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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지식인, 혹은 스타들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속에서 진짜 이 사회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살려내고자 합니다. 노동자 개인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어릴 적 꿈과 직장을 구하는 과정, 일터에서의 보람, 힘든 점,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진솔한 삶을 기록합니다.[기자말]
기간제 교사로 10년 정도 근무하면서 박혜성씨는 점점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똑같이 일하는데 정규직 교사들이 받는 성과급을 아예 받지 못했고, 방학기간을 제외한 쪼개기 계약으로  방학 중 보충수업이나 행정실무를 하더라도 급여를 받지 못했다.교직 경력 3년이면 받을 수 있는 1정 연수도 경력이 10년이 되어도 받지 못했다.아프거나 다쳐도 정규교사에게 보장된 질병휴직이나 병가도 못 냈다. 다른 교사들이 기피하는 힘든 행정 업무를 덤터기 씌우는 일도 많았다.
▲ 전국 기간제 교사 노동조합 위원장 박혜성씨 기간제 교사로 10년 정도 근무하면서 박혜성씨는 점점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똑같이 일하는데 정규직 교사들이 받는 성과급을 아예 받지 못했고, 방학기간을 제외한 쪼개기 계약으로 방학 중 보충수업이나 행정실무를 하더라도 급여를 받지 못했다.교직 경력 3년이면 받을 수 있는 1정 연수도 경력이 10년이 되어도 받지 못했다.아프거나 다쳐도 정규교사에게 보장된 질병휴직이나 병가도 못 냈다. 다른 교사들이 기피하는 힘든 행정 업무를 덤터기 씌우는 일도 많았다.
ⓒ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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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 위원장 박혜성씨. 그는 학창시절 노동이나 노동조합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다. 윤리 시간에 '노동에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있는데, 육체노동은 못 배운 사람이 하고 정신노동은 대학 나온 사람이 하는 것'이란 얘기를 들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도 노동에 대해서는 왜곡된 교육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 그가 노동조합 위원장이 된 것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품게 된 의문 때문이었다. 정규직과 하는 일은 똑같았는데 기간제란 이유로 받는 차별이 너무 많았고, 그 이유가 궁금했다. 세상일에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공부이니, 교사인 그가 자기가 처한 현실 속 모순을 직시하고 의문을 품은 것은 당연했다.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 차별, 쪼개기 계약
  
박혜성씨의 꿈은 어릴 때부터 교사였지만, 고3 때 담임선생님은 입시 점수에 맞춰 사범대가 아닌 일반대학에 갈 것을 권했다. 그렇게 일반대학에 갔고, 졸업 후 입사한 회사의 일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슴 한 쪽에 남아 있는 교사의 꿈을 접을 수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교육대학원에 들어갔고 졸업과 함께, 잠자고 먹는 시간을 빼고 책상 앞을 떠나지 않았을 정도로 열심히 임용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방황하던 그에게, 교사였던 친척 언니가 '기간제 교사' 제도를 알려줬다. 굳이 임용시험을 안 봐도 정규교사와 똑같이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학생을 가르치고 사랑으로 이끄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그는, 망설임 없이 기간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도록 호봉이나 근무조건엔 관심이 없었다. 수업 준비를 하고, 학생들을 만나는 일만으로도 벅차고 행복했다. 평소에 관심 없던 분야도 외부 강연까지 등록해 가면서 열과 성을 다해 실력을 쌓았다.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학생 생활지도를 하거나 행정 업무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2008년 동료교사 몇몇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성과급이 화제가 되었다. 박혜성씨는 정규직이 아니었기에 성과급 지급 대상이 아니었다. 그때 한 동료가 그에게 "기간제 교사가 뭘 그렇게 열심히 해요? 나는 박 선생님이 기간제 교사인 줄 몰랐네"라고 말했다.
  
2001년에 도입된 성과급 제도는 교사 월급의 일정 부분을 성과에 의해 차등지급하는 것이었는데, 모든 정규직 교사가 받는 성과급에서 기간제 교사는 제외되었다. 교육의 '성과'를 무엇으로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도 문제였지만, 같은 일을 했음에도 단지 기간제란 이유로 교육 '성과'가 전혀 없다고 해석되는 것은 더 큰 모순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성과급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방학기간에 학교에 나와 보충수업을 했는데도, 방학은 계약기간에 해당이 되지 않아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고 하거나, 심지어 이미 지급된 급여를 환불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던 일도 떠올랐다.

