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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환란으로 그냥 집에서 삼시 세끼를 내리 챙겨 먹어보니, 집사람의 가사노동 실태가 훤히 눈에 들어온다. 평생 해온 일이려니 생각했는데, 이제 집사람 나이도 70대 초입이다.

어머니는 젊어서 농사(주로 밭)일과 가사노동을 함께 감당을 했지만, 40대 중반 이후부터 부엌일은 손을 놓으셨다. 며느리에게 부엌일을 넘겨주고 대신 손주들을 돌보면서 소일했다. 손주들이 자라고 회갑 무렵에는 집안에서 어른대접 받으면서 비교적 한가롭게 노년을 보내셨다.

집사람은 젊어서 농사일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 이후 부엌일은 물론 여타 가사노동을 전담해 왔다. 그리고 집사람에게 그 가사노동은 끝날 날을 기약하기 어렵다. 아마도 노령에 자기 손으로 하던 일을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은 두 가지 대안뿐이다.

하나는 실버타운이나 요양원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집에서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그 경우 상당 부분 내 몫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짙다. 그래도 전자보다는 후자의 경우가 훨씬 자연스럽고 다행스러울 게다.

해서 나이 들어가면서 스스로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몫을 챙기는 건 당연하다. 정년 후에 딸아이가 나더러 "아버지, 간 큰 남자로 살지 말아야죠"라면서 압력을 넣는다. 나는 원래 딸이 하는 말은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아버지여서 "그래, 알겠다"면서 어색한 웃음으로 넘겼다.

그로부터 집안 청소는 내 몫으로 굳어졌다. 쓰레기 버리는 일은 그 전부터 내가 해 오던 터여서 그냥 계속하면 되었다. 쓰레기 버리려고 내려간 김에 아파트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고 올라오는 게 내 일상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집안 청소는 그리 간단하질 않다. 우선 집사람이 보기에 내가 하는 집 청소는 거칠고 깔끔하지 못하다는 게다. 본래 경주 최씨는 좀 깐깐한 편인데, 집사람은 그 전형이다. 살아 있는 김가 셋이 죽은 최가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내 딴에는 맘먹고 하는 일인데도 칭찬은커녕 핀잔받기 일수다.

집안 청소라고 하지만 내가 다하는 게 아니라 안방 화장실, 베란다와 손녀 방은 집사람이 한다. 자기는 방 하나를 해도 걸레를 몇 개나 쓰는데 나는 큰방 겸 서재와 거실과 부엌 그리고 내가 잠자는 방까지 모두 합쳐 걸레 5~6개로 그냥 쓱 하고 끝내니 어이가 없다는 게다. 청결에 대한 기준 자체가 서로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근에 이미 40대 중반이 된 딸이 다녀갔다. 이번에 와서 딸이 제 어머니에게 요즘 집이 좀 깨끗해졌다고 하더란다. 그러면서 제 어머니에게는 이제 집안일을 좀 줄여야지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하더란다. 코로나 환란 중에 내가 집에서 빤히 지켜보고 나니 딸의 말에 수긍이 간다.

보기에 민망해 내가 집사람에게 넌지시 '설거지는 내가 좀 도와주겠노'라고 하니 그만 두란다. 집사람 입장에서 내가 청소하는 걸 보니 언감생심 설거지까지 도저히 맡길 생각이 내키지 않는가 보다. 어쩌다 집사람이 여행을 다녀오면 내가 해 놓은 설거지가 맘에 차지 않아 다시 퐁퐁 세제로 깨끗이 씻어 놓곤 한다. 세탁기 돌리는 것도 내게 기회를 주지 않으니 아예 세탁하는 일은 깜깜하다.

게다가 집안 경제 관리까지 모두 집사람이 평생 챙겨온 터라, 만약 집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장 내가 제일 난감하다.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누구나 나이 들수록 '자립자존'하는 게 긴요하다. 그런데 가사 일에 관한 한 내게는 그 한계가 뻔히 내다보인다. 해서 집사람이 입버릇처럼 내게 생활사에 좀 관심을 가지라고 나무란다. 
 
