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UFC 여성 스트로급 챔피언 '분쇄기' 요안나 옌드레이칙(32·폴란드)은 폴란드가 낳은 불세출의 여성 파이터다. 한창때 론다 로우지처럼 압도적 파워로 경쟁자들을 누른 것도, 크리스 '사이보그' 산토스, '라이어네스(Lioness)' 아만다 누네스처럼 탈 여성부 신체능력을 선보인 것도 아니지만 엄청난 훈련량에서 나오는 부지런한 파이팅 스타일로 여성부에 한 획을 그을 롱런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2015년 3월 '쿠키몬스터' 카를라 에스파르자를 누르고 2대 스트로급 챔피언에 오른 그녀는 2017년 11월 로즈 나마유나스에게 패하기전까지 극강의 챔피언으로 군림해왔다. 피니쉬로 경기를 마무리 짓는 스타일이 아닌 관계로 인기는 높지 않았지만, 쟁쟁한 경쟁자들을 압도해가며 체급내 독재자로 군림했다. 그래플러, 스트라이커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아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더불어 폴란드가 낳은 또 다른 여성부 스타 '폴란드 공주' 카롤리나 코발키에비츠까지 패퇴시켰다. 미모와 실력을 겸비했던 코발키에비츠 입장에서는 동시대에 자신과 같은 국적을 가지고 같은 체급에서 뛰는 옌드레이칙의 존재가 원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옌드레이칙의 경기력과 퍼포먼스는 여성부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전 UFC 여성 스트로급 챔피언 요안나 옌드레이칙

전 UFC 여성 스트로급 챔피언 요안나 옌드레이칙 ⓒ UFC

 
스탠딩 폭격, 물량공세로 상대 압도
 
현재 옌드레이칙은 '터그(Thug)' 로즈 나마유나스라는 벽에 두번이나 가로막힌 것을 비롯 가장 최근에 있었던 3월 8일 UFC 248에서는 중국의 '매그넘(Magnum)' 장 웨일리에게 마저 분패한 상태다. 웨일리 전에서의 옌드레이칙은 정말 많은 준비를 했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으나 파워에서 밀리며 눈물을 삼키고 말았다.

캐릭터가 다소 약하다는 혹평을 의식해서일까. 옌드레이칙은 과감하다 못해 지나친 도발로 보는 이들을 눈살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장 웨일리와 경기를 앞두고 함께 나온 포스터에서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방독면 마스크를 합성해서 SNS에 올리기도 했다. 중국 우한에서 발발한 코로나19를 빗대어 상대를 도발한 것이다.

이같은 옌드레이칙의 행동은 결국 독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는 잘 싸우기는 했지만 장 웨일리와의 경기에서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채 패배를 당하고 말았고 팬들 사이에서 "정의구현 당했다"는 얘기까지 들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옌드레이칙은 여전히 정상전쟁을 멈추지 않을 기세다. 늘 그랬듯 치료가 끝나고 나면 다시금 강훈련을 소화하고 혈전의 옥타곤 현장으로 복귀를 노리고 있다.

옌드레이칙은 무에타이 챔피언출신답게 수준 높은 타격을 구사하는 강력한 스트라이커다. 펀치와 킥에 엘보우까지 공격옵션이 매우 다채롭다. 킥을 차고 펀치로 치고 빠질 수 있는 자신만의 거리를 유지한 채 경기 내내 상대를 쉬지 않고 몰아붙인다. 잽과 로우킥 등을 부지런히 내면서 포인트 싸움에서 앞서가다가 빈틈이 보이면 펀치, 킥, 엘보우 등 컴비네이션을 고르게 섞어주며 상대를 유린한다.

옌드레이칙은 타격의 양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파이터다. 원거리 공격을 잘 하는 상당수 파이터들 같은 경우, 잔 타격으로 점수를 따다가 급해진 상대가 빈틈을 보이며 들어오게 되면 빅샷을 날리거나 카운터를 노린다.

옌드레이칙은 다르다. 무리해서 한방을 꽂아 넣기보다, 다시금 거리를 벌리거나 피하면서 타격 리듬을 그대로 가져간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상대는 데미지 축적은 물론 멘탈까지 깨지게 된다. 그야말로 기계같은 타격 패턴을 구사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옌드레이칙의 엄청난 체력도 한몫 한다고 할 수 있다. 경기 내내 흔들리지 않고 비슷한 타격 흐름을 가져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강해야하지만 무엇보다 엄청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집중력은 정신적인 요소이기도하지만 체력이 함께해줘야 제대로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옌드레이칙의 파이팅 스타일은 전적에서도 알 수 있다. 통산 16승 4패를 기록 중인 그녀는 넉아웃 승리가 4번(25%)에 불과하다. 무려 11번(69%)이 판정승이다. 14경기를 치른 UFC 무대서는 KO나 TKO승이 2번에 그치고 있다. 그마저도 2015년 이후에는 없다.