정규직은 교직 경력 3년이 되면 1정연수를 받고 1급 정교사가 될 수 있는데, 기간제 교사는 3년이 아니라 10년을 일해도 1정연수를 받을 수 없었다. 아프거나 다쳐도 정규교사에게 보장된 질병휴직이나 병가도 못 냈다. 다른 교사들이 기피하는 힘든 행정 업무를 덤터기 씌우는 일도 많았다.

2011년에는 기간제 교사에게 성과급을 주지 않는 것이 부당하다며 기간제 교사 4명이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은 그동안 지급하지 않은 성과급에 대한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이듬해엔 1심 판결이 났는데, 선생님들이 승소했다. 그때 재판을 주도했던 선생님들이 박혜성씨가 교육잡지에 쓴 글을 보고 함께 일하자며 연락을 해왔다. 그들은 인터넷에 '기간제교사 협의회'라는 카페를 만들고 교류하고 있었는데, 박씨는 이 활동을 통해 많은 다른 기간제 교사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겪은 것보다 훨씬 더 부당한 사례들을 많이 접했다. 

성과급 2심 소송에는 2천 명이 넘는 기간제 교사들이 참여했다. 정부는 2심 결과가 나오기도 전인 2013년 1월 기간제 교사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죽어서도 차별받는 기간제 교사
  
2015년 9월 9일 오전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을 촉구하며 단원고 고 김초원, 고 이지혜 교사 아버지와 조계종 노동위원장 혜용 스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부터 정부서울청사까지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2015년 9월 9일 오전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을 촉구하며 단원고 고 김초원, 고 이지혜 교사 아버지와 조계종 노동위원장 혜용 스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부터 정부서울청사까지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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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14년, 온 나라를 충격과 비탄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이때 학생들과 함께 9명의 교사가 희생됐다. 그런데 그 아홉 명 중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은 죽은 뒤에도 순직 인정을 받지 못했다. 당시 두 교사는 상대적으로 탈출이 쉬운 5층에 머물렀으나, 학생들이 있는 4층으로 내려가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구조활동을 하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단원고에서 교과 수업과 담임을 맡고, 방과 후 수업, 생활기록부 업무를 담당하는 등 정규 교사와 똑같은 일을 했던 두 교사는 단지 '기간제'라는 이유로 죽어서도 차별을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전교조의 지원을 받으며 기간제 교사 연합회가 만들어졌다. 박혜성씨는 이 단체에서 순직 인정을 위한 싸움과 기간제 교사 차별 철폐운동을 함께 했다. 그리고 두 교사가 참사로 숨진 지 3년이 지난 2017년에서야 정부는 두 교사의 '순직'을 인정했다.

2018년에는 마침내 '전국 기간제 교사 노동조합'이 탄생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라는 정부의 약속에서 제일 먼저 기간제 교사가 제외되면서 기간제 교사들의 절망과 분노는 컸다. 전교조는 기간제교사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에는 반대했다. 기간제 교사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폐지를 위해서 자신들의 '노동조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이, 학부모가, 동료교사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내가 겪은 일들은 선생님으로서 옳게 받아야 할 대우가 아니었어요. 방학을 제외한 쪼개기 계약으로 방학 동안 급여 없이 살아야 하고, 1년마다 맺는 계약으로 삶의 기준이 딱 1년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없었습니다. 남성 기간제 교사들은 비정규직이라서 결혼도 어렵다고 했어요. 학생들과의 관계도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죠. 똑같이 일하고 임금 차별을 받는 것도 깊은 상처를 남겼어요. 기간제 교사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것과 똑같은 비인간적인 경험을 합니다."
 

임용시험은 정당하고 공정한가
     
임용시험은 일정한 자격을 얻기 위한 통과의례라기보다는 극심한 경쟁을 통한 변별 과정으로 변한 지 오래다. 시험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때, 시험 준비과정은 능력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소진시킨다.
 임용시험은 일정한 자격을 얻기 위한 통과의례라기보다는 극심한 경쟁을 통한 변별 과정으로 변한 지 오래다. 시험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때, 시험 준비과정은 능력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소진시킨다.
ⓒ tvN "블랙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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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교사는 능력을 검증하기 어려우니 시험을 봐서 뽑지만, 기간제 교사는 이미 정규 교사와 똑같은 교육 활동을 몇 년씩 해온 경력이 있다. 국가가 인정한 자격증을 받고, 정규교사와 같은 일을 해온 기간제 교사들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될 만큼 임용시험은 의미 있는 시험인가?

