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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에 빨대가 낀 바다거북.
 코에 빨대가 낀 바다거북.
ⓒ 유튜브 Sea Turtle Bi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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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캐나다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아이가 자꾸만 버려진 플라스틱병과 비닐봉투를 주워왔다. 흙이 잔뜩 묻은 플라스틱병 줍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물었다. "그거 왜 줍는 거야?" 그랬더니 반 친구들이랑 다 같이 줍기로 했다며 난데없이 바다거북 얘기를 꺼냈다.

"거북이 코에 빨대가 꼈는데... 피가 막 나고... 그래서..."

눈가가 빨개진 아이를 보며 '그 영상을 봤구나' 싶었다. 바다거북 코에 박힌 플라스틱 빨대를 빼내느라 연구진이 10분 가까이 애를 먹는 영상이었다. 거북은 한쪽 콧구멍 전체를 막고 있는 빨대 때문에 호흡 곤란까지 겪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사투 끝에 빠져나온 빨대의 길이는 무려 10cm였다.

선생님이 그 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질문을 쏟아냈고, 플라스틱이 환경과 동물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는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기로(선생님은 아이들 모두에게 스테인리스 빨대를 선물했다), 재활용될 수 있도록 비닐봉투(영미권에서는 '플라스틱백'이라 부른다)를 모으기로 했다.

'비닐봉투 해파리'가 전한 메시지

막내 반 아이들은 비뚤배뚤 글씨로 '비닐봉투 모으기'에 학교(이곳에서는 유치원도 초등학교에 속해 있다) 전체가 동참하면 좋겠다는 편지를 써 교장선생님께 전달했다. 그렇게 2주간 모아진 1324개의 비닐봉투로 거대한 해파리를 만들었다. 해파리를 택한 것은, 바다거북들이 종종 비닐봉투를 해파리로 오인해 삼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주위에 빙 둘러앉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해파리는 그 자체로 훌륭한 '메신저'였고 예술작품이었다.

이후 선생님이 SNS에 올린 해파리 사진과 메시지를 부모들이 열심히 퍼 날랐다. 그 결과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인식 고취의 공로를 인정받아 아이들 학교가 '2019 The Plastic Bag Grab Challenge'(플라스틱 백 모으기 챌린지, 2016년부터 캐나다 전역의 학교들에서 행해지고 있다)의 수상학교로 선정됐다. 소식을 전하는 선생님은 한껏 들떠 있었고, 아이들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막내 학교 학생들이 모은 1324개의 비닐봉투로 만든 해파리.
 막내 학교 학생들이 모은 1324개의 비닐봉투로 만든 해파리.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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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를 빼내는 내내 피 흘리며 신음하는 바다거북의 모습은 나도 끝까지 보기 힘들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끔찍한 모습을 보여준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고작 예닐곱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의 반응은 '불쌍하다'에 그치지 않았다.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 뒤에는 멋진 선생님이 있었다. 세상의 불행을 사실대로 전했고, 아이들이 쏟아내는 궁금증과 염려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비닐봉투 모으기를 독려하고, 전교 차원의 운동이 될 수 있도록 교장선생님께 편지 쓰는 일을 도왔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게 아이들을 지지했다. '끔찍하니까' 아이들에게 알리지 않고 넘어갔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변화였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법

이처럼 '세상의 불행'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캐나다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학교가 처음 문을 닫았을 때도 그랬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다. 공원도 놀이터도 수영장도 태권도장도 모두 폐쇄됐다.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금지'로 가득한 세상을 맞았고 집 안에 갇혀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뭔지 말해줘야 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법'에 관한 글이 여러 차례 매체에 소개됐다. 공통적인 조언은 첫째, 아이의 나이에 맞춰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할 것. 둘째,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당연한 것임을 일깨우고 위로할 것. 셋째, 국가와 가정의 대처상황과 예방수칙을 알려줌으로써 두려움을 줄일 것. 넷째, 가능한 한 일상적인 스케줄을 유지할 것. 이 네 가지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코로나바이러스란 어떤 것인지, 어째서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안되는지, 거리두기와 손씻기가 왜 중요한지, 최대한 겁먹지 않도록 애쓰며 설명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크게 불안해하는 기색없이 원래 일어나고 자고 먹던 시간을 유지하면서 셋이 알콩달콩 투닥투닥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골목으로 향한 창문에는 다 함께 이겨내자는 메시지와 함께 희망의 상징인 무지개 그림도 붙였다.

