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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3월의 육송정삼거리. 1958년 10월 동아일보의 신동준 기자는 태백 탄광촌을 취재하러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났는데 당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석포를 지나니 산은 험해지며 논밭은 거의 보이질 않고 부락은 없고 여기저기 오막살이 초가집이 다닥다닥 산허리에 붙어 있는 게 몹시도 안타까웠다.” (동아일보 1958.10.26.)
 1968년 3월의 육송정삼거리. 1958년 10월 동아일보의 신동준 기자는 태백 탄광촌을 취재하러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났는데 당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석포를 지나니 산은 험해지며 논밭은 거의 보이질 않고 부락은 없고 여기저기 오막살이 초가집이 다닥다닥 산허리에 붙어 있는 게 몹시도 안타까웠다.” (동아일보 1958.10.26.)
ⓒ 국토지리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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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은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황지천과 태백 통동에서 발원한 철암천이 구문소삼거리에서 만나면서 시작된다. 구문소(求門沼)에서 석회암 산을 뚫어 석문(石門)을 만들고 깊은 소를 이룬 낙동강은 남쪽으로 4km를 흘러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넘고는 곧바로 육송정삼거리에서 송정리천과 합류한다.  

영남의 낙동강이 시작되는 곳은 석포의 육송정삼거리이다. 육송정(六松亭)은 오래전에 아름드리 소나무 여섯 그루가 정자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예전 이곳에서는 여섯 그루 금강소나무가 낙동강을 맞이했고 강물은 육송정의 멋들어진 자태를 새기고 흘렀다.

육송정삼거리 서쪽 태백산과 청옥산 자락에서 발원한 옥처럼 맑은 물은 열목어 서식지인 백천계곡을 낳았다. 백천은 잣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라 하여 '잣나무 백(栢)'자를 써서 붙은 이름이다. 천연기념물이 된 옥계수는 송정리천을 이루어 동쪽으로 흐른다. 여름에도 물이 시원해 열목어의 놀이터였던 송정리천은 연화광산 앞을 지나 육송정삼거리까지 이른다. (연화광산은 영풍광업이 1961~1993년에 운영한 납·아연 광산이다).

육송정삼거리에서 송정리천을 합류한 낙동강은 남동쪽으로 4km를 흘러 석포마을 입구에 다다르고 동쪽 산에서 흘러드는 석개천과 석포리천(반야천)을 합류한다. 석포 상수도의 취수원이 있는 반야계곡의 물은 거울처럼 맑다. 소반 같이 생긴 고랭지 들판 반야에는 두릅 같은 부드럽고 탐스러운 산나물이 자생한다.

석포마을 앞을 지난 낙동강은 크게 두 번 휘돌고 다시 크고 작은 물굽이를 자아내며 승부리를 가로지른다. 태백에서 철암천과 낙동강을 따라 온 영동선 철로도 석포역 - 승부역을 지나고 소천면에 접어들어 양원역 – 비동역 – 분천역 – 현동역에 이르기까지 낙동강과 함께 달린다.  

아름다운 협곡 사이로 빚어진 감입곡류(嵌入曲流)를 따라 강줄기와 철로가 번갈아 엇갈리며 달리는 모습은 절경을 이룬다. 승부역-양원역-비동역 구간을 제외하고는 도로와 철로가 강과 함께 세 개의 곡선을 그리는 보기 드문 풍경을 연출한다. 승부역을 지나면 도로도 끊어지고 양원역에 이르기까지 자연 그대로의 비경(秘境)이 감추어져 있다.

석포는 산업화에 따라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다
  
육송정삼거리에서 현동역까지 낙동강 협곡을 따라 철로가 함께 달린다.
 육송정삼거리에서 현동역까지 낙동강 협곡을 따라 철로가 함께 달린다.
ⓒ 다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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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강을 따라 열차가 달리는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가 되지만 수채화 속에는 담지 못한 아픔이 있다. 협곡의 낙동강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변함이 없지만 강물은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태백은 석탄광산 개발 거점도시로 급변했다. 2~3년 만에 하나뿐이던 탄광이 60여 개로 늘어나고 인구도 1만5천 명에서 13만 명으로 늘어났다. 1961년 영풍이 연화광산을 개발하여 아연과 납을 채굴하기 시작했고 1970년 석포마을에 영풍 석포제련소가 들어섰다.