교사의 꿈을 안고 임용시험을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 시험의 문제점에 공감한다. 이 시험은 일정한 자격을 얻기 위한 통과의례라기보다는 극심한 경쟁을 통한 변별 과정으로 변한 지 오래다. 시험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때, 시험 준비과정은 능력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소진시킨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해주는 얘기가 있다. '교육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상에 깊이 파고들거나, 교육사를 공부하며 그 면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면 떨어진다'는 것이다. 공부해야 할 분량도 방대하지만 그냥 눈 딱 감고 외워야지, 생각하고 고민하면 경쟁에서 탈락한다는 얘기다.

이 시험은 교사의 자질 가운데 지필고사를 통한 암기력 같은 지적 능력만 평가할 뿐이다. 수업 전달력, 학생 상담 능력, 학급 조직력 등 다른 많은 능력은 검증하지 못한다. 과도한 경쟁 때문에 '눈에 보이는 공정성'을 추구한 결과 교사로서 정말 중요한 자질은 간과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공정성을 추구했다지만 임용 시험은 공정하지도 않다. 2010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예비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교육 없이는 임용시험에 합격할 수 없다'는 문항에 사범대생의 75.3%, 교대생의 86.4%가 '그렇다'고 답했다. 몇 년씩 고가의 학원에 다니며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설문을 한 지 10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은 임용시험 준비를 위한 고가의 학원은 더 늘어났고, 더 많은 수험 준비생들이 몰리고 있다. 결국 개인의 환경과 경제 여건이 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명감 아닌 고용 안정 위해 교직 택하는 현실 바꿔야
  
2019년 5월 1일 세계 노동절에 맞춰  발행된 박혜성씨가 쓴 < 우리도 교사입니다 >. 이 책은 기간제교사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세상에서 ‘투명인간’이어야만 했던 선생님들이 더는 '투명인간'이기를 거부하는 내용을 담았다.
▲ 박혜성씨가 기간제 교사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쓴 책 2019년 5월 1일 세계 노동절에 맞춰 발행된 박혜성씨가 쓴 < 우리도 교사입니다 >. 이 책은 기간제교사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세상에서 ‘투명인간’이어야만 했던 선생님들이 더는 "투명인간"이기를 거부하는 내용을 담았다.
ⓒ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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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비해 임용시험 경쟁률이 높아진 것이 교사가 되어 학생들의 성장을 돕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공무원이나 교직으로 많은 이들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자리들이 다 좋은 일자리가 되고, '비정규직'이 없어진다면, 임용시험 경쟁률이 이렇게 높을 이유가 없겠죠. 그때는 '안정된 직장', '꿀 빠는 직업' 같은 이유가 아니라 정말 학생들을 성심을 다해 지도하고 싶은 사람들, 적성에 맞고 원해서 교직을 선택한 사람들만 지원할 테니까요."

처음 기간제 교사 제도가 도입될 무렵인 1998년에는 전체 교사 중 기간제 비율이 1.8%에 불과했으나 2018년에는 15.3%로 늘었다. 사실은 기간제 교사를 늘리면서 정규직을 줄여왔던 것이다. 현재 학교는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 공공부문 중 가장 높다.
  
교사의 휴직 등으로 한시적 고용이 필요하다 해도 임용 인원을 늘려서 정규직 교사를 더 많이 뽑고 그 안에서 고용하면 된다. 세계 최저 출산율로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학급당 학생 수가 OECD 평균보다 많다. 학교는 늘 일손이 부족하다. 비정규직을 늘리거나 학생 수가 준다는 핑계로 고용을 줄여나가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2017년 노조 설립을 준비하며 교단을 떠나 노조위원장으로 상근하고 있는 박혜성씨는 학생들이 그립다고 했다.

"작년 이맘때는 야외 학습 나온 학생들이 인솔교사를 부르는 소리에 길 가다가 제가 돌아보곤 했어요. 저를 부르는 줄 착각했던 거죠."

그러나 그는 학교 밖에서도 교사로서 마땅한 일을 하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인권이 침해 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미래의 노동자'인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기에 그렇다.

우리도 교사입니다 - 차별과 불안에 맞서 날개를 편 기간제교사의 이야기

박혜성 (지은이), 이데아(2019)


태그:#기간제교사, #비정규직,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 #노동조합, #박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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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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