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정규리그에서 사실상 공동1위를 차지했던 SK 와이번스의 초반부진이 심각하기 그지 없다. SK는 시즌 개막 후 17경기를 치른 현재 3승14패로 .176의 승률에 머물러 있다. 간판타자 최정이 타율 .125 1홈런4타점의 믿기 힘든 빈타에 허덕이고 있고 1선발 닉 킹엄과 작년 11승을 따냈던 문승원,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선발로 변신한 김태훈은 아직 시즌 마수걸이 승리도 따내지 못했다.

SK의 '대추락'에 가려 있긴 하지만 18경기에서 6승12패(승률 .333)로 9위에 머물러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부진도 만만치 않다. 삼성은 3년 차 좌완 최채흥이 3승, 외국인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이 심한 기복 속에 2승을 따내고 있을 뿐, 선발 투수 대부분이 제 몫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1선발로 기대했던 벤 라이블리는 4경기에서 3패를 기록한 후 옆구리 통증으로 앞으로 약 8주 간 결장이 예상된다.

팀 타율 9위(.247), 팀 득점 6위(89점)에 머물러 있는 타선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삼성은 박해민(.182)과 강민호(.179), 외국인 선수 타일러 살라디노(.163)까지 무려 3명의 주전선수가 1할대 타율에 허덕이고 있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유난히 큰 삼성 타선에서도 이 선수 만큼은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우울한 삼성팬들을 위로하고 있다. 시즌 초반 .389의 고타율로 리그 타율 4위에 올라 있는 김상수가 그 주인공이다.

'국민 유격수' 제친 통합 4연패의 주역, FA 앞두고 부진
 
 지난 14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키움 히어로즈 경기에서 1회 초 무사 김동엽의 안타때 2루주자 김상수가 홈을 밟고 팀동료와 환호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키움 히어로즈 경기에서 1회 초 무사 김동엽의 안타때 2루주자 김상수가 홈을 밟고 팀동료와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삼성은 지난 2010년 46경기에 출전해 타율 .237 1홈런14타점으로 부진했던 '국민 유격수' 박진만(삼성 작전코치)을 전격 방출했다. 아무리 선수 측에서 먼저 방출을 요청했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공수에서 전성기와 같은 기량을 기대할 수 없다지만 2005, 2006년 삼성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주역 중 한 명인 박진만을 내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에게는 박진만 없는 미래에 대비한 계획이 다 있었다.

삼성의 '믿는 구석'은 류중일 감독(LG트윈스 감독)의 경북고 직속후배이자 고교시절부터 천재유격수로 불리던 김상수였다. 루키 시즌부터 타율 .244 18도루를 기록하며 신인으로는 준수한 활약을 펼친 김상수는 박진만이 고향팀 SK로 떠난 2011년부터 삼성의 '대체불가 유격수'로 자리 잡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상수가 확실한 삼성의 주전 유격수로 자리를 잡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삼성의 '왕조시대'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2013년 11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8 111안타 7홈런 44타점 57득점으로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낸 김상수는 53번이나 루를 훔치며 도루왕을 차지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생애 첫 개인타이틀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인한 병역 혜택, 그리고 한국시리즈 4연속 통합 우승까지 차지한 김상수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FA 대박과 해외 진출을 제외한 야구선수가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김상수는 삼성의 통합 5연패가 좌절된 2015년을 기점으로 너무 이른 나이에 하락세를 경험했다. 특히 105경기에서 타율 .271 3홈런38타점을 기록했던 2016 시즌에는 도루 숫자가 6개로 뚝 떨어졌다. 불과 2년 전 53도루를 기록했던 리그 최고의 준족이 한 시즌 내내 도루시도가 10번에 불과한 평범한 주자로 전락한 것이다.

2017년 발목과 허벅지 통증에 시달리며 42경기 출전(타율 .264 3홈런13타점)에 그쳤던 김상수는 FA를 앞둔 2018년 122경기에 출전해 타율 .263 10홈런 50타점 63득점 12도루를 기록했다. 생애 첫 두 자리 수 홈런을 쳤지만 공수를 겸비한 준족의 유격수라는 이미지를 많이 잃은 김상수는 씀씀이가 작아진 구단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결국 김상수는 작년 1월 삼성과 3년 최대 18억 원(옵션총액 4억5000만 원 포함)에 FA계약을 체결했다.

이학주 입단 후 2루 전향, 변신 2년 차 시즌 무섭게 질주

FA계약보다 김상수의 신변에 닥친 더 큰 변화는 2019년 신인 드래프트였다. 2차 1라운드 전체 2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삼성에서 시카고 컵스와 템파베이 레이스의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던 해외파 유격수 이학주를 지명한 것이다. 그리고 삼성을 이끌었던 김한수 감독은 키스톤 콤비의 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김상수의 2루 전향을 권유했다. 데뷔 후 10년 동안 유격수만 맡아오던 김상수에겐 자존심이 상할 법한 요구였다.

하지만 김상수는 팀을 위해 2루수 전향 요구를 받아 들였고 2루수 변신 첫 해 129경기에 출전해 타율 .271 5홈런38타점76득점21도루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안타(127개)와 득점(76점)은 데뷔 후 개인 최고기록이었고 87.5%의 도루성공률(21/24)을 기록하며 준족 내야수로서 명성도 되찾았다. 비록 김상수의 결정이 삼성의 성적 상승으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우려했던 김상수의 2루수 변신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올해도 삼성은 3할대 승률(.333)에 허덕이며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 삼성의 톱타자로 나서고 있는 김상수는 야구팬들을 놀라게 할 만큼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김상수는 17경기에서 타율 .389 21안타5타점9득점으로 리그 전체에서 4번째로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주로 1번으로 나서는 만큼 득점권 기회가 썩 자주 오진 않지만 득점권 타율도 .625(8타수5안타)에 달한다.

김상수가 예년에 비해 가장 눈에 띄게 향상된 부분은 바로 선구안이다. 통산 .343의 출루율을 기록 중인 김상수는 올해 17경기에서 13개의 볼넷과 2개의 몸 맞는 공으로 벌써 15개의 사사구로 .522의 출루율(2위)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김상수는 지난 주 상위권 팀이었던 LG와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2루타 3방을 포함해 20타수10안타5득점으로 맹활약했다.

김상수는 삼성팬들 사이에서 팬서비스가 유난히 좋은 '연쇄 사인마'로 유명하다. 삼성을 응원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야구장뿐 아니라 식당, 해외 전지 훈련지 등 다양한 장소에서 김상수에게 사인을 당했다는(?) 제보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활약이 더 길게 이어진다면 김상수는 그저 '사인 잘해주는 선수'가 아니라 조금 늦게나마 삼성의 간판 선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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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삼성 라이온즈 김상수 타율 4위 연쇄 사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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