행복이 어디에나 있듯 불행 또한 그러하다. 때론 아주 가까이서, 때론 조금 멀리서 세상의 불행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지난 5월 25일에도 그랬다. 미국 백인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사망했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미국의 고질적인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을 들썩이고 있다. 그 시위에 연대하고자, 자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을 규탄하고자, 시위는 세계 곳곳으로 번져갔다. 이곳 캐나다도 예외가 아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 지난 어느 저녁, 산책 중 이웃집에 걸린 깃발을 보게 됐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글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 저거 미국에서 흑인이 죽은 사건 말하는 거야". 중학교 1학년인 큰딸은 이미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 시위대를 '폭도'라 칭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도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둘째와 막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스쿠터 타기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이번 주 초, 막내딸의 선생님은 온라인 플랫폼인 '구글 클래스룸'을 통해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 미국과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아이들과 직접 이야기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중요한 문제를 모른 체 넘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어른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친절한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종차별 반대라는 주제에 대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성장을 도울 방법을 찾고 계신 부모님들을 위해, 아이들과 토론할 수 있는 책 리스트를 첨부합니다. 또 책 < Red >의 영상도 함께 링크합니다. 아이들과 같이 보신 후, 겉모습만으로 갖는 편견에 대해 토론하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주 화상수업 시간에 또 다른 책 한 권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인종차별이라는 말 들어봤니?"

사실 아직 어린 둘째, 막내와 인종차별 반대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선생님의 메시지를 읽은 뒤, 아직 모르고 있는 세상의 너무 어두운 면을 굳이 미리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한편에 들었다. 북미에 살고 있는 유색인종으로서 내 아이들도 겪을지 모르는 일이란 생각에 더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니 더더욱 나누어야 할 이야기였다. 선생님 말이 맞았다. 모른 체 넘어가서는 안 될 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함께 이야기해야 할 일, 아이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일이었다. 저 멀리 안드로메다가 아닌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레이시즘(racism, 인종차별)'이란 말 들어봤냐고 물었다. 초등 1학년인 막내는 못 들어봤다 하고 3학년인 둘째는 들어보긴 했는데 잘 모른다고 했다. 

"학교에 가면 검은 아이, 하얀 아이, 갈색 아이, 우리처럼 노란 아이 다 있지? 다 같이 친구잖아.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달라. 그래서 모두가 특별한 거고. 그런데 얼굴색이 다르다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어."

여기까지 말한 뒤 큰 숨을 한번 쉬었다. 더 힘든 이야기를 해야 했다. 아이들의 눈은 조금 커져 있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어. 백인 경찰이 흑인 아저씨 목을 눌러서 아저씨가 죽었어." 예상하는 바와 같이 "왜?" "그래서?"와 같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체포당하는 자세로 '흑인 사망' 항의하는 미국 시위대 3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의 코먼 공원에서 시위대 수백명이 '흑인 사망' 당사자인 조지 플로이드의 경찰 체포 당시 자세를 취하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체포당하는 자세로 "흑인 사망" 항의하는 미국 시위대 3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의 코먼 공원에서 시위대 수백명이 "흑인 사망" 당사자인 조지 플로이드의 경찰 체포 당시 자세를 취하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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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법'은 이번에도 적용됐다.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달하되 최대한 겁먹지 않도록. 선생님이 올려주신 이야기를 함께 보고서 '본래의 모습 그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캐릭터가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도 이번 사건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을 썼다고도 얘기해줬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언제부턴가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덕담이 흔해졌다. 그러나 모두가 안다. 덕담은 덕담일 뿐 진실이 될 순 없음을. 꽃길인가 싶으면 느닷없이 자갈밭이 펼쳐지고, 끝없던 자갈밭이 어느 순간 꽃길로 바뀌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그러니 세상의 불행과 어두움 앞에 아이들을 뒤로 숨기지 말 일이다. 살다가 자갈밭을 만났을 때 어찌할 건지, 지금 내 길이 꽃길일망정 이웃이 자갈밭에 있다면 그땐 또 어찌할 건지,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생각해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현명한 시민이 되어 성숙한 공동체를 이룰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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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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