산업화의 속도만큼 석포의 낙동강은 빠르게 오염되었다. 태백 탄광에서 흘러나온 석탄 폐수는 황지천과 철암천을 검게 물들이고 낙동강으로 스며들었다. 연화광산에서 나온 폐수와 광미(광물찌꺼기)는 송정리천 열목어를 절멸시켰다. 석포제련소의 중금속 분진과 폐수도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다. 물속에 사는 수많은 저서생물과 어류가 희생되었고 석포의 낙동강, 봉화의 낙동강은 죽은 강이 되었다.

1991년 3월 낙동강 페놀사태가 일어난 직후 동아일보 취재진은 낙동강 상류의 오염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승부리 바로 아래에 있는 소천면 분천리를 찾았고 그곳의 낙동강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강물이 아니라 석탄을 풀어놓은 물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였다. 마을에서 만난 이기호씨(61. 분천리 935)는 "20년 전부터 탄광폐수 때문에 물이 시커멓고, 물에 살던 은어와 쏘가리, 꺽지도 자취를 감췄다"면서 "농사지을 때도 강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동네 권상화군(14. 소천중 2년)은 "가끔 메기나 붕어 종류가 잡히지만 등이 굽은 기형도 있어 먹지 않는다"면서 "우리 집에선 계곡물을 정수해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 동네 주민들이 석탄폐수보다도 상류지역의 아연제련소에서 배출되는 중금속 폐수가 더 큰 오염원이라며 그곳으로 가보라고 일러주어 (중략) 석포에서 만난 주민들은 "벌써 20년 이상 제련소가 가동 중이지만 폐수가 모두 하류로 방류되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선 수질오염 피해는 잘 모르겠다"면서 "그러나 강물을 데워 목욕하면 피부가 발진하기도 해 목욕은 이곳에서 안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1991.3.29.)
  
석포 인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예전의 강이 '물 반, 고기 반'이었다고 하며 강에서 물놀이하던 어린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봉화군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예전 승부리 결둔마을 앞 낙동강에는 열목어, 매기, 가물치 등 각종 민물고기 종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결둔은 석포제련소 3공장 정문에서 3.5km 아래에 있다. 오염되기 전 석포의 낙동강은 그만큼 깨끗했다.

1980년대 들어 주요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와 가스로 바뀌면서 석탄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986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었고 태백의 탄광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연화광산도 아연광석이 고갈되고 채산성이 나빠지면서 1993년 휴광에 들어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석포의 낙동강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석탄 폐수와 중금속 오염물질이 크게 줄어들면서 강이 맑아졌다. 승부리 낙동강에서 낚시하고 육송정삼거리 근처에서 대물 열목어를 낚았다 놓아주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송정리천에서는 열목어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석포의 낙동강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각종 민물고기가 살고, 물 반 고기 반을 이루던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석포제련소 아래의 강은 여전히 중금속으로 앓고 있다.

주민들이 밝혀낸 석포제련소의 낙동강 오염 실태
  
천연기념물 제74호 봉화 대현리 열목어 서식지. 열목어는 냉수성 어종으로 물이 맑고 수온이 낮은 강의 상류지역에 산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8년 ‘정암사 열목어’(정선)와 ‘소천면 열목어’(봉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해방 후 1962년에는 ‘정선 정암사 열목어 서식지’와 ‘봉화 대현리 열목어 서식지’가 천연기념물 제73호와 제74호로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 제74호 봉화 대현리 열목어 서식지. 열목어는 냉수성 어종으로 물이 맑고 수온이 낮은 강의 상류지역에 산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8년 ‘정암사 열목어’(정선)와 ‘소천면 열목어’(봉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해방 후 1962년에는 ‘정선 정암사 열목어 서식지’와 ‘봉화 대현리 열목어 서식지’가 천연기념물 제73호와 제74호로 지정되었다.
ⓒ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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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법규가 미비하고 행정력이 미치지 않던 시절에 가동을 시작한 석포제련소는 많은 오염을 일으켰을 것이다.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석포제련소의 낙동강 오염 실태는 지난 몇 년간 봉화 주민과 환경단체의 노력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2018년 2월 석포 주민이 발견한 폐수 배출사고이다. 폐수처리공정에서 반송펌프 고장으로 기준치를 초과한 불소(10배)와 셀레늄(2배)이 포함된 폐수 70여t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다. 불소처리 공정의 배관 청소 과정에서 폐수 0.5t도 공장 내 토양에 유출되었다. 이 사고로 석포제련소는 20일의 조업정지처분을 받았으나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2019년 8월에 조업정지가 타당하다는 1심 판결이 내려졌다. 현재 2심 소송이 진행 중이다.

