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미의 관심사> 순덕 역으로 첫 연기에 도전한 김은영.

영화 <초미의 관심사> 순덕 역으로 첫 연기에 도전한 김은영. ⓒ 레진 스튜디오

  
첫 연기에 주인공이다. 영화 속 캐릭터에 담긴 강렬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해야 했다. 래퍼 치타가 대중에게 배우 김은영으로 각인될 영화 <초미의 관심사>는 그만큼 본인에겐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었다.
 
김은영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김은영은 순덕 역을 맡아 베테랑 배우 조민수와 호흡을 맞췄다. 미혼모였던 엄마(조민수)와의 갈등에 일찌감치 집을 나온 순덕은 '블루'라는 이름으로 이태원을 주름잡는 재즈 보컬이 돼 있었고, 막내 유리의 행방불명에 자신을 찾아온 엄마를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리워한다. 
 
시작은 영화사 대표의 제안이었다. OST로 치타의 노래를 쓰고 싶다는 말과 함께 연기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김은영은 부담보다는 흥미가 컸다고 당시 생각을 전했다. 
 
"일단 새로운 걸 한다는 자체가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연기 경력이 없는데 제안을 했다는 건 신기한 일이잖나. 감사한 일이고. 당시 제 소속사 대표가 제가 노래한 작업물을 여기저기 들려드릴 때 영화사 대표님도 듣게 됐고, 노래도 쓰면서 아예 제가 출연하면 어떨까라고 말씀하셨다더라.
 
노래와 영화는 확연히 다른데, 그 중 하나는 무대에 설 때는 한 번 무대에서 내려오면 끝인데 영화는 한 장면을 위해 여러 번 같은 감정을 표현해야 하더라. 힘들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다. 한편으론 계속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느 순간 재미있게 다가왔다."

 
 영화 <초미의 관심사>의 한 장면.

영화 <초미의 관심사>의 한 장면. ⓒ 레진스튜디오

  
초짜 연기자의 해석

서울 이태원 곳곳이 등장하는 <초미의 관심사>에는 모녀의 갈등과 화해를 축으로 편견의 대상이 될 법한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다문화 가족, 성소수자, 가출 청소년 등이 곳곳에 등장해 주인공을 돕거나 방해한다. 연출을 맡은 남연우 감독의 전작 <높이뛰기>와 정서적으로 이어지는 느낌인데 남 감독과 김은영 모두 현재 이태원에 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순덕을 김은영은 잔정이 많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해석했다. 감독과 여러 부분을 상의해 가며 인물을 만들어 나갔다. 시종일관 감정을 드러내지 않다 영화 후반부에 터뜨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역시 시나리오엔 없었지만 몰입하면서 나오게 된 연기였다고 한다. 이 부분엔 17세에 노래를 하기 위해 고향 부산을 떠났던 그의 실제 경험이 반영돼 있었다.
 
"챙김과 보살핌을 못 받았다는 서운함이 있었겠지. 그런데 다시 만난 엄마를 보며 예전과 달리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딸 앞에선 강해보여야 했던 엄마를 순덕이가 이제 이해한 가지. 하지만 동시에 원망스럽기도 하고. 실제 저희 엄마의 모습도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부산을 떠나기 전 엄마는 누구보다 강했고 용감했는데 지금은 여려지셨더라. 3년 전부터 엄마랑 같이 살고 있다. 연기하면서 그런 부분에 이입이 돼서 오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원래는 우는 장면이 아니었는데 카메라가 돌아가고 그 뒤에서 조민수 선배가 받아주시는데 계속 눈물이 나더라. 울지 않고 연기해보기도 했는데 결국 감독님이 눈물을 보인 걸 택하신 것 같다."
 

베테랑 선배의 존재, 그리고 <초미의 관심사> 작업을 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한 남연우 감독의 조력으로 김은영은 연기의 맛을 알게 됐다. "처음엔 영화 <마녀>나 드라마 <방법> 등의 이미지로 저 역시 선입견이었는지 (배우 조민수의) 센 이미지가 걱정이기도 했는데 오히려 화통하게 먼저 다가와주셨다"며 그는 "경력에서 나오는 여유랄까. 현장에서 막내 스태프까지 챙기시는 모습을 배우고 싶다"고 조민수 배우와 함께 한 소감을 전했다.
 
특히나 첫 영화에서 편견이라는 메시지를 함께 전할 수 있었기에 남다르게 다가올 법했다. 노래로 그간 여성 래퍼의 삶과 가치관을 전해왔던 김은영은 "모든 걸 다 이해할 필요 없고, 그렇다고 다 밀어낼 필요도 없지만 서로를 인정하면서 같이 잘 사는 게 목표"라며 "어느 날 갑자기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소수자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편견 그 자체를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고 운을 뗐다.
 
"여자 래퍼로 부딪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스템 면에서 그리고 상업성에서도 말이다. <언프리티 랩스타>라는 프로가 잘 됐는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여전히 지금까지 힘든 면이 있을 것이다. 창작활동은 남녀 똑같이 할 수 있지만 그걸 세상에 내놓게 되는 게 (여성 래퍼로선) 힘들었다. 이런 이야기 하는 게 위험하진 않을까 혹은 지지받을까 걱정하는 자체가 편견인 것 같다.
 
익숙함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시도는 제외시키는 거지.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머리도 제가 귀찮아서 자르는 건데 너무 세 보인다는 말을 한다. 지금은 치타답다고 하는 분도 있고. 익숙하지 않기에 안 된다는 게 많은 것 같다. 그런 편견을 얘기하고 싶었다. <초미의 관심사> 역시 편견의 시선을 받을 법한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그들을 특별히 강조하지도 않고 스윽 지나가잖나. 과장했다면 오히려 그게 편견이지. 옆집 사람 대하듯 그런 인물을 제시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도 돌아봤다. 나 자신은 정말 편견 없이 누군가를 대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영화 <초미의 관심사> 순덕 역으로 첫 연기에 도전한 김은영.

영화 <초미의 관심사> 순덕 역으로 첫 연기에 도전한 김은영. ⓒ 레진 스튜디오

 
시기와 의지가 맞아 떨어져 전과 달리 보폭을 넓히게 됐다. 김은영은 "한 번의 확장이 온 거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의 연기 도전을 정의했다. 또 다른 연기를 해야 한다면 래퍼 치타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역할보단 새로운 캐릭터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후에 연기하자는 전화가 올지(웃음). 아니면 단발성으로 제 도전이 끝날 수도 있지. 개봉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제 이름이 치타니까 눈앞에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단거리를 사력을 다해 뛰고 숨 고르고 다음 걸 하나씩 한다면 우주를 정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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