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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생각한 '동화쓰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어린이책을 다시 읽습니다.[편집자말]
동화 독자로서 지난 몇 년 한국 동화를 읽은 소감은 나 어릴 때와 아주 다르다는 거다. 만약 지금도 그때처럼 교훈 일변도나 체제를 홍보하는 동화가 있다면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그 시절 동화는 어른이 아이에게 "얘들아, 저것은 나쁜 것이고 이게 좋은 거란다" 혹은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한단다"와 같은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들려주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동화가 있다면 어린이들의 선택을 받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동화는 작가가 직접 개입해서 말해주기보다는 영상처럼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직접 느낄 수 있게 한다. 소재와 주제는 자연스러운 사건으로, 등장인물 또한 행동과 말로 작가가 하고픈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런 동화 작법을 공부하는 예비 동화작가들에게 김태호 작가의 작품은 좋은 교과서가 된다. 특히 동물을 작품 소재로 다루고 싶은 예비 작가라면.

동화에는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동화에서 동물들은 직접 주인공이 되어서 인간을 바라보거나 때론 인간의 눈으로 관찰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이 나오는 동화 대부분은 인간이 동물 탈을 쓰고 연기하는 듯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굳이 동물을 등장시키지 않고 사람을 출연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동물을 '의인화'한 동화의 한계이다.

김태호 작가의 작품에도 동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작품들은 동물의 눈과 입으로 '동물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인간 본성의 민낯을 보여주며 아이들이 주인공이 될 미래 세상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김태호 작가는 노골적으로 외치지 않는다. 다만 작가가 원하는 생각을 스토리와 캐릭터에 녹여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오늘은 그의 작품세계를 잘 볼 수 있는 <네모 돼지>를 골랐다.
 
김태호 동화집 <네모 돼지>   표지
▲ 김태호 동화집 <네모 돼지>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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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돼지>는 단편 동화 일곱 편을 모은 동화집이다. 일곱 편 모두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인간의 반려이기도 하고 때론 인간의 식량이기도 하다. 각각의 소재와 주제를 막론하고 <네모 돼지>의 단편들은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그리며 어린이 독자들에게 생각 거리를 준다. 굳이 소재로 분류하자면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김태호 작가는 <네모 돼지>에서 인간의 반려로서 혹은 가족으로서의 동물을 이야기한다.

단편 '기다려'에는 어떤 집에 묶인 개가 등장한다. 주인공뿐 아니라 다른 집에도 묶이고 갇힌 동물들이 많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안 보인 지 며칠째다. 그들이 나눈 이야기로 상상해 보건대 그 마을 근처에서 큰 사고가 난 듯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다른 동물들은 주인공에게 주인이 돌아오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형'이 자기를 두고 떠날 리 없다고 주인공 개는 믿는다. 그런 바람 때문일까.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엔진 소리. 하얀 옷과 마스크와 장갑까지 낀 '형'이었다. 주인은 개를 데리러 온 걸까.

'고양이 국화'에는 한 할머니와 고양이가 나온다. 길을 떠돌던 고양이에게 '국화'라는 이름을 붙여준 할머니는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국화를 보살핀다. 시간이 흐르고 더 늙고 아프게 된 할머니와 그녀를 지켜보는 국화. 밖으로 나다니며 친구를 사귀는 국화와 그런 고양이를 지켜보는 할머니. 둘은 어느덧 헤어진다.

'기다려'에서는 주인공이 가족으로 믿었던 그래서 기다렸던 '형'은 귀중품만 챙기고 개를 두고 다시 떠난다. '고양이 국화'도 인간과 반려동물의 헤어짐을 그렸지만 '기다려'와는 온도가 크게 다르다. 늙고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할머니를 두고 고양이가 떠나는 모양새다. 떠나는 고양이를 할머니는 미소로 보내고.
 
"차 조심하고, 잘 가라."
할머니는 손을 앞뒤로 움직이며 미소 지었다.
"비 맞지 말고 어서 가라."
할머니는 다시 잠이 쏟아지는 듯 힘겹게 들고 있던 손을 이불 위로 떨어뜨렸다.
(김태호 동화집 <네모 돼지>에 수록된 '고양이 국화' 본문 중)
 
이 대목을 뒤집어 본다면, 병들거나 나이든 반려동물을 버리는 인간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친다. 가족과 반려라는 의미를 돌아보게끔 하는 작품이다.

다음으로 <네모 돼지>는 인간의 식량이기도 한 동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동물권'을 다루기도 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네모 돼지'에는 '돼지농장'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 농장에 사는 돼지들은 모두 '네모' 모양이다. "철로 된 네모 상자에 꼭 맞춰져 마치 벽돌로 찍어낸 것처럼 네모반듯하게 키워져 온 것이다." 농장이라기보다는 '공장'처럼 보인다.

그런데 주인공 돼지 '오스터'는 그런 돼지들과는 좀 다르다. 네모 돼지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역할이다. 책의 내용은 둥그런 돼지로 자라면 늑대가 잡아간다는. 네모난 돼지로 자라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일종의 의식화를 담당한다. 식량으로 잘 길러질 수 있도록.

'소풍'은 도축장으로 가는 트럭에 실린 소들의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 밖을 나온 첫 외출이었다. 일련번호, C3774, C4046 같은 기호가 이름인 소들은 진짜 소풍이라도 가는 양 길옆으로 스치는 풍경 하나하나에 즐거워한다. 이 나들이가 첫 외출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외출이기도 한데.

이처럼 김태호 작가는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인간의 식량이 되는 동물들의 모습을 어린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소풍'은 고기가 되기 위해서 길러진 소들의 마지막 날을, '네모 돼지'는 통조림처럼 사육되는 돼지들을 그리고 있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인간의 목적에 맞게 사육되는 모습으로 풍자한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네모 돼지들 몸에서 네모난 철 상자가 벗겨졌다. 오랜 시간 갇혀 있던 돼지들의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네모 돼지들의 모습은 눕혀 놓은 냉장고 같았다. 분홍빛 냉장고에 머리와 다리가 달린 것처럼 보였다. 통로를 빠져나가는 돼지들의 네모난 엉덩이에서 작은 꼬리가 달랑거렸다.
(김태호 동화집 <네모 돼지>에 수록된 '네모 돼지' 본문 중)
 
동화는 상상력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김태호 작가는 상상력에 현실을 덧붙인 것 같다. '기다려'는 '동일본 대지진' 후 사람이 떠난 마을에 동물들만 남아 있는 다큐가 떠오르고, '네모 돼지'와 '소풍'은 평생 몸에 딱 끼는 우리에 갇혀 고기가 되기 위해 살찌우는 가축 농장이 생각난다.

이번 글에 따로 소개하지 않은 수록작들도 우리 주변에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가족 간의 단절을 다룬 '어느 날 집에 호랑이가 찾아왔습니다', 재활용품 수거함에 버려진 고양이를 그린 '고양이를 재활용하는 방법', 분노 때문에 이웃집 개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린 '나는 개', 세 작품 모두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김태호 작가의 동화를 읽으면 '인간'이 가져야 하는 세상에 대한 책임을 느끼게 한다. 어리지만 지금부터 세상에 관한 관심을 가지라고 다독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진정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고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다. 미래의 주인공은 어린이들이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네모 돼지

김태호 지음, 손령숙 그림, 창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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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살던 아파트를 떠나 산 아래 옥상집에 사는 경험과 동화 공부를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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