서재 벽면 뿐만 아니라 내가 잠자는 방의 벽면에도 이런 식으로 책들이
쌓여 있으니 집사람이 짜증을 내는 거다.
▲ 내 서재 벽면에 그냥 쌓아둔 책들(책장은 만원) 서재 벽면 뿐만 아니라 내가 잠자는 방의 벽면에도 이런 식으로 책들이 쌓여 있으니 집사람이 짜증을 내는 거다.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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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딸이 보기에 요즘 우리 집이 좀 깨끗해졌다고 느끼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어쩌다 <청소력>(마쓰다 마쓰히로, 2007)이라는 책(e-북)을 접하고 흥미 있게 읽었다.

저자는 "당신이 사는 방이 당신 자신"이라면서 "당신의 마음 상태, 그리고 인생까지도 당신의 방이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이 글을 접하고 자연히 내 서재와 내가 잠자는 방을 한 번 떠올려 보니 영 개운치 않았다. 주로 책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청소력>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방이 더러운 사람은 불행한 느낌이 강하고, 방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감이 강하다". 왜냐하면 "당신의 마음을 반영한 당신의 방에 일정한 자장(磁場)이 일어나, 당신이 발하고 있는 에너지와 동질의 것을 끌어들인다"는 게다.

저자의 이 말이 어찌 보면 너무 나갔다 싶기도 하지만, 딱히 부정하기도 어렵다. 이 책 마지막 장에는 '청소로 깨달음을 얻었던 주리반특(周梨槃特)' 이야기가 나온다. 요지는 이렇다.

'주리반특'은 지적장애인이어서 늘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가 호소를 했다.

"부처님, 저는 너무 바보여서 이곳에 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부처님은 그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자신을 어리석다고 아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다."

순간, 불제자를 그만두려고 굳게 마음먹었던 '반특'은 무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부처님은 그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너는 어려운 설법은 전혀 모르는 것 같으니, 내가 한 가지만 가르쳐 주마. 여기 빗자루가 있으니 이 빗자루를 가지고 매일 마당을 쓸어라. 그 때 '쓸고 닦아라!'고 반복해서 말하면서 쓸도록 하거라." 하지만 '반특'은 이 말을 외우지 못했다. 해서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에게 '반특'을 만날 때마다 인사 대신에 '쓸고 닦아라!'고 말해 주라고 했다.

그로부터 '반특'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쓸고 닦아라!'고 되뇌면서 매일 경내 청소를 열심히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 5년, 10년이 지나도록 한결같이… 모두가 바보라고 놀리던 다른 제자들도 매일 쓸고 닦는 일을 꾸준히 하는 '반특'을 보고 점차 맘속으로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저 지극정성으로 실천하는 그의 성실한 모습에 사람들은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게 되었다.

'반특' 스스로 부처님 말씀대로 하루도 쉬지 않고 쓸고 닦는 청소를 계속하는 중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아,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음 속에 있는 먼지나 때를 닦아내는 게 중요한 거야"라고 깨치게 된 게다. 마침내 '반특'은 불교에서 말하는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처럼 '주리반특'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일하게 받아들여 '심열성복'(心悅誠服)함으로써, 다른 우수한 제자들보다 확연한 깨침을 증득한 게다. 말하자면 청소하는 힘이 곧 깨침의 에너지가 된 게다. 나는 평생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특수교사를 양성하는 일로 교수 노릇을 해온 사람이다. 해서 '주리반특'의 깨침은 내게 각별한 함의를 지닌다.

이래저래 최근에 청소하는 힘이 내게 영향을 미친 결과, 딸이 보기에도 집이 조금은 더 깨끗해 졌다고 느껴지는가 보다. 다행이다. '주리반특'처럼 나도 청소하는 원력으로 내 마음의 때와 먼지를 부지런히 걷어내게 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코로나 환란이 나에게 가사노동의 가치를 뒤늦게 깨치게 해주었고, 게다가 내 마음의 때와 먼지를 걷어내는 데 연관된 청소의 힘까지 보태주었다. 해서 우리에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는가 보다.

태그:#가사노동, #청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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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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