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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부축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편지 낭독을 마친 유족을 부축하고 있다.
▲ 유족 부축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편지 낭독을 마친 유족을 부축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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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의 공포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리려는 시민들의 마음을 가로막진 못했다. 지난 주말부터 월요일인 18일 당일까지 국립 5·18 민주묘지를 비롯한 5.18 사적지마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교복 입은 학생들보다 가족 단위의 추모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예년처럼 많은 사람이 한데 모인 대규모 행사는 없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에 유가족도, 시민들도 기꺼이 동참하는 모습이었다. 광주를 찾은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으려는 방송사의 카메라들도 그 수가 크게 줄었고, 그만큼 차분한 40주년 기념일이 됐다.

규모가 줄었다고 감동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사상 처음으로 옛 전남도청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선 5.18 당시 남편을 잃은 아내가 보내는 편지글과 가수 김필이 노래한 <편지>가 보는 이들을 울컥하게 했다. 이어 진상규명을 확약한 대통령의 추념사는 기념식장은 물론, TV 앞 시청자들의 박수갈채를 끌어냈다.

지난주부터 신문과 방송, 인터넷 포털의 메인 면은 5.18 관련 기사로 꽉 채워졌다. 경쟁하듯 쏟아낸 40주년 특집 방송 덕분인지, 지금껏 일부 의원들의 온갖 망언에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야당의 원내대표가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불과 몇 달 전과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5.18 진상조사 요구에 사사건건 발목 잡던 야당의 정치인들이 앞다퉈 광주를 찾는 모습이 조금 낯설긴 하다. 5.18 관련 가짜 뉴스를 퍼트려온 극우 유튜버들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의원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딱히 몽니 부릴 일은 아니다. 진정 야당의 환골탈태를 바라마지 않는다.

망언에 대한 사과와 광주 방문이 극우 세력과의 단절과 역사 왜곡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라면 야당은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마음만 있다면 어려울 것 하나 없다. 21대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과 이른바 '역사 왜곡 처벌법' 제정에 적극 협조하면 된다.
  
'학살자' 전두환의 이름 밟고 들어가다
 
5월 18일 늦은 오후 '망월동 묘역' 추모객이 떠난 묘역에는 그곳을 둘러싼 수많은 현수막의 펄럭임만 남았습니다.
▲ 5월 18일 늦은 오후 "망월동 묘역" 추모객이 떠난 묘역에는 그곳을 둘러싼 수많은 현수막의 펄럭임만 남았습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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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어둑해진 저녁 무렵 5.18 민족민주열사 묘역을 찾았다. 1997년 국립 5·18 민주묘지가 완공되어 이장하기까지 희생자들을 모셨던 곳으로, 흔히 '망월동 묘역'으로 불린다. 이곳을 참배하려면 입구에 박아놓은 '학살자' 전두환의 이름이 새겨진 빗돌을 밟고 들어가야 한다.
  
늦은 시간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추모의 흔적은 가득했다. 하얀 국화꽃이 이불처럼 봉분을 덮은 곳도 있고 방금 채워놓은 듯한 술잔이 놓인 곳도 있다. 중앙 제단에는 여러 단체의 이름이 적힌 꽃바구니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향 내음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추모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묘역은 다시 을씨년스러워졌다. 적어도 5월이 다 가기 전까지는 주말을 이용해 찾는 발길이 이어지긴 할 테지만 5월 영령들은 지금부터 1년간 다시 외로움과 싸워야 한다. 어둠이 내린 묘역에는 단체마다 내건 현수막의 펄럭임만 가득했다.

이내 현수막마저 걷히면 묘역은 41주년을 맞게 될 내년의 오늘까지 다시 긴 고요 속에 빠져든다.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도, '역사 왜곡 처벌법'을 제정하라는 외침도, 5.18에 대한 우리의 기억조차도 그리될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기억이 흐릿해지고 목소리가 잦아드는 순간 극우 세력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준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5.18, 나아가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현대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단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 5월 18일 단 하루 끓어올랐다 금세 식어버리는 냄비 같은 기억과 다짐이라면 파도 넘실대는 바닷가의 모래성일 수밖에 없다.

작년은 39주년이었고, 올해 40주년이며, 내년엔 41주년을 맞게 된다. 사실 40주년이라고 해서 딱히 특별한 의미를 둘 건 아니다. 10년 뒤 50주년 때는 기념식이 더욱 성대하게 치러질 테고, 한 세기가 지난 2080년 100주년엔 관행적으로 행사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기념일을 지정하고 행사를 여는 것만으로 기억을 이어가는 것엔 한계가 있다. 대규모 행사 한 번보다 자잘한 행사 열 번이 낫고, 열 편의 특집 방송을 보는 것보다 한 번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 1년 365일 삶 속에서 5.18을 떠올릴 수 있는 '모티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묘역 등 사적지를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5.18을 일상 속에서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월 18일이 1년 중에 특별한 하루로 여겨지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5월 18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미 광주에는 그런 노력이 시나브로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땅거미 내려앉은 고요한 묘역을 나서며 이곳에 잠든 5월 영령들을 외롭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 다짐이 며칠 못 가 시들고 시어질 꽃과 술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다짐의 밑절미는 기억이다. 뒷북일지언정 5.18 40주년 기념일을 쇤 뒤 부러 광주 시민들의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을 소개하려는 이유다.

