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5회말 7-2로 NC가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SK 선수들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1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5회말 7-2로 NC가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SK 선수들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설마했던 상황이 결국 현실이 됐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가 충격의 10연패에 빠졌다.

SK가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6-11로 패했다.

지난 7일 인천 한화 이글스전에서 올시즌 유일한 승리를 거둔 뒤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한 것이다. SK의 종전 최다 연패 기록은 2000년 6월 22일부터 7월 5일까지 기록한 11연패였다. 2020년 현재의 SK는 19년 만에 다시 한 번 불명예 기록에 근접해 가고 있다. 시즌 성적은 1승 11패 승률. 083에 그치며 1위 NC와의 승차가 벌써 10게임까지 벌어졌다.

이 상황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SK가 누구나 예상했던 약팀이 아니라 우승후보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지난해 정규리그 2위이자 두산과 승차 없는 공동 최다승률을 기록했던 팀이 불과 반년도 안 되어 믿기지 않는 몰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SK의 실질적인 전력누수는 에이스 김광현 한 명뿐이다. 외국인 투수 앙헬 산체스도 팀을 떠났지만 닉 킹엄과 리카르도 핀토를 영입하며 공백을 메웠고 심지어 최정-로맥-한동민 등으로 이어지는 타선은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SK의 최근 경기력은 더 이상 '김광현의 부재가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타선-마운드-수비 모두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다. 

야구는 흐름의 싸움

사실 SK가 이 정도로 무기력하게 꼴찌를 기록할 정도의 전력은 아니라는 게 야구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결국 개막 초반부터 크고 작은 악재들이 하나둘씩 겹치며 흐름을 잘못탄 것이 연패 분위기로 이어졌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야구가 전력차보다도 결국 '흐름의 싸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일 키움전에서도 SK는 '부진에 빠진 팀의 전형적인 패턴'을 그대로 보여줬다. 휴식일을 거치며 심기일전한 SK 선수들은 누가봐도 독기를 품은 모습이 역력했다.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들의 평소보다 큰 목소리와 과장된 액션에서 연패 탈출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질해야한다는 압박감은 오히려 실전에서는 독으로 작용했다.

이날 SK는 1회부터 선발 핀토의 난조와 야수진의 수비실책까지 겹치며 무려 6실점을 내주고 기선을 제압당했다. 1사 2,3루에 박병호의 내야 땅볼 때 유격수 정현의 홈송구 야수선택, 김혜성의 땅볼 타구때 김창평의 늦은 타구 처리로 인한 내야안타 허용, 이지영의 2루수 땅볼 때는 김창평의 2루 송구를 놓친 정현의 포구실패 등 아쉬운 수비장면이 계속 이어졌다. 맥이 빠진 핀토는 이날 4.1이닝 동안 9피안타 8실점(7자책점)으로 부진을 남긴 채 마운드를 내려가야했다. 1회에 기록된 SK의 수비실책은 겨우 1개였지만, 실제로는 실수 퍼레이드의 연속이었다. 이미 SK 덕아웃에는 실망과 불안의 암울한 기운이 역력했다.

다행히 모처럼 타선이 터지며 5-6, 1점차까지 추격하여 간신히 분위기를 끌어올리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리그 최악으로 꼽히는 불펜이 또 다시 사고를 쳤다. 구원투입된 김주한이 몸에 맞는 공을 비롯하여 연속 밀어내기 볼넷으로 3실점을 더 허용했고 이 시점에서 승부의 분위기는 완전히 키움으로 넘어갔다. 수비 역시 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키움 서건창의 적시타 상황에서 SK 외야수 한동민이 공을 더듬는 깨알같은 실수도 추가됐다.

타선은 모처럼 6득점을 올렸지만 안타는 6개(키움 14개)에 불과했고 이날도 삼진을 무려 9개나 당했다. 극심한 부진에 빠진 로맥과 최정은 이날도 나란히 무안타로 침묵했다. 김강민이 홈런 포함 멀티히트(2안타 3타점)으로 분전했으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한마디로 SK로서는 뭘 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경기였다.

