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 한화 이글스 경기에서 키움에게 15-3으로 패한 한화 선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고 있다.

2일 오후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 한화 이글스 경기에서 키움에게 15-3으로 패한 한화 선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고 있다. ⓒ 연합뉴스

 
독수리 군단의 수난사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화 이글스가 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팀 간 4차전 경기에서 3-15로 대패하며 9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이틀 전 최하위로 내려앉은 한화는 이번에도 연패를 끊지 못하면서 9위 SK 와이번스와의 승차가 1.5게임으로 더 벌어졌다.

9연패는 2018년 한용덕 현 감독 부임 이후 최다 연패다. 한화의 종전 최다 연패 기록은 2012년 10월 3일 리그 최종전 패배부터 이듬해 4월 14일 개막 13연패까지 두 시즌에 걸쳐 기록한 14연패였다. 한화는 2009년에도 12연패, 2010년에는 11연패를 각각 기록한 바 있다. 이제 1패만 더 추가하면 5월 SK에 이어 20020년대 두 번째로 두 자릿수 연패를 기록한 팀이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물려받게 된다.

SK의 초반 연패와 하위권 추락이 '이변'에 가까운 결과였다면 한화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현실'이었다. SK는 지난 주말 한화와의 3연전 맞대결을 스윕하며 꼴찌를 탈출한데 이어 지난 2일에는 1위 NC 다이노스마저 물리치며 시즌 첫 5연승으로 급격하게 살아나는 모습이다. 애초부터 꼴찌를 할 정도의 전력이 아니었던 데다, 초반 부진하던 최정-로맥 등 중심타자들의 타격감이 점점 살아나며 늦게나마 정상궤도로 돌아오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한화는 이미 개막전부터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들로부터 하위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뚜껑을 열자 실제 경기력도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즌 초반부터 중심타자 김태균과 제라드 호잉의 부진, 하주석과 오선진의 부상 등 몇몇 악재까지 겹치면서 허약하고 노쇠한 타선과 얇은 선수층이라는 고질적인 약점이 더 도드라졌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것같지 않다는 점이다. 올시즌 한화의 팀타율(.245)과 출루율(.305), 평균 득점(3.56점), 홈런(16개) 등은 모두 리그 꼴찌다. 병살(26개)은 리그 최다 2위다. 도루(18위)는 1위지만 실질적인 영양가는 없었다. 팀득점(89점)이 아직까지 100점대를 넘기지 못한 팀은 한화가 유일하다. 특히 9연패 기간만 놓고보면 총 25점만을 뽑아내며 평균 득점이 2.7점에 그쳤다. 9경기중 6경기에서 3득점 이하에 그쳤고 그중 3번은 영봉패였다.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지만, 밥상을 차려도 해결사가 없다.

시즌 초반 선전하는 듯하던 선발야구도 최근에는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한화는 개막 이후 첫 12경기(5승7패) 구간까지만 해도 선발 평균자책점은 2.23으로 리그 전체 1위였다. 그런데 이후 13경기(2승11패)에서는 선발 평균자책점도 8.94, 9연패기간만 놓고봐도 8.05로 급등한다. 시즌 전체로 보면 5.10(팀 평균자책 5.22)이다. 어느 기준으로 해도 10개구단 선발진 최악의 기록이 된다. 외국인 투수 서폴드만 꾸준히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분전하고 있을뿐, 장민재, 장시환, 김이환, 김민우 등 국내 선발 투수들이 초반 반짝 호투 이후 줄줄이 무너졌다. 또다른 외국인투수 채드벨은 부상으로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한화는 9연패를 당할 동안 5회까지 리드를 잡은 경기가 전무하다. 그만큼 선발이 제몫을 해주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리그 정상급 마무리 정우람은 최근 10경기에서 단 1차례 등판에 그쳤다. 그나마 지고있는 경기에서 투구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등판이었다. 최근의 한화가 한번 리드를 빼앗긴 경기에서 승부를 뒤집을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더 아쉬운 부분은 기록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근성과 집중력에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 연패나 슬럼프는 어느 팀이나 겪을수 있는 일이고, 질 때 지더라도 그런 과정을 통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교훈을 얻어야한다. 팬들은 약자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보여줄 때 더 큰 감동을 느낀다.