때문에 옌드레이칙의 경기에서는 유달리 잦은 타격 공방전이 펼쳐지는 등 이른바 하얗게 불태웠다는 느낌을 주는 승부가 많다. 경기 종료공이 울리기 전까지 끊임없이 때리고 또 때리기 때문이다.
 
나마유나스-장 웨일리, 상성 위협하는 숙적의 존재
 
이같은 롱런행진에는 옌드레이칙의 빼어난 디펜스가 뒷받침되고 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옌드레이칙을 상대하는 선수들은 자신 역시도 부지런히 타격을 내며 맞불을 놓거나 아예 스탠딩을 피하고 그라운드로 끌고 가려는 전략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옌드레이칙은 한번 잡은 흐름을 좀처럼 빼앗기지 않는다.

끊임없이 공격을 내면서도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타격을 흘려 내거나 가드로 막아내고, 반 박자 빠르게 빈틈을 공략하며 셋업동작을 사전에 끊어버리는 데 능하다.

거기에 테이크다운 디펜스도 준수하며 설사 그라운드로 끌려들어갔다 해도 수비적인 대처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상대의 전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 한 채 본인이 주도적으로 경기흐름을 끌고 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피니시 확률이 너무 떨어지는지라 챔피언 기간에도 인기는 높지 않은 편이었다.

옌드레이칙에 대한 분석이 계속되는 가운데 동 체급에서 그녀를 이길 스타일로는 힘으로 부지런함을 눌러버리거나, 타이밍 싸움에 능한 카운터잡이 등이 거론됐다. 옌드레이칙 입장에서는 불운한일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한 유형의 상대들이 차례로 튀어나왔다.

나마유나스는 거리 싸움을 통해 옌드레이칙을 두번이나 패퇴시켰다. 스피드가 대등한 상태에서 옌드레이칙의 부지런한 타격을 뚫고 거리싸움을 유리하게 이끄는 센스가 돋보였다. 옌드레이칙의 콤비네이션이 들어가는 와중에 끊어먹는 정타를 꽂아 넣는 것을 비롯 반박자 빠르게 펀치를 맞추며 이 부분의 달인인 옌드레이칙을 역으로 공략했다.

자신의 거리를 잡은 채 카운터도 곧잘 맞췄다. 타격 시도 횟수나 부지런함에서 옌드레이칙이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고배를 마신 이유다. 판정단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정타 싸움에서 나마유나스 쪽이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마유나스를 상대하는 옌드레이칙 역시 큰 공격을 내기위해 타격폼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고스란히 독이 되어 돌아왔다.

장 웨일리는 파워로 옌드레이칙의 늪을 파괴시켜 버렸다. 장 웨일리는 나마유나스 만큼의 타격 테크닉은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힘 하나만큼은 나마유나스, 옌드레이칙보다 낫다는 평가다.

장 웨일리는 이를 십분 활용했다. 옌드레이칙의 수비에 막혀 그래플링으로 큰 재미는 보지 못했지만 스탠딩에서의 데미지 싸움에서 이를 이겨냈다. 이를 악물고나온 옌드레이칙은 전체적 타격횟수나 적중율에서 장 웨일리보다 앞섰다.

문제는 타격의 묵직함이었다. 장 웨일리는 끊임없이 치고 빠지는 옌드레이칙에 맞서 꾸준히 전진스탭을 밟았다. 그러다 자신의 거리를 잡았다 싶은 순간 망설임 없이 펀치를 냈다. 장 웨일리의 타격 파워는 옌드레이칙보다 강했다. 옌드레이칙이 2~3대를 때린 것보다 장 웨일리의 한방이 더 무거웠다.

그러다보니 옌드레이칙은 자신이 더 많이 때렸음에도 데미지를 더 받고 말았다. 2대를 때려도 한대만 허용하면 손해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경기 초반부터 이마가 부어오르는 등 얼굴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됐다. 그러한 부분 역시 판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옌드레이칙은 여전히 스트로급에서 가장 위험한 선수중 하나다. 비록 나마유나스, 장 웨일리에게 패배의 쓴잔을 들이키기는 했으나 기세가 꺾이지 않고 끝까지 이빨을 드러냈다. 가장 최근 경기였던 장 웨일리와의 승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투지와 기량은 여전한지라 언제 다시 챔피언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는 평가다. 옌드레이칙의 정상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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