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방송된 JTBC 예능 <가장 보통의 가족>의 한 장면

지난 30일 방송된 JTBC 예능 <가장 보통의 가족>의 한 장면 ⓒ JTBC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진 건 기정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해 새롭게 생겨난 용어 중 하나가 바로 '트로피 남편(trophy husband)'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내를 대신해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남편을 일컫는 말이다. '트로피를 받을 만한 남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2000년을 전후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는데, 실제로 주변에서 전업주부 남편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지난 30일 방영된 JTBC <가장 보통의 가족>(이하 <가보가>) 6회는 '트로피 남편'인 코미디언 안소미의 남편 김우혁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말 그대로 '주부 9단', '육아 만렙'이었다. 최근 방송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안소미를 대신해서 집안일은 물론이고, 딸 로아까지 완벽하게 케어하고 있었다. 그는 로아의 주양육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게다가 꼼꼼하고 자상한 성격이라 VCR을 지켜보던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를 미소짓게 만들 정도였다. 이처럼 든든한 남편이 있었기에 안소미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김우혁씨는 분명 '트로피 남편'이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남모를 고충이 있었다.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과 육아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실은 조금씩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 아닌가.

또, 아내가 바깥에 나가서 돈을 벌고 경제권을 쥐고 있는 기간이 길어지자 왠지 모를 자괴감이 몰려왔다고 털어놓았다. 자꾸만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뭘하고 있나?'라는 의문도 들었으리라. 전업주부 우울증, 육아 우울증이 복합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우울증이 그를 잠식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급기야 탈모 증상까지 생겼다. 뭔가 해결책이 필요했다. 

죄책감...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갖는 감정
 
 지난 30일 방송된 JTBC 예능 <가장 보통의 가족>의 한 장면

지난 30일 방송된 JTBC 예능 <가장 보통의 가족>의 한 장면 ⓒ JTBC

 
그런가 하면 안소미는 안소미대로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남편의 희생이 있었기에 집안일과 육아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생하고 애쓰는 남편의 처지가 안타까웠던 것이리라. 또 아이에게는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갖는 감정이었다. 

한편, 안소미의 남편에게는 명실공히 육아 만렙임에도 컨트롤할 수 없는 한 가지 난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로아가 엄마를 만나지 않고는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참동안 어르고 달래봤지만, 로아는 계속 울어대면서 엄마를 찾았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는 로아를 데리고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 안소미를 찾아 집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로아가 너무 울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안소미에게 한없이 미안해 하는 남편의 모습은 정말 안쓰럽기만 했다. 또, 굉장히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굉장히 무능력하고 못났다고 느꼈다고 자책했다. 안소미도 괴롭긴 마찬가지였다. 일과 아이 사이에서 미안한 마음만 계속 쌓여갔다. 이처럼 난감한 문제에 대해 오은영 박사는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렸다. 

"두 분이 생각해 보셔야 하는 게 이런 상황에서 지나친 미안함이나 죄책감은 조금 내려놓아도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이가 이때 엄마를 보고 싶어하고 찾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니까 그게 아빠의 육아의 무능함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거. 엄마를 찾고, 보고 싶어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 내가 일 하느라고 애를 떼어 놓아서 이렇구나, 이런 지나친 미안함을 내려놓을 필요는 있죠."

오은영 박사는 아빠가 아이의 1차 애착 대상자이고, 그 관계가 굉장히 안정되어 있다면서 아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건 그 시기(19개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엄마를 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엄마가 그리운 것이므로 안소미에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조금 늘려서 만족감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게 하라고 조언했다. 

오은영 박사는 육아를 힘들어한다고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라며 이 땅의 모든 아빠와 엄마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육아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고 덧붙였다. <가보가>는 '만약,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해달라고 부탁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MC 장성규와 하하는 육아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살림은요, 끝이 없어요... 다람쥐 챗바퀴처럼 돌아요"
 
 지난 30일 방송된 JTBC 예능 <가장 보통의 가족>의 한 장면

지난 30일 방송된 JTBC 예능 <가장 보통의 가족>의 한 장면 ⓒ JTBC

 
집안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장성규와 하하가 대표로 대답을 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출근을 택할 것이다. 그쪽이 훨씬 더 편하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힘든 일을 여성들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해왔다. 

이제 와서 '트로피 남편'이라는 말이 생겨나서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하는 남편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물론 그들은 정말 대단하고 가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여성들의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게 현실이다. 여성들을 위한 찬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여성들에게 '슈퍼 맘'이 되길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코미디언 정종철은 지난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주부의 일상에 대해, 그 어려움에 대해 썼다. 그 글의 일부를 인용한다. (김우혁씨를 포함해) 이 땅의 주부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이 땅의 주부를 대하는 반려자들이 부디 각성하길 바란다. 결국 이 문제는 부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야 할 부분이며,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살림은요. 끝이 없어요. 매일매일 다람쥐 챗바퀴처럼 돌아요. 직장은 점심시간, 쉬는 시간이라도 딱 정해져 있잖아요. 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잖아요. 주부는요. 그런 게 없어요. 내가 하면 사랑하는 내 사람이 쉴 수 있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가장 보통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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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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