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그린 영화 <저 산 너머>가 30일 개봉했다. 대단한 인물의 어린 시절은 어떨까 궁금한 마음에 참석했던 지난 20일의 언론배급시사회. 하지만 어린 추기경은 신동도 아니었고 신화 속의 영웅처럼 특별한 인물도 아이었다.

<저 산 너머>는 평범한 한 아이의 어린 시절을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 더 감동이었다. 건빵 속의 작은 별사탕처럼 추기경의 어린 마음 밭에서 싹트기 전에 빛나는 씨앗을 그려냈다. 이 영화는 종교를 떠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저 산 너머>를 기획하고 만든 최종태 감독을 만나 인터뷰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기적으로 만든 영화
 
'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영화 <저 산 너머>의 최종태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영화 <저 산 너머>의 최종태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최종태 감독이 이 영화의 씨앗을 처음 품은 건 지난 2011년쯤이었다. 추기경의 소박한 어린 시절을 담은 영화를 꿈꾼 그는 어렵사리 제작사 한 곳과 진행을 하게 됐지만 잘 풀리지 않았고 엎어져서 포기해야만 했다. 투자도 안 됐다. 가톨릭을 믿는 배우들에게도 출연을 거절당했다. 모든 게 불가능해보였고 산 너머 산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토리도 아니고 옛날 시골마을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 <저 산 너머>에 제작·투자를 하겠다는 손길은 닿질 않았다.

막막한 시간들과 우여곡절이 계속 되던 중 조금씩 기적들이 모였다. 주변의 만류에도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는 투자자를 만났고 몇몇 사람들의 진심어린 도움으로 비로소 늦게나마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었다. 최종태 감독은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에 임했을까.

그가 일화 하나를 들려줬다. "사실 영화 초기 기획단계에서는 내 마음에 추기경님이 잘 안 다가왔다"고 고백한 그는 추기경님이 사제서품을 받았던 대구 계산성당에 가서 미사를 본 이야기를 시작했다.

"성체를 모시고 자리로 돌아와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패닉이 오더라. 불안감이 밀려왔다. 내가 이 영화를 해도 되나, 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해져서 당혹스럽더라. 거룩한 마음이 들 거라 기대했는데 추기경님이 거절한 것 같아 너무 찝찝했다. 갑자기 그때 '주님 저를 긍휼히 여기서소'라는 기도문구가 떠올랐다. 이 문구는 추기경님이 사제서품을 받으실 때 품었다는 기도였다. 이 기도가 마음에 들어오자 추기경님과 합일되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영화를 만들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것 같았다. 그 다음부터는 추기경님이 내 마음 속에서 자유롭고 편하게 자리 잡게 되더라."

여타 상업영화들이 밟는 제작 절차와 다르게, 완전한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했던 최 감독은 너무도 무모한 시도였지만 그 시도를 계속 했고 결국 무모함이 결과를 냈다.

추기경 어린 시절 아역배우, 첫눈에 알아봐 
 
 영화 <저 산 너머> 포스터

영화 <저 산 너머> 포스터 ⓒ 리틀빅픽처스

 
영화에서 어린 추기경을 연기한 이경훈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 됐을까. 쌍꺼풀 진하고 도시적인 기존 아역배우에서 고르기 힘들었던 최 감독은 260명을 오디션으로 만났는데 세 번째 순서로 들어온 아이가 바로 경훈이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들어오는데 키도 조그마하고, 무엇보다 인중이 긴 거다! 마음속으로 너 진짜 연기 잘해야 한다 제발 하며 비는데 연기를 잘 하더라.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경훈이가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거의 모든 회차에 나오는데, 작년 여름에 정말 더웠다. (경훈이는) 촬영하며 딱 한 번 울었다. 배우 한 명이 영화를 끌고 가려면 에너지가 있어야하는데 경훈이는 한결같이 밝게 임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티를 안 내는 게, 주인공으로서 이끄는 에너지가 있더라. 자기만의 표현력을 가지고 연기한다. 어머니 역을 연기한 베테랑 이항나 배우가 놀라더라. 아이가 세니까 놀라서 긴장하고 연기했다고 나중에 말하더라. 순수와 관록을 딱 붙여놓으니 짜릿했다."
 
'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영화 <저 산 너머>의 최종태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영화 <저 산 너머>의 최종태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얼마 전 기술시사 때의 일화도 이야기했다. 최 감독은 "코로나19 때문에 몇몇 스태프만 참여하려 한 기술시사회에 경훈이가 영화를 보고 싶다며 오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오라고 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엄청나게 울더라. 소리 내서 막 울어서, 나중에 식당에 가서 아까 왜 울었는지 물었더니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울었다더라. 첫째는 고생한 게 생각나서 울었고, 둘째는 영화가 너무 좋아서 울었고, 셋째는 자기가 너무 자랑스러워서 울었다더라"며 그의 얘기를 전했다. 

저 산 너머의 것을 바라보는 계기 됐으면
 
'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영화 <저 산 너머>의 최종태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영화 <저 산 너머>의 최종태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왜 최 감독은 김수환 추기경의 위대한 여정을 그리지 않고, 신부가 되기 전의 어린 시절을 그렸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이 질문에 최 감독은 "아이거든요, 김수환 추기경이 아니고 아이거든요"라며 운을 뗐다. 이어 "저 역시 처음엔 김수환 추기경님을 자꾸 보려고 했더라. 평범한 아이인데 말이다. 그 평범함 속에 나중에 크게 되는 작은 씨앗이 있는 건데..."라고 말했다. 

"어린 추기경을 막 엄청 착하고 그렇게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로 만들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동심을 그리려 했다. 엄마한테 거짓말도 하고 뉘우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특별한 씨앗인 부끄러움이나 용기 등이 살짝만 보이게 하자 싶었다. 추기경님을 잊어버리고 어린아이를 그리는 것이 내 목표였다. 추기경님은 특별한 점이 없다. 그 평범함이 그 분이 가진 강점이다. 그 속에 지극히 큰 사람이 있는 거고."

끝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는지 물었다. 이에 최 감독은 "코로나19로 모두가 잠시 멈추게 됐는데, 멈추니까 많은 변화들이 생긴 것 같다"며 "이 영화로 사람들이 잠시 멈추면 좋겠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아이를 보면서 해보시면 좋겠다. 어른들은 늙은 아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핸드폰에 고개를 박은 채 사는 하루하루, 목전의 이득만을 보며 사는 날들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존엄함과 근본적인 행복을 찾아서 저 산 너머 멀리를 바라보자는 의미에서 영화의 제목을 '저 산 너머'라고 지었다. 참다운 행복도, 내 삶의 본질도 저편 언덕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발 디딘 이 테두리 안이 아닌 그 너머의 지혜를 찾고 싶다."  
'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영화 <저 산 너머>의 최종태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영화 <저 산 너머>의 최종태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저산너머 김수환추기경 이경훈 최종태 이항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