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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기사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니 보도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기획재정부는 20일 하루 동안만 수차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해명자료를 냈다. 앞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7조6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담긴 내용, 즉 소득하위 70%에 가구당 최대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안과 조금이라도 다른 내용의 언론보도가 나올 때마다 즉각 반박자료를 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가구에 지급하되 지급액을 4인 가족 기준 80만원으로 낮추는 절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여당의 강력한 요구에 '기재부가 추가 재원 마련을 위해 구조조정이 가능한 세출사업 목록을 검토해왔다'는 보도도 모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재난지원금 대상 확대에 따른 지급액수 조정, 재원 추가조달 방안 검토 등 정부가 여러 시나리오별로 마땅히 사전 검토를 했음직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겉으로는 언론의 보도를 반박하는 모습으로 비춰졌지만, 실제로는 보도 내용에 담긴 민주당의 요구를 반박하기 위해 장외에서 여론전을 벌이는 모양새였다.

기재부의 필사적인 여론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전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회의 준비를 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전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회의 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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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국회를 설득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그는 '소득 하위 70%' 기준에 대해 "지원의 필요성·효과성·형평성·제약성 등을 종합 검토하여 결정된 사안인 만큼 국회에서 이 기준이 유지될 수 있도록 최대한 설명·설득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지시했다.

설득에 동원할 논리도 직접 제시했다. 그는 "재정당국이 무조건 재정을 아끼자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우선순위가 더 있는 분야에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코로나19의 파급영향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대비하여 국채발행 여력을 조금이라도 더 축적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등을 활용하라고 했다.

기재부가 전날 고위 당·정·청 협의에 이어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자는 집권여당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셈이다.

기재부의 확대간부회의가 끝나고 오후에 열린 정세균 국무총리의 시정연설도 이 같은 정부 입장을 충실히 대변했다. 정 총리는 2차 추경안 국회 제출에 따른 시정연설을 하면서 "지원 대상 간 형평성과 한정된 재원 등을 고려해 일부 고소득층을 지급 대상에서 불가피하게 제외했다"며 "국민 여러분의 양해와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통합당의 변심에 스텝 꼬인 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인영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인영 원내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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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한 처지로 몰린 건 민주당이다.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을 때만 해도 큰 무리 없이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공약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기재부의 반대야 새삼스러울 게 없다고 해도, 심각한 건 총선 전에는 '국민 1인당 50만원 지급' 주장을 펴던 미래통합당의 변심이다. 설마 했지만 통합당은 손바닥 뒤집듯 총선 공약을 번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합당 소속 김재원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앞장섰다. 김 위원장은 "상당한 소비여력이 있는 소득상위 30%까지 100만원을 주는 민주당의 안은 소비 진작 효과도 없고 경제 활력을 살리는 데도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며 "앞으로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진행될지도 모르는데 국가재정을 대폭 흔드는 방식의 국채발행을 통한 재난지원금 지급은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기재부의 주장과 똑같다.

통합당이 기재부와 공동전선을 형성하면서 민주당은 스텝이 꼬였다. 추경 심사 과정에서 총선 때 전 국민 지급을 약속한 통합당을 비롯한 야당과의 공조를 통해 기재부를 설득하겠다는 계산이 빗나간 것이다.

이해찬 대표를 필두로 민주당 지도부는 통합당의 총선 공약 준수를 거듭 압박했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자기 당이 선거 때 공약한 것을 바로 뒤집는 수준이라면 그분들이 20대 국회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며 "야당이 (재난지원금을) 또 정쟁거리로 만든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총선 과정에서 여야가 국민 모두에게 가장 빨리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명확히 약속했기 때문에 정치적 합의는 이미 이뤄졌다"며 "이제는 선거 때 한 약속을 실천해야 할 시간"이라고 밝혔다.

'총선 공약'이라는 점을 지렛대로 삼아 통합당을 압박해도 그들이 태도를 바꿀지는 미지수다. 지도부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완강한 기재부를 방패막이 삼아 버티기에 들어갈 가능성도 크다.

최악은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
 
지난달 30일 코로나19 관련 청와대 비상경제회의에 입장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지난달 30일 코로나19 관련 청와대 비상경제회의에 입장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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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논란이 커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재난지원금이 '긴급하게' 지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달 말까지는 추경안 심사와 본회의 처리를 끝내야 5월 초 지급이 가능해지지만, 국회에서 합의안을 만드는 데 시간을 끈다면 조기 지급은 사실상 물 건너갈 수도 있다. 총선의 압도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당정 갈등에 빠져 허우적댄다면 그 책임은 집권 세력 전체가 고스란히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지금 민주당에게 시급한 건 통합당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첨예한 당정 갈등 해소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말대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나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 이사장은 지난 5일 유튜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 라이브 뷰'(알라뷰)에서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 이사장은 정부가 마련한 소득하위 70% 지급안의 부족함을 지적하면서 "대통령께서 이걸 깨셔야 한다, 이걸 깰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총선 공약으로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을 내건 만큼 물러설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총선 때 약속을 며칠 만에 뒤집을 경우 거센 역풍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문 대통령의 역할이 필요한 시간이 왔다. 기재부가 기존 입장을 접고 여당 안을 수용하게 하든지, 우리나라의 재정여건상 전 국민 지급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정치적인 후폭풍을 감당하더라도 민주당 지도부가 후퇴하도록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최악은 볼썽사나운 지루한 당·정 갈등이 이어지면서 최종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상황이다. 이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태그:#긴급재난지원금, #코로나19, #문재인, #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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