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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10월 19일, 유엔총회 전체 회의에서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노태우 대통령이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여는 길'이라는 주제의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은 1988년 10월 19일, 유엔총회 전체 회의에서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여는 길"이라는 주제의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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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정진 이상현 기자 = 노태우 정부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하기 위해 거액의 차관을 건넨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외교부는 31일 이런 내용 등이 포함된 30년 경과 외교문서 1577권(24만여 쪽)을 원문해제(주요 내용 요약본)와 함께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동유럽 국가와 국교 수립 관련 사항,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의 방한 관련 사항 등 노태우 정부 초기의 주요 이슈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노태우 정부는 88서울올림픽 개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동유럽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였고, 경제난에 봉착한 동유럽 국가들도 한국과 경제협력을 위해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차관 제공이 수교의 중요한 조건이었다는 점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한국과 헝가리가 1988년 8월 12일 서명한 '합의 의사록'에 따르면, 6항에 '양측은 상주대표부가 설치된 후에 양국 간 외교관계 수립에 의한 쌍무관계 정상화를 위한 교섭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돼 있다.

그러면서 7항에 '양측은 대한민국이 8항 (a)호 (ⅴ)에 규정된 경제협력계획의 약속을 50% 이행했을 때에 6항에 언급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데 합의했다'고 적시돼있다.

8항은 경협에 대한 사항으로, (a)호에는 '한국 정부는 헝가리 측에게 미화 6억5천만 달러에 달하는 아래의 경제협력을 제공한다'고 적혀있고 다섯 가지 지원 방안 중 맨 마지막인 (ⅴ)는 '2억5천만 달러 규모의 은행차관'이다.

즉, '한국이 헝가리와의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6억5천만 달러의 경협자금을 제공하고, 특히 약속한 은행차관의 절반인 1억2천500만 달러를 헝가리에 제공한 뒤에야 수교한다'는 내용이 명문화된 것이다.

이 '합의 의사록'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한국은 실제 1988년 12월 14일 1억2500만 달러 규모의 은행 차관 계약을 체결했고, 양국은 이듬해 2월 1일 수교했다.

정부는 협상 전 작성한 보고서에서 헝가리의 경협 제공 요구에 응하면 '다른 국가와의 수교 및 경협 확대 시 동종 요구 가능성'이라고 우려했는데, 실제 한국은 그해 11월 폴란드와 수교하면서도 4억5천만 달러의 경협을 제공해야 했다.

노태우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일왕(天皇·덴노)을 초청하는 방안을 둘러싸고 양측이 적극적으로 검토한 과정도 공개됐다.

정부는 1989년 6월 노태우 대통령의 이듬해 일본 방문을 준비하면서, 방일 이후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의 방한을 고려할 것을 외교 과제로 제시했다.

일본에서도 일왕의 한국 방문 가능성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같은 해 4월 최호중 외무장관과 회담한 우노 소스케 외무상은 "한국 측 분위기가 성숙했다고 판단되면 일본 정부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아키히토 일왕의) 최초의 해외 방문으로서 방한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일왕의 방한은 이후 한국에서 과거사 청산 요구에 수반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일본은 보수 우경화 흐름이 강해지면서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이 밖에 노태우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가입 여부를 놓고 노동운동 격화 우려에 따라 갈팡질팡했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문서도 이번에 공개됐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다만,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임시 휴관 중이다.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 및 도서관 등에 배포되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총 27차례에 걸쳐 2만8천여권(약 391만 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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