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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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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은 '현충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과 전몰한 장병들의 충렬을 기리고 위로하는 날이다.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치열하고, 처절하게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서울 시내에는 근대시기에 있었던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개화기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까지 독립운동의 역사적인 사건 현장을 둘러보면 서울이 얼마나 치열했던 독립운동의 격전지였는지를 알 수 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정동제일교회'도 치열했던 독립운동의 현장 중 한 곳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볼 수 있는 정동제일교회는 1885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다.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에 설치된 한국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에 설치된 한국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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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중심에 서다

담임목사인 최병헌은 <독립신문>·<조선그리스도인회보>·<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 등의 문필가로서 활동 했었다.

독립협회와도 연관이 많은 곳으로, 서재필, 이필주, 박동완, 유관순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 교회에 있었다.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복귀한 서재필은 정동교회청년부를 중심으로 토론과 타협을 가르치는 협성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협성회는 토론과 출판활동을 중심으로 국내 민족의식 계몽에 영향을 주었고, 이후 협성회를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정동제일교회는 국내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파이프오르간 속 송풍구에는 어른 몇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신문>을 집필하거나 3·1운동에서 쓰인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비좁은 공간에서도 그들의 독립에 대한 꿈과 노력이 이어진 것이다.
 
 이필주 목사 사택 터
 이필주 목사 사택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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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과 현대가 함께 공존하는 문화재로서의 정동교회

고종 광무 2년(1898)에 준공된 정동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건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원래의 모습이 손상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1977년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곳곳에 아치형의 창문을 내어 고딕양식의 단순화된 교회당 모습을 이루고 있으며, 돌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은 기단에서 조선시대 목조 건축의 솜씨가 그대로 보여진다.

정동교회는 현재까지 계속 교회로 운영·사용 중이며, 문화재로서, 교회로서 항상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교회 마당에는 창립자인 아펜젤러와 한국인 최초의 담임목사인 최병헌의 흉상이 세워져 있으며, 옆으로 독립운동가였던 이필주 목사의 사택 터가 자리 하고 있다.

마당 중앙에서 교회를 바라보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건물에서 독립운동의 열의가 느껴진다. 일제시대 수많은 청년들이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했던 곳이라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숙연해진다.

서울 중심에 위치한 정동제일교회는 항상 누구에게나 관람의 기회가 열려 있으나,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상태이다. 교회의 예배 또한 영상예배로 대체 진행되고 있다,

독립운동의 중심에 선 풋풋한 6월. 코로나19가 잦아들어 한국의 젊은 세대가 독립운동의 현장을 자유롭게 거닐며, 나라와 후세를 위해 한 목숨 아끼지 않았던 순국선열들을 마음 깊이 기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TV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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