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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걸린 일장기 경술국치날 경복궁에 걸린 일장기
▲ 경복궁에 걸린 일장기 경술국치날 경복궁에 걸린 일장기
ⓒ 추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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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34살 때에 국치의 해 경술년(1910)을 맞았다. 불운한 세대의 비극적인 운명이었다. 평화시대였다면 학자로서 연구와 강의를 하면서 가족과 함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연세가 아닌가. 그 사이 두 딸이 태어나 가족이 여섯으로 늘었다.

1909년부터 국문연구소가 거의 활동이 정지되었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숨통을 조이면서 정부의 국문연구 기관을 내버려둘 리 없었다. 주시경과 이에 참여했던 연구가들의 상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주시경은 마음을 다잡고 국문연구와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을 열심히 하였다.
  
국어문법 주시경 선생의 육필원고본 <국어문법>, 오른쪽에 "주시경 서"라는 글씨가 보인다.
▲ 국어문법 주시경 선생의 육필원고본 <국어문법>, 오른쪽에 "주시경 서"라는 글씨가 보인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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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이 해 4월 15일 『국어 문법』을 간행, 그간의 연구 성과를 책으로 묶었다.

이 초고는 상동청년학원 안의 국어강습소 등의 강의안으로 활용하면서 끊임없이 수정되어 갔을 것으로 믿어진다. 그 내용은 음학ㆍ분자학ㆍ격분학ㆍ도해학ㆍ변체학ㆍ실용연습의 6과로 나누어 가르쳤다는 1907년 제1회 하기국어강습이 암시하여 줄 뿐이다.

다만 그 중 음학은 1908년 제2회 하기강습의 강의안이 국판 2+62면의 『국어문전음학』이란 저서로 먼저 간행되었다. 이 초고는 계속해서 검토되고 수정되어 1910년에 간행될 때에는 우리 말로 거의 고쳐지게 되었다. (주석 3)


주시경은 국치를 눈 앞에 두고 조국의 글을 지키고자 하는 충심에서 『국어 문법』을 간행하여 많은 관심을 모았다. 『국어 문법』 서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김민수 교수가 현대문으로 고친 것이다.

하늘의 섭리에 따라 그 지역에 그 인종이 살기에 마땅하여, 그 인종이 그 언어를 말하기 적당하여 천연의 사회로 국가를 이루어 독립이 각기 정해졌으니, 그 지역은 독립의 터요, 그 인종은 독립의 몸이요, 그 언어는 독립의 마음(뜻)이라.

이 마음이 없으면 몸이 있어도 그 몸이 아니요, 터가 있어도 터가 아니니, 그 국가의 성쇄도 언어의 성쇄에 있고, 국가의 존부도 언어의 존부에 있는 것이니, 그 국가의 존부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금의 세계 열국이 각각 제 언어를 존숭하여, 그 언어를 기록하여 그 문자를 각각 자음이 다 이를 위한 것이다. (주석 4)

 
주시경 선생 주시경 선생
▲ 주시경 선생 주시경 선생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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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1910년 6월 사동에 자리잡은 사립(사범) 강습소, 7월 황해도 재령의 나우리 강습소, 9월 배제학당의 강사로서 여러 곳을 다니며 우리 말과 우리 글을 가르쳤다. 그는 쉴 틈이 없었고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8월 29일 조선 천지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막상 날라든 날벼락과 폭풍우를 감내하기 어려웠다.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과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한국통치권을 일왕에게 양도한다는 문서에 서명했으나, 왕실에서 순종 즉위 4주년 행사를 치룬 뒤에 발표해달라고 해서 29일에 망국조약이 공표되었다.

임금이란 자와 그를 받드는 무리들은 국권을 빼앗기는 조약을 체결하고도, '즉위 잔치날' 행사를 위해 발표를 며칠 유예시켜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런 수준의 임금과 조종 신료들이 국가경영을 맡은 것은 민족의 비극이었다. '경술 7적'의 죄와 함께 고종ㆍ순종의 죄는 역사 백대(百代)를 두고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주시경의 제자 중 하나인 한글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이윤재는 1922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에 「국치가」를 실었다. 국치를 당한 주시경의 심경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5절까지인데, 여기서는 3절까지만 소개한다.

국치가

1. 빛나고 영광스런 반만년 역사
   문명을 자랑하던 선진국으로
   슬프다 천만몽외(千萬夢外) 오늘 이 지경
   아-이 부끄럼을 못내 참으리

2. 신정한 한배 자손 2천만 동포
  하늘이 빼아내신 민족이더니
   원수의 칼날 밑에 어육(魚肉)됨이어
   아~이 부끄럼을 못내 참으리

3. 화려한 금수강산 삼천리 땅은
   선열의 피와 땀이 적신 흙덩이
   원수의 말발굽에 밟힌단말가
  아~이 부끄럼을 못내 참으리. (주석 5)


주석
3> 김민수, 앞의 책, 4~5쪽.
4> 앞의 책, 13쪽.
5> 박용규, 앞의 책, 2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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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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