1187번과 518번 버스 노선을 따로 만든 이유
   
5·18 열사 묘소에 큰절하는 추모객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추모객이 열사 묘소에 큰절하고 있다.
▲ 5·18 열사 묘소에 큰절하는 추모객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추모객이 열사 묘소에 큰절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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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에 가기 위해서는 콜택시를 이용할 게 아니라면 무조건 518번 버스를 타야 한다. 광주에는 특별한 번호를 붙인 시내버스가 둘 있다. 1187번과 518번. 1187은 광주를 품에 안은 무등산의 해발고도이고, 518은 5.18을 상징하는 숫자다.

1187번 버스는 시내와 무등산을 잇는 노선이고, 518번 버스는 광주 시내에 산재한 여러 곳의 5.18 사적지를 연결하고 있다. 둘 다 5.18을 기억하자는 다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태 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광주의 진산 무등산도 5.18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5.18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김준태 시인은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제목의 시를 전남매일신문에 발표했다. 그 시의 연마다 등장하는 시구가 바로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다. 발표 직후 그는 보안대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학교에서 강제 해직되었다.

신군부의 언론 검열로 시가 통째로 가위질당하는 수모를 겪지만, 시인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아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증명하고 있다. 무등산을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랐던 골고다 언덕에 비유하는 대목을 읽노라면, 5.18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한편 518번 버스 노선엔 5.18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점은 당시 수많은 시민이 폭도로 낙인찍힌 채 고문을 당했던 군부대 터인 5.18 자유공원이고, 묘역이 종점이다. 학살의 현장인 금남로와 옛 전남도청, 주먹밥을 나누던 양동시장과 대인시장, 관제 언론에 맞선 항거의 현장 옛 MBC 사옥, 청년 저항문화의 상징 녹두서점 터 등을 경유한다.

굳이 1187번과 518번 버스 노선을 따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외부 여행자들을 유치할 목적이었다면 여느 도시처럼 '시티 투어 버스'를 운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테다. 적자 노선이 될 거라는 우려에도 굳이 운행하는 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5.18을 항상 기억하기 위해서다.

외지인들을 위해서라기보다 이곳 광주 시민들과 시나브로 5.18을 오래전 역사로 치부하는 아이들에게 잊지 말라는 죽비이며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도로 위를 달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참혹했던 역사를 떠올리고 교훈을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아시아문화전당이 된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엔 조그만 시계탑을 만날 수 있다. 5.18 직후 뜯긴 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수십 년이 지나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이다. 당시 신군부는 도시계획이라며 핑계를 댔지만, 시민들은 5.18 흔적 지우기로 여겼다.

1년 365일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5.18 민주광장 주변 최후의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과 민족민주대성회가 열렸던 민주광장 앞으로 5.18 시계탑이 보인다.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린다.
▲ 5.18 민주광장 주변 최후의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과 민족민주대성회가 열렸던 민주광장 앞으로 5.18 시계탑이 보인다.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린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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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특별한 것 없는 시계탑이지만 기구한 사연만큼이나 울림을 주는 장치가 있다. 이곳에선 1년 365일,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묵념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이따금 눈에 띈다.

5.18 사적지를 답사한 외지인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시계탑을 첫손에 꼽는 이들이 많다. 묘역과 옛 전남도청과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등 내로라하는 사적지가 숱하지만, 이 소박한 시계탑을 손꼽는 이유가 무엇일까. 잊지 않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채 2분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듣는 순간 잠시라도 5.18을 떠올리는 건 인지상정이다. 우리가 바쁜 일상에 치여 기억이 지워져 갈 때 시계탑에서 나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따끔한 죽비소리다. 매일 5시 18분에 맞춰 '임을 위한 행진곡' 알람을 설정해두었다는 이도 있다.

그만큼 기억을 위한 도구로써 시계탑의 효과는 크다. 혹자는 수십 편의 영화보다, 수백 편의 논문보다, 낡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이 짧은 노래 한 곡이 더 큰 울림을 준다고 말한다. 그렇듯 5.18 시계탑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맞닿아 있는 가장 중요한 유물로 자리매김하였다.

마찬가지로 제주에선 4시 3분에, 마산에선 3시 15분에, 대구에서는 2시 28분에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래가 울려 퍼질 수 있다면 좋겠다. 듣다 보면 일상 속에서 4.3 항쟁과 4·19 혁명 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테니 말이다. 역사는 교과서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가랑비에 옷 젖듯 체화하는 것이다.

(2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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