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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야기와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림에 대한 이해를 넘어 예술가, 그리고 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과 사물, 세상에 대한 그들의 철학과 고민을 엿보고 인간으로서의 좌절, 고통, 자부심, 고집을 조명해보면서 그림이 전달하는 의미와 그 너머 화가의 존재를 인식해보고자 한다.[기자말]
반 고흐, 그처럼 지독히도 외롭고 유난히 낙담하고 지나치게 의존적인 화가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사랑하고 너무도 희망적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에 감탄하고 영원을 꿈꾸었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심지어 자신의 마음조차 어찌할 수 없음을 결국은 알아차리고 만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아트 딜러, 전도사 등의 직업을 가졌다가 결국은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고흐는 세상과의 대화를 그림으로 풀어나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전도사로 활동한 벨기에의 한 시골 마을의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대표작 'The Potato Eaters'(1885)는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어두운 불빛 아래 식탁에 앉아 감자와 차를 먹고 있는 장면을 담았다.
 
감자 먹는 사람들(1885) 반 고흐 Source: Wikimedia Commons
▲ 감자 먹는 사람들(1885) 반 고흐 Source: Wikimedia Commons
ⓒ 반 고흐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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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힘들게 움직여 먹고사는 그들은 거칠고 주름진 손과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아무리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도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결코 넉넉하다고 할 수 없는, 간신히 배를 곯지 않을 정도의 단품의 감자 뿐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각자 서로를 챙기며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 야위어서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동그란 두 눈은 생기를 잃은 퀭한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 온기를 발견하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다. 

고흐는 말하자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서 연민 내지는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을 어떻게든 돕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고흐의 도움의 손길은 언제나 외면을 받거나 거부되곤 했다. 그 자신이 어쩌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그에게서 도움이나 위안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그 안의 열정에서 소름끼치는 광기를, 그 안의 희망에서 미치광이의 집착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고흐의 이러한 일방적인 방식은 어느 누구의 호응도 얻지 못한 채 변화를 맞아야 하는 시점이 되었고, 결국은 고흐도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파리로 떠나기로 했다. 그 곳에서 고흐는 역시나 예술계에 푹풍처럼 등장해 하나의 큰 힘을 형성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그 또한 몽마르뜨 카페의 테라스 풍경이나 세느 강변의 모습 등을 화폭에 담았다. 

하지만 고흐의 그림은 인상주의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 사실 고흐가 파리에 도착한 1886년에는 이미 인상주의가 폭풍처럼 휘젓고 지나간 뒤라고 할 수 있었다. 그 해에 인상주의를 표방한 마지막 전시회가 열렸고 그곳에서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그림은 후기 인상주의라 이름할 수 있는 쇠라의 '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였다. 고흐 또한 미술사적으로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는데 이는 고흐가 인상주의와는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렸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고흐는 빛의 작용에 따른 색의 변화에 중점을 둔 인상주의의 그림과는 달리 색의 임의적 선택이나 보색 대비에 따른 긴장과 대조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고흐의 그림에는 빨강과 녹색, 노랑과 남색이 나란히 칠해진 경우가 많다. 보이는 색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칠하고 싶은 색을 임의로 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흐는 특히나 노란색을 좋아했다. 그에게 노란색은 태양의 색이었고, 희망의 색이었다. 그의 그림에서 태양은 노란색 물감으로 두껍게 덧칠하여 커다란 둥근 모양으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파리를 떠나 정착하게 된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서 고흐는 자신이 꿈꾸던 화가들의 공동체를 고갱과 함께 이루어나가려 했다. 결국 두 사람의 공동 거주와 작업은 두 달만에 끝나버리긴 했지만 고갱을 기다리면서 그린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들은 작열하는 해를 닮은, 열망과 기대로 만발한 노랑의 축제와도 같다. 
 
해바라기(1888) 반 고흐 Source: Wikimedia Common
▲ 해바라기(1888) 반 고흐 Source: Wikimedia Common
ⓒ 내셔널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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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으로 꾸준히 자신의 희망과 열정을 표현하던 고흐는 자신이 꿈꾸던 것들과 바라던 것들이 결국은 무너져버리자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 절망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스스로 자신의 오른쪽 귀를 잘라 이를 손수건에 감싸 동네 매춘부에게 전해주는 일종의 엽기적인 행각에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이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지만 고흐는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동네 주민들의 요구로 자신이 설 곳을 잃은 느낌이었다. 

동생 테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고흐는 발작과 불안 등 정신병 증세를 몇차례 겪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러한 증세가 호전되는 때에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정신도 육체도 또렷했기에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그림은 정신병원의 병실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마을의 풍경이나 병원 정원의 모습을 담거나 때로 외출이 허가될 때 동네의 밀밭이나 숲 속에서 자연의 모습을 담곤 했다. 이 시기에 특히 고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대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이프러스 나무였다.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1890) 반 고흐 Source: Wikimedia Common
▲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1890) 반 고흐 Source: Wikimedia Common
ⓒ 크롤러뮐러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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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높이높이 솟아오르는 거대한 진녹색의 키 큰 상록수인 사이프러스는 일종의 고흐 자신의 투사체였던 것 같다. 마치 탑처럼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솟구치는 사이프러스는 살아움직이는 생명체, 이 세상의 것을 초월하는 염원을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느낌은 변화된 고흐의 화풍에 힘입어 더더욱 실감나는 역동성으로 표현되었다. 구불구불한 짧은 터치로 일관된 고흐의 그림 스타일은 마치 움직이는 그림처럼 어지럽게 춤을 춘다. 마치 붓터치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 꿈틀거린다. 이를 보고 고흐의 눈에 모든 대상들이 이와 같이 보였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진단이다. 고흐는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오히려 고흐의 이러한 그림 스타일은 자신의 마음의 동요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휘몰아치고 솟아오르는,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더이상 억누를 수 없는, 너무도 커져 버린 자신의 열망을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 즉,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데 그것이 더 이상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더 자라났던 것이다.

자신의 정신도, 육체도 더 이상 예전같지 않은데다, 자신을 경제적으로 지탱해주던 유일한 지원자였던 동생 테오의 결혼 또한 그림을 그리는 데에만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즉, 모든 것이 불안한 미래를 의미했고 고흐는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갔다. 
 
"오늘 너에게 내 자화상을 보내겠다. 너는 이를 한동안 잘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내 얼굴 표정이 훨씬 더 평온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비록 내 눈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불안해 보이지만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자화상(1889) 반 고흐 Source: Wikimedia Commons
▲ 자화상(1889) 반 고흐 Source: Wikimedia Commons
ⓒ 오르셰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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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마지막 자화상은 1889년 그려졌다. 이 그림 속에서 고흐의 부릅뜬 눈동자는 그밖의 모든 것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와중에 힘겨워 보인다. 고흐의 말처럼 한참을 들여다 보아도 평온함 보다는 그의 슬픔과 외로움이 보이는 것 같다.

억지로 이를 꾹꾹 누르며 괜찮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는 듯한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진다. 결국 자신도 어쩌지 못한 그 슬픔과 외로움을 그림으로 남기고 고흐는 떠났다. 그럼에도, 언젠가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며 그 가치를 알아줄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내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 내 그림이 물감의 값어치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볼 날이 올 것이다."

태그:#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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