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비헤이비어> 포스터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포스터 ⓒ 판씨네마(주)


 
영화를 통해 어릴 적 TV로 보던 미스코리아 대회가 생각났다. 똑같은 사자머리와 메이크업, 수영복 심사와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미소 띤 얼굴이 기억났다. 예전에는 공중파에서 가족들과 같이 볼 수 있는 가족오락 프로그램이었다. "어이구!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네"라는 동네 아줌마들의 말이 은근한 외모 칭찬임을 아이라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여성은 외적으로 예뻐야 하고, 몸매도 좋아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자라난다. 누구나 갖고 싶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는 허수값 혹은 꿈의 숫자 36-24-36. 여성은 자고로 사회가 정한 가슴 허리 엉덩이 사이즈에 내 몸을 맞춰야 된다고 믿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소름 끼쳤다. 미인대회를 가족이 함께 시청한다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왜곡된 성관념을 심어주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일방적인 아름다움이 세상의 표준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다. 신체 사이즈를 공표하고, 다리는 곧은지, 피부는 좋은지 만인에게 전시하는 미인대회는 흡사 가축시장을 연상케 했다. 치수 재고 등급을 매겨 가장 뛰어난 상품을 뽑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성의 성상품화는 왜곡된 미의 기준을 세울 뿐이다. 

그렇게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낙오자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정상 체중인데도 다이어트가 필요하고, 브이 라인이 아니고 각진 얼굴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내 생각은 만들어진 것에 불과했다고 자각하기 시작했다.

영화 <미스비헤이비어>는 전지적 여성 시점으로 미인대회를 살펴본다. 직접적인 행동 없이는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 여성들이 미스월드를 계기로 궐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흑인으로서 백인 중심의 대회에 참가한 여성의 시선도 교차된다. 1970년 개최된 월드미스가 품은 속뜻은 생각보다 여러가지였다.

1970년 미스월드 생방송 중 벌어진 여성해방 시위는 여성의 자유와 불평등, 선택을 위해 전진한 역사다. 성상품화 반대를 외치던 '샐리 알렉산더(키이라 나이틀리)'와 '조 로빈슨(제시 버클리)'의 시위와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역사상 최초 '미스 그레나다'이자 흑인 최초 미스월드 '제니퍼 호스텐(구구 바샤-로)', 이 두 진영이 한 사건으로 달려간다.

세 여성의 다른지만 같은 이야기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 판씨네마(주)


여성 운동가 샐리는 홀로 딸을 키우고 있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지만 남성 기득권 사이에서 늘 배제되는 여성 인권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한다. 샐리는 행동하는 페미니스트 예술가인 조를 만나며 여성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기로 다짐한다. 그렇게 평생 서로를 모르고 살았을 둘은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엮이게 된다. 조는 가부장제 시대를 허물 수 있는 방법은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라며 미스월드를 망칠 퍼포먼스를 계획한다.

한편 미스월드에 참가한 미스 그레나다 제니퍼는 부품 꿈을 안고 미스월드 대회에 참가한다. 우승과는 먼 차별로 언론과 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흑인 아이들에게 멋진 본보기가 될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미스월드라는 동상이몽을 꿈꾸며 대회를 기대하게 된다.

영화는 미인대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넣어 유쾌하게 풀어내려 했다. 막상 영화를 보니, 참가자들의 속사정도 다양했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이라도 대회를 통해 자신의 꿈에 한 단계 다가가기 위한 노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가부장제의 틀에 박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인 여성들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창구였다. 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지만 근현대에 들어서 정치나 자본의 논리로 고착화되기도 했다. 그 정점이 바로 미인대회다.

따라서 영화를 본 후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세상의 자격은 인종과 성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가치는 배제하고 오직 외모를 기준으로 경쟁할 경우 모든 문제의 방향성을 잃게 된다. 때문에 미스월드 반대자와 미스월드 수상자가 만나는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둘은 대척점에 있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함께 의지하며 돕는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이제 나, 너 우리가 모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자유는 나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 판씨네마(주)


 
마지막으로 배우들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시선이 좋았다. 그 시선은 관객을 바라본 후 실존 인물들로 옮겨지는데 '여기 나 있다'라는 고무적인 의식인 것 같아 뭉클했다. 여성의 성공과 행복을 응원하는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페미니즘 관점에서만 다루지 않는다. 당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 공동체 문화인 코민도 들여다본다.

제목 '미스비헤이비어(Misbehaviour)'는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행동 혹은 미스-월드를 반대하는 미스비헤이비어(MIS-가 미스월드의 MISS와 발음이 같아 생기는 언어유희)의 이중적인 뜻이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여성 연출, 각본, 주연, 제작까지 무려 쿼터 F 등급을 받은 여성 참여가 돋보이는 영화다.  
미스비헤이비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