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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기획단 첫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하겠습니다.'

3월 중순쯤 지역재단에서 모집하는 기획단 활동에 지원해 합류하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 기획자로서 내 역량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첫 대면식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첫 만남이 화상회의로 진행된다고 하니 김빠지는 기분이다. 어느 모임에서나 첫 만남이 중요하기 마련인데 화면 너머로 하는 모임이 잘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화상채팅 플랫폼을 사용해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이 피부로 와 닿기도 하고 여러모로 심란하다. 시간에 맞춰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했다.

화면 너머로 사람들이 모였다.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고, 동네 근처를 걸어 다니며 접속한 사람도 있었고, 귀갓길에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접속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급하게 근처 카페에 들어와서 노트북 모니터를 켠 상태였다.

첫 만남이라서 어색한 건지 아니면 화상통화 플랫폼이 어색한 건지 다들 눈 마주치기를 피한다. 눈이 아니라 화상 카메라겠구나. 아무튼 짧게 자기 소개를 마치고 각자 생각한 내용을 열심히 설명했다. 예상보다 길어진 회의를 마치고 팀원 한 명이 이야기했다.

'꼭 물속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네요.'
   
 화상회의 모습. 화면 너머로 이야기를 나눴다.
 화상회의 모습. 화면 너머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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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다. 화상통화를 하니 앞이 뿌연 수경을 쓴 채 물속에서 먹먹한 대화를 하는 기분이다. 물론 상대방이 잘 안 보이거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공간에서, 몸짓과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채로, 액정 화면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것은 딱 잘라 말하기 힘든 갑갑함을 준다. 다들 적잖게 공감했는지 저마다 화상회의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며 다음엔 꼭 직접 만나기를 약속하고 연결을 종료했다.

나만 화상회의 불편한가 봐

어떤 전문가는 코로나19가 미래를 앞당겼다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에 돌입하면서 IT의 발달로 언택트 서비스, 비대면 의사소통 플랫폼이 한창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가 이것을 더욱 가속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화상회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는 것은 기본이고 더욱 다양한 방식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전망했다.

당장 화상회의 기술만 해도 AR 기술을 이용한 3D 공간 회의 기술이 소개되기도 하고 VR 가상현실을 통해 아바타 회의를 하기도 하던데 아직 화면 너머로 대화하는 것조차 어색한 나로서는 저런 것들이 모두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물론 화상회의는 더 나은 원격 소통을 위해 탄생한 기술이다. 이왕 통화하는 상황이면 얼굴도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는 화상통화가 더 나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내가 화상통화를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아직 그 기술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보다 고작 세 살 어린 친한 동생들은 내게 종종 화상통화를 걸어오곤 한다. 나는 그게 적잖이 불편해서 일부러 받지 않고 신호가 끊기길 기다린 적도 있는데 이미 이 방식이 익숙한 동생들에게는 일반 통화처럼 편한 모양이다. 여전히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가 훨씬 편한 내게 화상통화는 더 진보한 방법이라기보다는, 굳이 도전해야 하나 싶은 낯선 방식처럼 느껴진다. 이 낯선 방식을 신선하게 느끼고 '내 것'으로 만들지, 아니면 그저 불편하게 여기며 나와는 상관없는 '요즘 것'으로 만들지는 나에게 달린 문제다.

나도 예전엔 신기술이 좋았어

나도 영상통화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흥분하고 열광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신기술이라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무렵 전화를 거는 대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당시엔 분명 새로운 일이었다.

내가 문자메시지를 처음 사용하던 때가 아마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모토로라 휴대폰을 손에 얻고서 한동안은 말하는 것보다 문자 보내기를 더 좋아했다. 그때는 그 작은 키패드가 모두 닳아 없어지도록 친구들에게 열심히 문자를 뿌렸다. 당시에는 한 달에 정해진 양 이상 메시지를 보내면 요금이 추가로 나왔기 때문에 한 통에 90글자를 알차게 꽉 채워서 보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그런 제한조차 사라지게 됐고 문자 메시지는 나의 일상에 더욱 더 깊게 침투했다. 이제 카톡을 이용한 문자 소통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음성통화 사용이 주류를 이루던 그때 시절을 생각하면 나는 (당시에는) 나름 신세대로서 문자메시지 기술에 잘 적응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당시 내가 사용하던 휴대폰. 저 자판이 모두 닳아 없어졌었다.
 당시 내가 사용하던 휴대폰. 저 자판이 모두 닳아 없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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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마트폰과 함께 시대가 열리면서 나도 초반까지는 관련 신기술들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새로운 칩셋으로 나날이 성능이 더 좋아지는 것도 신기했고, 지문으로 잠금화면이 열리는 것도 무척 편했다. 이 작은 물건으로 동영상도 보고, 음악도 듣고, 게임도 즐긴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AI' 기술을 활용하겠다고 TV에서 광고하기 시작했고, 내 스마트폰에도 자연스럽게 관련 애플리케이션이 깔렸다. 그때 처음으로 '이게 왜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기술 꼰대'의 한숨

빅데이터 시대가 도래했다거나,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거나, 모두가 코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거나 하는 어려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신기술에 대응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나도 이때쯤 무너졌던 것 같다. 새로운 기술을 마주하면 반가움보다 불편함이 먼저 다가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VR 카페가 재미있다며 놀러 가자고 이야기할 때도 호기심보다는 귀찮은 마음이 앞섰다. 삼성과 애플의 무선 이어폰 성능을 놓고 열심히 토론하는 친구들에게 '그게 그거 아니야?' 하는 사람이 됐다. 어떤 친구가 드론으로 공중 촬영을 해보고 싶다며 열심히 드론 이야기를 할 때는 어찌나 졸리는지 도저히 하품을 참을 수 없었다.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벌써 이렇게 되다니. 열심히 IT 게시판을 뒤적거리던 나는 없어지고 그저 쓰던 것이 좋은 '기술 꼰대'로 성장해버렸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로 인해 앞으로 훨씬 많은 신기술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며, 한 가지 기술에 적응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신기술을 마주해야 할 것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는 과정' 그 자체에 적응해야 할 수도 있겠다. 이 가파른 신기술 시대의 격류에 코로나19가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하니, 일상을 뒤집어놓는 이 전염병의 출현이 점점 더 미워진다.

코로나19가 물러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뉴스 기사에서는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오늘날이 앞으로 새로운 일상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상통화 같은 비대면 소통방식도 앞으로 꾸준히 이용될 것이라고. 이젠 꼼짝없이 이 어색한 대화 기술을 받아들일 때가 된 모양이다. 조만간 또 화상 모임이 잡힐 것 같은데, 우선 카메라 울렁증부터 극복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서울잡스 플랫폼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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