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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의붓어머니가 3일 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의붓어머니가 3일 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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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44cm 세로 60cm', 

겨우 23kg에 불과한 9살 아이가 갇혀 있던 가방의 크기다. 의붓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한 아이는 가방 안에서 의식을 잃었고, 이틀 뒤 숨을 거뒀다.

지난 1일 천안에서 벌어진 9살 아동학대 사건은 코로나19 사태가 만든 사각지대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줬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A군은 코로나19로 인해 등교를 계속하지 못했고, 의붓어머니의 학대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외출을 하지 못하니 외부의 도움도 받기 어려웠음은 물론이다. 

이어 창녕에서도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 사실이 알려졌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피해 어린이인 B양은 지난달 29일 의붓아버지의 폭행을 피해 편의점으로 도망쳤고, 이를 시민이 구조했다. B양을 구조한 시민은 "양쪽 눈과 온몸이 멍투성이었고, 손에 심한 화상을 입어 지문이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손의 화상은 경찰 조사 결과 의붓아버지가 프라이팬을 대서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B양 또한 올해 초 거제에서 창녕으로 이사한 직후에는 코로나19로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눈에 띄게 학대의 흔적이 있음에도 외부에 노출될 일이 없었던 셈이다.

코로나19가 아동학대 '발견율' 낮춘다

아동권리보장원 조사에 따르면 1분기 아동학대 신고 접수는 6887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7336건에 비해 449건 줄어든 셈이다. 매년 증가 추세인 아동학대 증가율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오히려 역행을 한 것이다. 아동학대 해결을 위해서는 신고율·발견율이 높아야 하는데, 이와 같은 결과는 코로나19가 아동학대가 은폐되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코로나19 사태가 아동인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지난 4월 17일 유엔은 <코로나19가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코로나19가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인구기금(UNFPA) 라미지 알락바로프 사무차장 또한 지난 4월 28일 미국 CBS와 한 인터뷰에서 "엄격한 봉쇄 조치가 1년간 지속될 경우 전 세계적으로 6100만 건의 추가적인 가정폭력 사례가 나올 것"이라면서 코로나19가 아동을 포함한 가정폭력을 증가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정부도 천안 9살 아동학대 사망 사건 이후 코로나19 국면에서의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7일 정세균 총리가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 아동학대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8일 문재인 대통령도 "위기의 아동을 사전에 확인하는 제도가 잘 작동되는지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코로나19로 인해 아동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 아동학대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위기의 아동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지시"라고 밝혔다.

김희진 변호사 "모든 사람 민감해지고, 관계자는 전문성 갖춰야" 
 
코로나19 국면에서 아동학대는 은폐된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아동학대는 은폐된다.
ⓒ unsplash
최근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국제아동인권센터의 김희진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학교에 가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아동을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외부의 시선, 아이의 옷차림 등으로 학대를 추정하고 신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아동학대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묻는 질문에 김 변호사는 "지금은 모든 사람이 민감해져야 할 때다. 전 국민이 아이의 옷차림과 표정을 살펴야 한다"며 "10월부터는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조사를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아닌 공무원이 한다. 그들이 출동한 현장에서 아이와 부모를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역량과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장 분리가 필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결정했을 때는, 더 자주 모니터링하는 한편 부모의 변화를 이끌어낼 지원 방안이 행정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A군의 경우 지난 5월 초 들렀던 병원의 의료진이 '아동학대'를 의심하고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 이때 천안 서북경찰서가 충남아동보호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했는데, 아이의 말만 듣고 전문기관은 '분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경찰서에 보냈고, 결국 A군과 부모의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10개 천안시민사회단체들도 8일 성명을 내고 10월부터 아동학대 현장에 투입되는 공무원들의 전문성 확보를 강조했다. 이들은 "예산과 인력이라는 물적 인프라가 필요하다"며 "단지 사회복지공무원의 양적 확충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순환보직예외적용 방안이나 지속적인 훈련 등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 변호사는 "여전히 아동은 성인과 같은 권리 주체로 인식되지 않는다. '훈육'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체벌이 발생한다"며 "화가 나도 성인을 때리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가하는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인식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에 대하는 사회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태그:#코로나19, #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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