하지만 한화의 야구에서는 이러한 악착같은 독기나 근성조차 느낄 수 없다. 휴식일 이후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화요일 경기, 가뜩이나 연패에 허덕이는 팀이라면 억지로라도 파이팅을 불어넣고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줘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런데 한화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초반부터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일찍 백기를 들었다.

한화 투수진은 키움 타선에게 초반부터 난타를 당하며 이태양을 제외하고 모든 투수가 실점을 기록했다. 17안타를 내준 것보다 볼넷 10개를 허용한 것이 더 뼈아팠다. 수비 역시 공식적으로 기록된 실책은 3개였지만 기록되지 않은 실책성 플레이가 더 많았다. 평범한 땅볼이나 파울플라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타자를 살려 보낼 때마다 곧바로 추가 실점이 이어졌다. 한화 타선은 이날도 산발적인 8안타 3득점의 빈공에 허덕였다.

한화는 본격적인 암흑기가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이후로 2018년에만 3위로 한 시즌 반짝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하위권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종종 비교되는 롯데나 LG도 장기간의 암흑기는 있었지만 적어도 한화만큼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한화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은 1999년으로 20세기의 추억이다. 

전통적으로 한화 야구에는 집념과 독기가 부족해 보인다는 이미지가 있다. 한화는 전성기로 꼽히던 전신 빙그레 시절에도 정규시즌 성적은 좋았지만 포스트시즌같은 단기전에서는 해태같은 강팀들을 상대로 업셋(정규시즌 성적이 더 좋은 팀이 하위팀에게 발목을 잡히는 것)의 제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대교체와 리빌딩에 실패하고 약체팀으로 전락한 2010년대 이후로는 이런 이미지가 더 두드러진다. 레전드급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던 한화지만, 어려울 때 팀을 하나로 뭉치게할 수 있는 리더나, 악바리같은 파이터 이미지의 선수들은 드물었다. 코칭스태프나 프런트가 선수 육성 및 팀의 방향성 제시에서 특별한 수완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한화가 올해도 무기력한 행보를 이어가면서 일각에서는 '차라리 김성근 시대가 나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성근 전 감독이 이끌던 시절의 한화는 매경기 한국시리즈처럼 전력을 쏟아붓는 야구로 명승부를 연출하며 한때 강한 중독성을 의미하는 '마리한화'라는 애칭을 얻을만큼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도 끝내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혹사와 독선적인 팀운영, 프런트와의 불화 등으로 숱한 구설수를 일으킨 끝에 결국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사임한 바 있다.

야구 팬들사이에서는 아직도 팀성적이 좋지 않거나 선수단 기강이 느슨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김성근 감독을 데려오라'는 말이 일종의 인터넷 밈처럼 유행한다. 물론 진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농담에 가깝다. '김성근식 야구'란 마치 80년대 이현세 작가의 열혈 스포츠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강도 높은 훈련과 정신무장, 주입식 교육에 대한 환상 등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복고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패배주의에 찌든 약팀에서는 어느 정도 통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다. 과거 미화를 감안해도 2020년까지도 아직 김성근 야구를 운운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한화 팬들로서는 희극이자 비극이다. 그만큼 여전히 발전하지 못한 한화의 초라한 현실을 의미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지더라도 상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승부욕', 최소한 오늘보다 내일 더 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비전'만 있었더라도, 한화 팬들이 굳이 흑역사에 가까운 과거를 소환해야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한화가 하위권을 전전하기 시작한 것이 짧게 잡아도 약 12년이다. 그동안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도 교훈을 얻지못하는 구단,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코칭스태프와 프런트, 그리고 최소한의 의지와 근성조차 실종된 무기력한 선수단에 이르기까지,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독수리군단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지 못하는 '보살 팬'들의 응원 뿐이다. 한화 구단이 진정한 프로라면 승패를 떠나 더 이상 팬들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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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한용덕감독 9연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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