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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박병석 국회의장.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박병석 국회의장.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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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을 하면서 아주 현명하지 못한 자세는, 결과가 뻔히 예측됨에도 고집을 피우는 거다."

11일 오전 국회의장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양보는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라는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말을 이렇게 받아쳤다.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는 절대 내어줄 수 없으니 어리석게 고집 부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주 원내대표가 다시 한 번 "어느 상임위원장을 맡는지 알아야 상임위원 배정표가 나온다"라고 받아쳤지만 김 원내대표는 꿈쩍하지 않았다(관련 기사 : 박병석 국회의장 "어떤 경우에도 12일 본회의 연다").

민주당은 지금 똘똘 뭉쳤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절대 법사위는 양보할 수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법사위원장은 야당몫'이란 통합당의 요구는 협치가 아닌 발목잡기라며 잘못된 관행에 따르지 않고, 원칙대로 하겠다고 말한다.

'전쟁터' 법사위, 이번엔 '일터'로...

가장 큰 명분은 '법사위 정상화'다. 법사위는 사법행정 관련 기관과 법안을 담당할 뿐 아니라 다른 상임위가 심사를 마친 법안이 법률 체계나 표현상 문제 없는지 살피는 '체계·자구 심사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법사위가 체계와 자구를 넘어서 법안의 내용까지 건드리는 등 '상원'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왔다. 여러 나라의 양원제 의회에서 상원은 하원이 의결한 법안을 거부할 수 있다. 

현재 '통합당 법사위원장'을 요구하는 주호영 원내대표조차 2006년 법사위를 법제위와 사법위로 분류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냈을 정도다. 그는 당시 제안이유에서도 "법사위가 모든 법률안을 심사함에 따라 사실상 다른 상임위 권한 위에 존재하는 '위원회 중의 위원회'라는 비판 등 법사위의 지위·권한에 대한 논란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당론 1호 법안, '일하는 국회법'이 첫 번째로 중점을 둔 부분 역시 법사위다. 11일 더불어민주당 일하는 국회 추진단과 국회입법조사처가 주최한 '일하는 국회를 위한 국회 개혁과제' 토론회 발제를 맡은 조응천 의원은 "(법사위에서) 정파적 이해관계에 붙잡혀 법이 사그라드는 게 반복되고 있다"라면서 체계·자구 심사권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온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도 이 문제의식에 적극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상임위 중심으로 국회가 운영돼야 한다는 게 (국회법의) 최종목표인데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권을 가지면서 상임위 중심이 빠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국회가 상임위 중심으로 가려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을 없앨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또 다른 토론자, 김선택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가 시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1951년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을 제안한 엄상섭 의원은 법률가였는데, 그가 보기엔 다른 의원들은 (애국)지사니까 법률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서 법사위를 한 번 거치자고 한 걸로 보인다"라며 "그때부터 70년이 지났다, 상임위에서 알아서 할 능력이 충분히 된다"라고 진단했다.

법사위는 또 쉽사리 전쟁터가 됐다. 체계·자구심사를 내세워 다른 상임위 소관 부처 장관들까지 불러놓고 현안을 묻기 일쑤였다. 조응천 의원은 2017년 12월 20일 법사위에서 법안심사를 위해 출석한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임종석 당시 대통령실장 UAE 특사 문제를 질의하는 야당 의원들 영상을 소개했다. 그는 "당시 외교부 법안은 딱 한 개였는데, 순식간에 해치우고선 1시간 10분 동안 장관을 붙잡아 놨다"라며 "저런 식으로 현안질의가 아주 악용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 '그때처럼은 안 한다'     
 
11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박 의장,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
 11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박 의장,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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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또 다른 속내는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을 계기로 17대 총선에서 과반(152석)을 확보했지만, 열린우리당은 별다른 성과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한 달 가까이 원구성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법사위원장은 원내 제1당 몫이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해 가장 큰 쟁점이었던 상임위원장 자리 중 법사위원장을 양보했다. '법사위원장 = 야당'이라는 관행의 시작이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입법에 실패했다.

지금 민주당 안에는 그 실패를 직접 겪은 의원들이 3·4선의 중진으로 있다. 초선 가운데 상당수도 국회 밖에서 열린우리당의 좌절을 목격했다. 이들은 '그때처럼은 안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임기가 절반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국회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지도 강하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번엔 하늘이 두 쪽 나도 법사위는 내줄 수 없다"라며 "단순히 위원장을 가져오고 안 가져오고의 문제가 아니라 법사위가 지금처럼 운영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론과 별개로 지난 5일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없애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2018년에도 발의했지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된 법안이다.

홍 의원은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를 넘어서 법안내용까지 다루고, 장관들 앉혀놓고 법안과 관련 없는 현안질의를 하고,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은 법사위원장을 가져가서 그 법안도 통과 안 시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번 총선 결과는 '정부 여당이 책임지고 해달라'는 국민 뜻"이라며 "아무것도 안 하기보다는 제1야당이 일정기간 불참하더라도 상임위를 가동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태그:#21대 국회 원 구성, #법사위,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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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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