2019년에도 정부기관의 조사를 통해 낙동강 오염이 드러났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3월 사이에 환경부의 수질측정망을 통해 석포제련소 하류 5km와 10km 두 지점에서 카드뮴이 하천 기준을 반복적으로 초과한 것이 확인되었다. 원인을 밝히기 위해 대구지방환경청이 2019년 4월 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정밀조사를 했는데 석포제련소 1공장 인근 하천에서 카드뮴이 하천 수질 기준보다 높게 나타났다.

4월 중순 환경부와 대구지방환경청 등이 석포제련소 특별 지도점검을 했다. 제련소 내부에서 52곳의 무허가 지하수 관정이 적발되었고 33곳의 지하수 수질을 분석한 결과 카드뮴이 공업용수 기준을 14배~3만 7650배나 초과했다. 일부 지하수에서는 수은, 납, 크롬 등도 공업용수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관협의체인 낙동강상류환경관리협의회가 2019년 11월에 발표한 보도자료에서도 카드뮴 오염이 확인되었다. 2공장 내부 지하수에서 카드뮴이 지하수 공업용수 기준을 6배~110배 초과했고, 1공장 외부 지하수에서도 카드뮴이 지하수 공업용수 기준을 197배~1,600배나 초과했다. 1, 2공장 둘 다 지하수를 통해 공장 내부에서 외부로 카드뮴이 누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대구지방환경청은 2019년 5월 석포제련소에 지하수 오염방지 조치명령을 내렸고 정화계획 이행 여부와 추진사항을 매월 점검 중이라고 한다. 정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되지는 않는다. 제대로 된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진행과정을 공개하고 보다 많은 주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제련소 내의 지하수 관정이 어떤 원인으로 중금속에 오염되었고 중금속 지하수가 어디로 얼마나 흘러갔는지에 대해서도 엄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석포리천이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송정리천 열목어. 2~3년생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연화광산 광미댐을 확인하고 내려오는 길에 이점교 아래에서 만났다. 산란기(4월~5월초)에 알 놓을 자리를 찾고 있었던 걸까?
 송정리천 열목어. 2~3년생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연화광산 광미댐을 확인하고 내려오는 길에 이점교 아래에서 만났다. 산란기(4월~5월초)에 알 놓을 자리를 찾고 있었던 걸까?
ⓒ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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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포의 강물은 석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영남 내륙을 흐르면서 영남인의 식수, 생활용수,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낙동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은 자연법칙에 따른 수백 가지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낙동강은 전체로서 하나다.

석포주민과 봉화군민이 낙동강을 취수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류로 갈수록 중금속이 희석된다고 해서 괜찮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천바닥에 가라앉고 하천변에 퇴적된 중금속, 안동호 바닥에 겹겹이 쌓인 중금속은 모두 생태계 파괴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석포는 영남의 낙동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석포의 산에서 시작된 깨끗한 물이 송정리천, 석개천, 석포리천을 이루어 낙동강에 합류된다. 사람의 심장이 산소가 풍부한 혈액을 온몸으로 보내듯이 석포는 영남의 낙동강에 깨끗한 원수를 공급한다. 석포는 낙동강의 심장이다. 석포의 낙동강을 살리지 않고는 영남의 젖줄 낙동강을 살릴 수 없다.

석포의 낙동강은 오랫동안 물고기와 사람이 함께 물놀이하던 곳이었으며, 영남의 낙동강에서 유일하게 열목어가 헤엄쳤던 곳이다. 석포의 낙동강에서 열목어 떼가 물살을 거슬러 오르고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백천계곡 송정리천과 반야계곡 석포리천의 맑은 물이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고 남해까지 500km의 여정을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획-영풍과 환경오염]
①산 좋고 물 맑은 석포... 주인공 자리 빼앗은 이들 http://omn.kr/1n29j

덧붙이는 글 | ※ 다음 연재 글은 ‘③ 물돌이 옥토를 차지한 영풍 석포제련소’입니다.


태그:#영풍 석포제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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