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문화에서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는 아직까지 마니아 장르 정도로 인식된다. 해외에서의 높은 인기와 평가와는 달리, 현실성과 공감대를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SF 장르를 표방한 영화나 드라마가 그리 흔하지 않다. 서양식 판타지물이나 중국식 무협 장르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말하면 시도가 적었기에 앞으로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블루오션이 될수도 있다.

28일 첫 방송을 앞둔 OCN 새 주말드라마 <루갈>은 국내 최초의 '사이언스 액션 히어로' 드라마를 표방했다. 바이오 생명공학 기술로 특별한 능력을 얻은 인간병기들이 모인 특수조직 '루갈'이 대한민국 최대 테러범죄 조직 아르고스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드라마 제목인 '루갈'은 한자로 눈물 루(淚), 마를 갈(渴), 눈물이 마른다는 의미다. 범죄조직에 사랑하는 아내와 두눈을 잃은 주인공이 인공눈을 달고 특수조직에 들어가며 감정을 버리고 복수에 미친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뜻한 제목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극한의 상황에 직면하여 상실의 고통을 겪고 영웅으로 각성해나가는 성장 스토리는 히어로물의 전형적인 구성이기도 하다.

최근 <이태원 클라쓰> <메모리스트> 등 웹툰 원작의 드라마들이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가운데, <루갈>도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 주인공 강기범 역에는 최진혁, 악역이자 아르고스의 보스인 황득구 역에는 박성웅이 캐스팅됐으며 조동혁, 한지완, 정혜인 등이 출연한다. 출연자 대부분이 전작에서 OCN 장르극과 인연을 맺었던 익숙한 성격파 배우들이 많다는 것은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범죄액션, 법정극, 역사추리물, 사이비 종교와 엑소시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의 장르극을 성공시켰던 OCN이지만 <루갈>은 또 새로운 도전이다. <루갈>은 한국 시장에서 가장 만들기 어렵고 성공사례도 적다는 'SF'에다가 '히어로물'이라는 두 가지 장르에 동시에 도전장을 던지는 모험을 시도했다. 더구나 오리지널 스토리도 아니고 웹툰 원작이라는 비교대상까지 있는 만큼 영상미와 표현수위에서 원작팬들이 요구하는 기대치를 만족시켜야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SF가 난이도가 높은 장르인 이유는 한국 대중들이 중시하는 '리얼리티'를 살리기가 다른 장르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치밀한 구성과 설득력있는 세계관이 뒷받침되지않으면 금새 현실성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특히 <루갈>은 액션 연출이 강조된 장르 특성상 CG(컴퓨터그래픽)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양날의 검이다. 어설픈 CG는 스토리의 전체적인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꼭 SF 장르가 아니어도 사극 <연개소문> 히어로물 <신이라 불린 사나이>처럼 중요한 장면에서 CG 하나를 잘못 썼다가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며 욕을 먹었던 드라마나 영화는 흔하다. 이런 약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웹툰이나 소설과 달리, 시각적으로 상상력을 현실에서 어떻게든 구현해야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부담이 더 크다. 자칫 조금이라도 완성도가 떨어지면 '역시 SF는 유치한 장르'라는 선입견만 강화하게 된다.

쉽지않은 도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SF장르에 대한 영상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를 비롯하여, <인랑> <써클 이어진 두 세계> <너도 인간이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라이프 온 마스>같은 작품들은 서구식 SF 장르를 한국적 설정으로 재해석하거나 다른 장르와의 실험적인 결합을 통하여 다양한 변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공통점이 있다.

SF라고 해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스케일이나 초인적인 히어로, 과장된 특수효과가 꼭 등장해야할 필요는 없다. 비록 한국형 SF물의 완성도나 인기가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SF 제작 노하우나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에서 저예산과 창작자들의 상상력만으로 이만큼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기대케 한다.

'언데드'(움직이는 시체나 유령)라는 소재만 해도 불과 몇 년전까지 한국에서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 <부산행> <창궐> 드라마 <킹덤> 시리즈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최근에는 K-좀비물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개척될만큼 평가가 달라졌다. 무협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도 <추노>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같은 작품들이 역사적 상상력에 무협적 요소를 결합한 한국식 팩션 무협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반면 SF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 시장에서 아직 확실한 대표 히트작을 배출하지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루갈>의 관건도 웹툰 원작이 가진 한 남자의 복수극과 인공 눈이라는 고유의 세계관은 유지하면서 비현실적인 SF 요소들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SF 판타지 장르가 보편화된 미드나 영드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서 가짜 같지 않고 진짜 같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지점을 얼마나 노련하게 연출해낼 수 있는가에 따라 <루갈>의 평가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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