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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문 옛 모습
 돈의문 옛 모습
ⓒ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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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위시하는 말로 자주 쓰이는 표현중 '사대문안'이란 말이 있다. 한양도성 안쪽을 일컫는 단어로 주로 종로 일대를 가리킨다.
 
서울의 사대문은 흥인지문(동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돈의문(서대문)이다. 그러나 현재 이 4개의 문중 서쪽의 돈의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대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돈의문은 이야기로만 전해질 뿐이다.
 
돈의문은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1396년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며 한양도성과 같이 지어졌다. 1413년(태종 13) 풍수지리상으로 자리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가 1422년(세종 4) 현재의 정동 사거리에 새로 조성되었다. 새로 세웠다는 뜻으로 '새문(新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돈의문은 조선에 온 중국 외교사절단이 중국의 사신들을 영접하던 장소인 모화관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했던 통로로 당시 조선과 중국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문이었다. 또한 한성에서 평안도 의주에 이르는 제1간선도로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그런 돈의문이 1915년 일제강점기에 들어 일제의 도로확장으로 철거되었으며, 결국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꿋꿋하게 한양의 서쪽을 지켜주던 서대문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철거된 돈의문의 목재와 기와는 총독부가 경매에 붙여 205원 50전(약 521만 원)이라는 가격에 팔아버렸다고 한다. 돈의문과 주변 성벽의 석재는 도로공사에 사용되었다고 하며, 사대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3개의 문만 남게 된 것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 거리
 돈의문박물관마을 거리
ⓒ CPN문화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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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의 복원은 왜 이룰 수 없었나
 
문화재적인 가치에 따라 돈의문의 복원 과제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므로 돈의문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돈의문 복원에 여러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교통, 예산, 토지 등 물질적인 문제 외에도 돈의문에 대한 자료가 전무했던 것이다. 그나마 남은 실물 자료는 국립 고궁 박물관에서 발견한 돈의문 현판이 전부인 탓에 돈의문 복원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박에스더의 집
 박에스더의 집
ⓒ CPN문화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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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 자리에 세워진 '돈의문박물관마을'
 
2017년 9월, 돈의문이 있던 자리에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세워졌다. 원래 돈의문 일대를 전면 철거한 후 공원이 조성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곳 일대가 한양도성 돈의문 안쪽의 첫 동네로 근현대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박물관마을 형태로 재탄생된 것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의 집, 극장, 갤러리, 전통문화 체험 등 다양한 볼거리와 행사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곳에 마련된 전시관과 역사관에서 돈의문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돈의문의 흔적에서 이어지는 근현대 서울 100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돈의문의 모습을 디지털 복원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기술로 복원된 돈의문의 모습을 국민 모두가 스마트폰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IT시대에 맞춰서 디지털로 문화재를 감상하는 것도 이채로운 경험이 되고 있다.
 
건축문화재라는 것은 원래의 위치에 건축물이 존재해야 진짜 그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머지 않은 시점에 돈의문이 복원되어 진정한 조선 한양의 사대문안을 걸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TV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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