역량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말 그대로 대학 입시 실적을 높이기 위한 요령을 공유하는 자리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어떻게 '마사지'해야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눈에 드는지 이른바 '일타 강사'(일등 스타강사의 줄임말)들이 교사들에게 조언해주는 연수다. 비용은 대개 시교육청의 예산에서 지원한다.

그들이 강조하는 입시 실적은 당연히 서울 소재 명문대와 의치대 등 상위권 대학 진학을 말한다. 같은 성적으로 한 단계 높은 대학에 합격하고, 지방대 갈 성적으로 수도권 대학을 노리는 방법에 대해 일러주면, 교사들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장관들이 대통령 말씀 받아적듯 열심히 메모한다. 어느덧 '진학 컨설팅'은 학교마다 가장 중요시하는 필수 연수가 됐다.
  
이를 주관한 시교육청에 문제를 제기하면, 한결같은 답변이 되돌아온다. 서울에 견줘 진학 관련 정보가 부족해서 입시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학교의 진학 담당 교사들이 모두 원한다는 것. 예산을 들여서라도 전문가를 초빙해 '비법'을 전수 받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교사들이 통사정한다는 거다. 시교육청이 아예 입시 실적 경쟁의 '중매인'으로 나선 모양새다.

학생부 작성법에 대한 컨설팅은 온전히 학벌구조에 기대고 있다. 이미 교육부에서 해마다 학생부 기재요령을 책으로 발간해 학교마다 배포하고 있으며, 영역별로 기록하지 말아야 할 내용과 정정 방법 등을 상세하게 적고 있다. 그러나 컨설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연수에 참가한 교사들 역시 기재요령에 이미 적혀있는 내용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 기록의 일체화를 통한 내실 있는 진학 지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결국엔 '입시 실적 올리기'로 귀결된다. 학교별로 최적화된 진학 지도의 로드맵을 작성하도록 돕겠다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로드맵이란 정작 교육과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입시 준비 요령이다. '일타 강사'의 힘을 빌려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몸부림인 셈이다.

시교육청이 '진학 컨설팅'에 나선 진짜 이유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4일 오전, 대구 경북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이번 시험은 전국 2053개 고등학교와 425개 지정학원에서 동시에 치러진다. 6월 모의고사에 응시한 수험생은 54만183명이고 오는 11월에 실시될 2020학년도 수능시험과 시험의 성격, 문항 수 등은 동일하다. 2019.6.4
 2020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2019년 6월 4일 오전, 대구 경북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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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교육청이 '진학 컨설팅'에 나선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담임 교사의 수준에 따라 학생부의 '품질'이 달라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는 건 불공정하다며, 학생부의 표준화와 획일화를 부추기고 있다. 한 아이의 학창 시절을 고스란히 담아야 할 학생부가 기업체의 '이력서'마냥 변질되는 양상이다.

교사마다 아이를 보는 눈과 평가하는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걸 진솔하게 글로 표현하면 된다. 학급과 교과 담임 교사 여럿의 시각이 담겨 있으므로, 애써 미사여구를 동원해 꾸밀 필요도 없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아이의 특장점을 글이 아닌 그림 등으로 나타낼 수 있어도 좋겠다. 제대로 된 학생부라면, 아이들 수만큼 다양하고 개성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각자의 일기장 같은 학생부는 컨설팅 과정에서 지적당하기 일쑤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내용이든 형식이든 표준화하고 획일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개성적이면, 대학에서 평가 기준을 세우기가 곤란하다는 뜻이다. 만약 불합격자가 대학 측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납득할 만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려워 필경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안타깝게도 학생부는 대학 진학과 동시에 효용 가치는 사라진다. 교사는 물론 아이들조차 동의하는 바다. 컨설팅에 참가한 교사 중에 아이들의 학창 시절을 어떻게 담아낼지를 고민하는 경우는 단언컨대 없다. 오로지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의 입맛에 맞도록 학생부를 만들어 모두 합격시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전히 교사의 실력은 진학 실적으로 증명된다고 믿는다.

코로나19 감염보다 중요한 진학 컨설팅
   
 지난 1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연수원 우면관에서 열린 예비 고3 학부모 대상 진학지도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가 관련자료를 펼치고 있다. 이날 강사로 나선 교사와 입학사정관은 2018학년도 대학입시의 주요 내용, 진학지도 연간 스케줄, 대입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준비법 등을 소개했다.
 지난 2017년 1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연수원 우면관에서 열린 예비 고3 학부모 대상 진학지도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가 관련자료를 펼치고 있다. 이날 강사로 나선 교사와 입학사정관은 2018학년도 대학입시의 주요 내용, 진학지도 연간 스케줄, 대입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준비법 등을 소개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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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와중에도 '진학 컨설팅'이 진행되는 걸 보면, 우리 사회에서 대학 입시는 생명과 견줄 만큼 절체절명의 과업으로 여기는 듯하다.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 이곳 광주에서도 '빛고을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5월 말부터 7월 말까지 상반기 컨설팅이 이어지고 있다. 총 22개 일반고의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대상이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전격 취소될 만도 하건만, 참가자 수를 줄여서라도 개최하려는 학교가 있는 듯하다. 이를 주관한 시교육청에선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라는 말만 되뇔 뿐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일단 행사가 열리면 방역지침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걸 그들이 모를 리 없다. 만에 하나 학교 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학교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속셈일까.

이번 컨설팅 위원은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 전·현직 입학사정관과 학교장, 교육 전문 기자, 오랜 진학 지도 경험을 지닌 교사 등 4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교육청 담당자는 입시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의 대학 입시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이 '갑'이고, 고등학교는 물론 교육청조차 '을'임을 자인한 셈이다.

우리 교육에 컨설팅이 필요하다면 입시가 아니라 교사의 자질과 역량을 키우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이 우선되어야 한다. 시교육청이 학벌구조 타파에 나서기는커녕 혈세 들여가며 '일타 강사'을 불러다 학생부를 '이력서'로 만드는 법을 일선 교사에게 전수해달라고 애걸해야 되겠는가.
  
부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대학에 종속시키는 현실에 부화뇌동하고, 교사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진학 컨설팅'을 멈춰달라.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한 마당이다. 학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 시작은 대학 입시가 쥐고 흔드는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이들조차 명문대만 갈 수 있다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건 문제 될 것 없다고 말하는 교육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확진자가 속출하는 와중에도 '진학 컨설팅'을 고집하는 학교와 책임을 떠넘기는 시교육청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광주광역시 안전안내문자가 도착했다. 확진자가 22명 추가 발생했고 현재 역학조사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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