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상반기 드라마 최고 화제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SBS 금토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극본 김은숙, 연출 백상훈 정지현)이 아쉬운 평가 속에 조용한 종영을 맞이했다. 지난 12일 방송된 마지막회에서는 과거로 돌아간 이곤(이민호)이 악역 이림(이정진)을 처단하고, 정태을(김고은)과 재회하며 평행세계를 넘나드는 로맨스를 완성시킨 해피엔딩으로 마감했다.

<더 킹>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 평행세계로 공존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차원의 문을 넘나드는 대한제국 황제 이곤과 대한민국 형사 정태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로맨스' 장르를 표방했다. 국내 최고의 로맨스 드라마 전문가인 김은숙 작가와, 전작에서 '김은숙의 페르소나'로 활약했던 한류스타 이민호-김고은의 재결합으로 방영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더킹>은 대중성과 완성도 모두 기대를 벗어나 '괴작'에 더까웠다. 평행세계와 입헌군주제 등 판타지적 요소들이 가미된 설정이나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비주얼, 김은숙 작가 특유의 귀를 간지럽히는 달달한 대사들은 여전했고 기대대로 초반 시청률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과 2회를 넘어서며 드라마의 난해한 설정과 개연성에 대한 의문부호가 속출했다. 또 작품 내외적으로도 여러 가지 논란이 겹치며 분위기가 사그라들었다. 시청률은 한 자릿수로 급격히 떨어졌고 시청자들의 관심도 점점 멀어졌다.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관련 이미지.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관련 이미지. ⓒ SBS

 
근본적으로 <더 킹>의 실패는 '신선함'과 '익숙함'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시청자를 끌어들일 만한 확실한 매력포인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김은숙 작가의 장기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소재를 달달한 로맨스 판타지로 구현해내는 능력이다. 흔히 '김은숙 월드'라고 불리우는 세계관에서는 일에는 냉철하고 사랑에는 헌신적인 '완벽남', 그러한 남자의 순애보 속에서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외유내강의 '캔디'가 단골로 등장한다.

<태양의 후예> <파리의 연인> <상속자들> <도깨비> 등은 작품마다 각기 다른 캐릭터-배우가 등장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비슷한 스토리-세계관의 변주였다. 그리고 <더 킹>의 주연인 이민호 역시 전작들을 통하여 이러한 츤데레형 왕자님의 캐릭터에 최적화된 배우로 꼽힌다.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김 작가의 작품들과 그 주인공들이 사랑받을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판타지를 정확히 짚어서 충족시켜주는 대리만족의 효과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킹>에서 들고나온 '평행세계'라는 차별점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개념 자체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난해한 설정이었다. 김은숙 작가의 전작들도 만화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설정은 많았지만 재벌 2세나 군인-의사 등 어느 정도 최소한의 현실적인 공감대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것에 비하여, <더 킹>은 캐릭터부터 세계관까지 완전한 판타지에 더 근접한 이야기였고, 그 규모와 설정도 훨씬 크고 복잡해졌다.

김은숙 작가는 주로 인물들의 로맨스 감성을 묘사하는데는 탁월하지만, 역사나 스릴러같은 다양한 장르를 풀어내거나 치밀하고 촘촘한 내러티브 구축에는 그리 능하지 못했다. 결국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이 굳이 복잡한 평행세계를 넘나들며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에 공감하지 못했고, 이야기의 중심도 로맨스와 정치 암투극 사이에서 시종일관 균형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사실상 김은숙 월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도 기대에 못 미쳤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야 할 남주인공 이곤의 캐릭터가 초반부터 개연성을 갖지 못하고 흔들리다보니, 공연히 여기저기 들쑤시며 일만 만들고 다니는 민폐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덩달아 비정상적인 남주인공과 예정된 사랑에 빠져야 하는 정태을에 대한 공감대까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긴박한 상황이나 어울리지 않은 타이밍에도 뜬금없이 등장하는 사랑고백처럼 김은숙 작가 특유의 달달한 대사들은,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이야기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독이 됐다. 사실 <더 킹>은 평행세계라는 설정만 제외하면 주인공들의 캐릭터나 로맨스 전개 패턴 자체는 오히려 김은숙 월드 전작들의 '자기복제'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김은숙표 드라마의 대사와 설정에 충분히 익숙해졌고, 2-3년 사이에 대중들의 로맨스 감수성이나 트렌드가 많이 변화했음에도 전작의 흥행 공식에 안주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민호는 <더 킹>이 군 제대 이후 첫 복귀작이었다. 대중들이 이민호라는 배우에게 기대하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나, 공백기에 대한 본인의 부담감 등을 감안할 때 섣부른 변신보다는 안전하게 이미 검증된 캐릭터와 장르의 작품으로 위험부담을 줄이고자 한 선택은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이민호 역시 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실질적 '원톱 주연배우'로서 어느덧 30대의 나이와 경력에 걸맞는 성숙한 진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악역을 맡은 이정진이나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더 돋보였다는 사실도 이민호에게는 이래저래 아쉬운 숙제를 남긴 셈이었다.

이밖에도 <더 킹>은 스토리 외적으로도 왜색 논란, 과도한 PPL, 출연자의 과거 불륜설, 예고없는 긴급 결방에 이르기까지 방영 내내 시종일관 잡음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 자체의 인기나 완성도가 높았다면 이런 논란은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킹>의 궁극적인 교훈은, 대중의 눈높이는 창작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작가든 배우든 '과거의 성공'이 주는 안일함과 오만함은 언제든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더 킹>이 외면받은 진짜 이유다.
더킹 김은숙작가 이민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