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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과 박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간 도보행진을 하고 올라온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밝은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182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과 박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간 도보행진을 하고 올라온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밝은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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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마지막 해고 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복직 투쟁에 나선다. 암 수술 후 투병 중인 상황이지만, 올해 복직이 안 되면 더는 일터로 돌아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만약 김 지도위원이 계속 한진중공업에 다녔다면 이번 연도가 그의 정년이다.

김 지도위원의 결단은 최근 한진중공업을 둘러싼 움직임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매각을 앞둔 한진중공업이 희망퇴직 절차에 들어가면서 앞으로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와 한진중공업지회는 오는 23일 오전 11시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서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조합원 복직 촉구' 기자회견을 연다. 이 자리에는 김 지도위원과 김호규 전국금속노조 위원장, 문철상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 김재하 민주노총 부산본부장, 심진호 한진중공업지회장 등이 참석한다.

조선소 여성 용접공 김진숙, 35년째 해고 노동자

김 지도위원은 지난 1981년 대한조선공사주식회사(현 한진중공업)에 유일한 여성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조선소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그는 5년 뒤인 1986년 2월 노조 대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됐지만,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경찰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그해 7월, 결국 그는 징계 해고됐다.

그가 당시 배포한 유인물은 A4용지 한 장도 되지 않는 분량의 소회를 적은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와 회사는 그를 '빨갱이'와 '해고자'로 만들었다.

김 지도위원은 이후 한진중공업에서 4명의 '열사'를 떠나보냈다. 그때부터 그는 겉보기와 달리 열악한 조선소의 노동 현실과 그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소금꽃' 노동자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오른 85호 크레인에선 무려 309일간 고공농성을 펼쳤다. 그의 농성은 SNS를 통해 실시간 전해졌고, 이를 본 누리꾼들의 연대로 이어졌다. 이어 수만 명의 시민이 희망버스를 타고 여러 차례 부산 영도조선소를 찾았다. 그렇게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는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았다.
 
 9일 오후 3시경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하다 건너편 인도에서 전화를 건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9일 오후 3시경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하다 건너편 인도에서 전화를 건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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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맺어진 노사합의로 그는 이후 크레인에서 내려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해고노동자였다. 한진중공업은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계속 거부했다. 그의 평생 직책은 민주노총 부산본부의 지도위원이었다.

그러다 최근 김 지도위원이 암 투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도 그는 지난해 12월 영남대의료원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180여 일이 넘게 농성 중이던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돕기 위한 도보행진을 펼쳤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박 지도위원은 227일 만에 땅으로 내려와 복직에 합의했다.

[관련기사 : 고공농성장까지 110km... 암 투병중에 걸어 간 김진숙]

김 지도위원의 복직투쟁 돌입은 본인의 요구는 물론 현재 영도조선소의 상황, 주변의 바람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심진호 한진중공업지회장은 1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한진중공업은 알다시피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데, 지난주부터 희망퇴직이 시작됐다. 경영실패는 경영진이 해놓고, 그 책임은 노동자가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공장 분위기를 전했다.

정혜금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사무국장은 "공장의 마지막 해고자로 올해 정년을 앞두고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시다"며 "주변도 김 지도위원의 복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암 투병 중인 몸이어서 앞으로 이를 고려해 복직투쟁이 진행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김 지도위원의 공개 편지도 공개했다. 그가 복직하려는 이유와 최근 회사 상황에 대한 입장이 담겼다. 다음은 김 지도위원의 편지 전문이다.

[편지 전문] 다시 돌아가지 못한 공장, 내 발로 걸어나오고 싶습니다

집채만 한 철판을 잘라 뚝딱뚝딱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던 아저씨들이 하늘처럼 보였던 스물한 살. "숙에이~" 부르시던 허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 선한데 어느덧 그 아저씨들의 나이를 훌쩍 넘어 6개월 후면 정년입니다.

철판에 다리가 깔려 입원했을 때 주전자에 죽을 끓여오셨던 아저씨들. '용두산 에레지'를 구성지게 부르시던 강씨 아저씨. 해고된 후 어용노조 간부들, 관리자들,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짓밟히는 나를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오지도 못하고 눈물이 가득 고였던 아저씨. 그 아저씨들과 쥐똥 섞인 쉰내 나는 도시락이 아닌 따뜻한 국이 있는 밥을 먹고 싶었고 다치면 치료받고 싶었고 감전사 압착사 추락사가 아니라 제명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 꿈이 불온하고 불순해서 유배된 35년. 내일이라도 부르면 달려와야 하니까 멀리 가지도 못하고 책임있는 자리도 애써 피해왔던 35년.

스물여섯 살. 검은 보자기에 덮어씌운 채 눈매가 무섭던 낯선 남자들에게 대공분실로 끌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공장을 내 발로 걸어 나오고 싶습니다.

감옥에 끌려간 채 시신으로 돌아온 박창수 위원장이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곳.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그토록 내려오고 싶었던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박창수 위원장도, 김주익 지회장도, 재규 형도, 강서도, 금식씨도, 상규 형도,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 죄 없이 또다시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조합원들 곁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게 돼서 다행입니다.

회사가 어려우면 경영진이 먼저 책임져야 합니다. 그 책임의 순서가 잘못돼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곳이 한진중공업입니다. 다시 또 그 어리석은 길로 들어서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2020년 6월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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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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