KBO 리구 역대 연패 기록
 
9연패 수렁 1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11-5로 패배한 SK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날 승리로 NC는 6연승, SK는 9연패를 기록했다.

▲ 9연패 수렁 1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11-5로 패배한 SK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날 승리로 NC는 6연승, SK는 9연패를 기록했다. ⓒ 연합뉴스


SK의 연패행진이 마침내 두 자릿수에 접어들며 KBO리그 역대 연패 기록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실 KBO리그에서 두 자릿수 연패를 당한 팀들은 심심찮게 나왔다. 사상 최다 연패는 지금은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가 기록한 18연패다.

삼미는 1985년 3월 3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구덕 경기에서부터 4월 29일 롯데와의 인천 경기까지 18연패를 당했고 이 기록은 35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역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1999년 8월 25일 전주 LG전부터 10월 5일 전주 LG전까지 17연패를 당하며 삼미의 기록에 가장 근접한 바 있다.

현존하는 10개 구단 중에서는 롯데 자이언츠가 2002년 6월 2일부터 26일까지, 기아 타이거즈가 2010년 6월 18일부터 7월 8일까지 각각 16연패를 당한 것이 최다 기록이다. 한화 이글스가 2012년 10월 3일부터 이듬해 4월 14일까지 두 시즌에 걸쳐 14연패를 기록하며 그 뒤를 잇고 있다.

프로야구 막내 구단 kt 위즈는 출범 첫해인 2015년 3월 28일부터 4월 10일까지 11연패를 당한 바 있다. 이밖에 LG 트윈스는 1991년 8월 31일부터 9월 15일까지, 두산 베어스는 2002년 10월 18일부터 이듬해 4월 13일까지, 삼성 라이온즈도 2004년 5월 5일부터 5월 18일까지 각각 10연패를 한번씩 기록한 바 있다. 그리고 두 자릿수 연패를 기록한 팀들은 모두 해당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연패에 빠진 팀들이 탈출에 성공한 그 순간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하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적극적인 분위기 전환은 물론, 중요한 순간에 등장해주는 해결사가 절실하다. KBO리그 최다 연패 기록의 주인공 삼미에는 최계훈이 있었다. 4월 30일 MBC 청룡전에서 선발등판한 당시 2년차 최계훈은 6피안타 무실점의 깜짝 호투로 누구도 예상 못한 4-0 완봉승을 거뒀다. 타선에서는 정구선의 솔로홈런과 양승관의 8회 만루 기회에서 3타점 3루타가 터지며 지긋지긋한 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2010년 기아는 7월 10일 한화전에서 겨우 16연패를 탈출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아직 성장중이던 유망주 양현종이 5이닝 4피안타 7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고, 맏형 이종범의 멀티히트와 나지완의 홈런 등이 터졌다. 불펜에서는 곽정철-안영명-손영민-유동훈 등 필승조를 총동원하는 총력전을 펼친 끝에 선제점을 먼저 내주고도 4-2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지긋지긋한 연패의 수렁을 벗어날 수 있었다. 2009년 우승 시즌 직후 이듬해 바로 구단 최다 연패 기록을 갈아치울만큼 추락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SK와 상황이 가장 비슷한 팀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극심한 부진에 빠진 팀일수록 평상심과 여유를 찾아야 한다. 키움전에서 드러났듯 연패를 기록중이라고 해서 긴장하고 무리해서 더 잘하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실수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현재 리그가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고 있어서 현장에서 SK의 전례없는 부진에 분발을 촉구하거나 야유를 보낼 팬들도 없다. 과거에는 연패에 빠진 팀들이 성난 팬들의 분노로 인해 경기장도 빠져나가지 못할만큼 험악한 상황이 연출된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온라인이나 SNS에서는 SK 팬들의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상황은 나은 편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많은 팀들이 연패의 역사를 새겼다. 위기일수록 가끔은 뻔뻔한 자신감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SK가 떠올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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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10연패 삼미18연패 염경엽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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