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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국에서 이십여 년을 보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진 모르나, 요 몇 달 한국에서 부모님댁과 처가를 오가며 '코로나 난민'으로 살고 있다. 

결혼 직후부터 해외로 나와 이십여 년을 살면서 일 년에 한 번, 구정 때 잠시 한국을 오가며 대홍수, 사스(SARS), 북경올림픽, AIDS 파동, 광견병 파동, 사드(THAAD) 갈등 등 별의별 일들을 다 겪어봤지만, 돌아갈 길이 아예 막혀버린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그 어느 때보다 황당하고 속상하다.

우리 가정은 코로나19를 피해 한국에 온 것도 아니다. 해마다 그래왔듯이 구정 즈음, 양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보기 위해 들뜬 마음에 열흘가량 일정으로 왔다. 그래서 속옷과 내복 한 벌, 양말 두세 개, 두꺼운 겨울 남방 한두 개가 여분 옷의 전부다. 그러고 보니 정말 난민스럽다.

설 보내러 고향 왔는데...
 
신종 코로나 예방 안내문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우려되고 있는 2020년 2월 2일 오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이용객들을 위한 예방법이 안내되고 있다.
▲ 신종 코로나 예방 안내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우려되고 있는 2020년 2월 2일 오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이용객들을 위한 예방법이 안내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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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 나온 분들과 연락을 하다보면 애들 옷부터 모든 걸 다 새로 장만해야 할 판이라고 울상이다. 다행히 우리는 서로의 집열쇠를 맡겨놓고 지내는 이웃 가정이 있어서 그분들을 통해 급한 대로 최소한의 옷가지들을 국제우편으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에서 학교에 다니던 두 아이들이다. 고등학생인 첫째 아이는 3월초부터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는데, AP 시험준비부터 교과 과정의 책들이며 사전이며 다 중국 기숙사에 있어서 받을 방법이 없다. PDF 등으로 공부하며 버티다가 결국 원서들을 다시 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이는 온라인 수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학 날짜도 알 수 없어서 아내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처가 근처에 있는 한국 초등학교로 옮겼다. 아내와 둘째 아이만 처가로 전입신고를 했으니 주민등본상으론 졸지에 이산가족까지 돼 버렸다. 난민도 서러운데 이산가족이라니.

이게 끝이 아니다. 코로나때문에 생각치 않은 공동생활을 하게 되다보니 양가 부모님도 말씀은 안 하시지만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무엇보다 시댁에선 며느리 입장으로, 처가에선 새끼들에 남편까지 모두 끌고 온 딸의 입장으로 아내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요새 하루종일 아이들과 부모님을 돌보며 부업까지 하고 있는 아내를 볼 때면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진정 사실임을 느낀다. 게다가 아내는 지인들에게 작별인사 한번 제대로 못하고 이십여 년 중국생활을 정리하게 된 터라, 아내에게 미안하고 씁쓸한 마음이 크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굳이 코로나 난민 생활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간 오랫동안 떨어져 있음으로 제대로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건강 상태와 일상 생활도 알게 되었고, 부모님과 취미 생활을 같이 하고, 산책도 매일 하는 등 함께 하는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는 거다. 부모님과 24시간 딱 붙어서 함께한 석 달 정도의 시간은 거의 지난 십 년치보다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이런 시간이 또 언제 주어지랴!'라는 마음도 있지만 그것도 하루이틀, 한 주나 두 주 정도지, 한 달 두 달을 넘어가니 쉽지 않은 순간들이 불쑥불쑥 생긴다. 독립된 한 가정으로서 가족간에도 적절한 정서적 거리가 필요한 듯싶다. 하지만 난민이 무슨 자기 주장을 하겠나! 어서 돌아가야 할 텐데 하는 생각만 마음에 끄적이고 있다.

'사재기가 시작됐다'는 중국 소식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산책길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산책길
ⓒ 죠셉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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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오늘은 중국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중국 내 뉴스를 보다 보니 내가 사는 도시에서 식량 사재기가 심해졌다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아직 한국에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사재기 때문에 벌써 계란, 돼지고기, 쌀값 등이 오르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중국의 물가는 계란과 돼지고기로만 판단해도 된다 싶을 정도로 이 두 품목은 경제지표를 반영하는 민감한 척도다. 3년 전 기준으로 중국에선 하루 평균 돼지를 약 160만 마리씩 먹는다고 하니, 계란이야 셀 수조차 없다. 그만큼 농산물 시스템 규모가 거대하다.

중국은 도시 기준으로 봤을 때 근대 이후 늘 식량이 풍부했고, 때때로 특정 공산품을 제외하곤 사재기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이 땅에서 보내온 이십여 년 동안은 그랬다.

그런데! 이 큰 땅덩이가 사재기를 시작한다고? 마트와 시장 가판대에서 주요 먹거리들이 안 보이거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다고? 물론 중국 내 모든 도시가 다 이러진 않겠지만,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난민으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우리 한국인들의 자세는 일등을 넘어 일류라는 생각을 해봤다. OECD 선진국, 일류 국가의 기준이 무엇이냐를 논하는 그 어떤 주장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일상생활은 정말 놀라움 그 자체다. 외국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 된다는 말도 있지만, 한 이십년 나가서 살아보니 알게 됐다. 우리 한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 난민의 자부심이다.

그나저나 이젠 중국에 간다 해도 이전과는 너무나 다를 것 같다는 마음에 돌아갈 길이 참 멀게만 느껴진다. 그곳에 있는 삶의 모든 기반들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올 길은 너무 멀어서 솔직히 난민 생활의 끝이 잘 안 보인다.

아무쪼록 하루속히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이번 일로 가족을 잃은 분들의 마음이 회복되고, 우리 다음 세대들의 생활이 정상화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 와중에 나와 우리 가정의 난민 생활도 아름답게 정리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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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 이십오년째. 이방인과 나그네로,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의 가장으로 오늘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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