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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헌법재판소는 인권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현행 국가공무원법 제65조 1항 가운데 교사의 정치단체 가입을 불허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교사의 정당 가입은 불허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 제65조 1항 앞부분은 여전히 합헌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모순된 판결로 읽히면서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교사의 정치단체 결성과 가입을 금지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결정은 매우 진일보한 판결이다. 민주주의 암흑기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교사는 정치기본권을 극도로 제한받고 있다. 헌법에 명문화된 인간의 권리이자 시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이 그러하다.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면서까지 하위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헌이다. 헌법 37조에도 명문화돼 있지 않은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서 제한하는 경우에도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기돼 있다. 그런데 국가공무원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 하위법률들은 교사를 시민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교사 이전에 인간이자 공동체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임에도 그 기본권이 박탈돼 있다면 어찌 제대로 된 시민이 될 수 있겠는가? 나아가 제대로 된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호받질 못하는 교사가 어떻게 학생들을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길러낼 수 있겠는가?

불행히도 한국은 OECD 가입국 가운데 유일하게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나라이다. 교육활동을 비롯해 공적인 업무 수행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서 기본권마저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교사 이전에 한 시민으로서 응당 지지하는 정당이 있고 키워주고 싶은 정당이 있는데, 당원 가입조차 법으로 금지하고 당비 납부조차 징계하는 것은 공권력의 남용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국가 폭력의 또 다른 모습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캐나다, 뉴질랜드, 덴마크,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를 비롯해 선진국은 하나같이 교사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보다 경제력이 낮은 포르투갈조차 교사를 포함해 공무원의 정치 활동에 낡은 법체계를 앞세워 정치기본권을 억압하지 않는다. 교사 이전에 시민이고 최소한 시민으로서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에는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보호받아야 할 시민의 기본적 권리조차 박탈된 상태에서 어떻게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다는 것인지 참으로 모순된 현실 앞에 답답하기 그지없다.

공화당-민주당으로 고착돼 진보정당이 존재감 없이 소수당으로 전락한 보수적인 미국조차 교사의 정당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심지어 지역색과 정치적 대물림으로 봉건성이 짙어 정치적으로 퇴락한 일본조차도 교사의 정당 가입은 허용한다. 1950년대 후반~1990년대 전반기까지 자민당-사회당으로 대립되었을 때 일본교사 노동조합인 일교조 교사들 다수는 사회당 당원이었다. 일교조 자체가 사회당의 외곽조직이었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 이외엔 없다. 한국의 정치후진성은 교사의 정당 가입을 비롯해 정치 기본권을 억압한 것과 관련이 매우 깊다. 교사의 정치기본권 가운데 가장 초보적인 정당 가입조차 가로막는 국가에서 정치의 선진적인 모습을 발견하기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유럽연합(EU)을 선도하는 정치 선진국 독일은 교사의 정당 가입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정치활동에 제한이 없다. 공무원 겸직도 가능하다. 심지어 연방 국회의원 가운데 교사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1위인 법조인 다음으로 매우 높다. 실제로 15대 연방의회(2002~2005) 당시 총 628명 가운데 교사 출신 의원이 101명에 달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독일 정치가 돋보이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현실이 비단 독일에 국한하지 않는다. 북유럽 선진국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모두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역시 정당 가입은 물론이고 교사의 정치활동에 제한이 없다. 교사 신분을 유지하면서 정치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고 심지어 타인의 선거운동을 도울 수도 있다. 교사로서 자신의 공적 영역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 된다. 바로 수업시간 특정 가치를 주입하지 않는 정치적 불편부당성을 견지하면 그것으로 교육의 공정성은 확보된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2008년 교육감 선거 당시, 진보교육감을 지지하고 후원금을 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현직교사를 형사처벌과 함께 해고시켰다. 어처구니없게도 현직교사를 징계하는 후진적인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해직교사 9명이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일방 통보한 적이 있다. 바로 그 해직교사들이 그분들이다. 그리고 일부는 사립학교 비리를 폭로했던 공익제보자들이다.

이제 한국사회가 그분들께 답해야 한다. 낡은 법조항을 들이밀며 학교에서 쫓아낸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야 할 시점이다. 교사의 정당 가입조차도 불온시하고 낡은 법을 앞세워 공권력을 남용한 한국사회 후진적인 정치현실이 빚은 국가 폭력의 또 다른 측면이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한편으론 환호하면서도 교사의 정당 가입을 불허하는 판결이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태그:#정치기본권, #교사의 참정권, #헌법재판소, #정당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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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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