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어제 처음으로 유진이랑 얘기했잖아. 뭐 먹고 싶고, 뭐 먹고 싶고 그런 거. 3주째 되니까 한계가 오는 거야. 돌아다니고 싶고, 서로 먹고 싶은 거 얘기하고."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을 준비하려 마당으로 나갔다가 사랑방 가까이 갔더니 안에서 나누는 간호사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기자에게 끝내 털어놓지 못한 그들의 속마음이다.

인터뷰 때 간호사들은 "확진자 병동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은 발열 도시락을 먹는데 되게 맛있다, 컵밥도 종류가 다양하고 맛이 있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김치도 제공하고 여러 곳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 생필품을 보내줘서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30대 청년들은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거리에서 봄의 기운을 느끼고 싶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참고 있다. 출퇴근을 빼면 좀처럼 숙소 바깥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숙소는 대구 맛집이 모여 있는 중앙로 한가운데에 있지만,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이들은 자신의 감염이 불러올 후과를 걱정한다. 의료진 감염은 병원을 마비시킨다. 동선에 있었던 가게가 잠시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이유진 간호사는 "저희는 봉사를 하러 왔고, 숙소나 먹을 것은 원래 저희들이 다 알아서 해야 하는데, 이렇게 좋은 숙소를 제공해주신 게스트하우스 대표님께도 참 감사하고, 응원 물품을 지원해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맛집에 가고 싶고 돌아다니고도 싶은 마음을 기자에게 애써 감춘 건 '봉사하러 왔는데, 폐를 끼쳐선 안 된다'는 각오 때문일 것이다.

22일 만난 남녀 간호사 3명은 지난 2일부터 대구광역시 영남대병원에서 8시간씩 3교대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세 간호사의 공통점은 '퇴직한 상태'라는 것. 일정한 수입도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그저 "내가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다면 보람찰 것 같아서" 땀 찬 방호복을 2시간마다 갈아입고, 환자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병동에서 일하는 이유진(34) 간호사는 퇴직 후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가려다 중국의 코로나 확산 상황 때문에 못 가게 됐다. 이후에 대구에서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호소를 보고 지원, 서울에서 왔다. 호흡기센터 앞에서 문진표 작성 및 환자 분류 작업을 하는 임은희(34) 간호사 역시 퇴직 상태에서 대구로 왔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최영(30) 간호사는 대전에서 근무하며 소방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상황에서 대구로 향하며 사직했다.

기자도 간호사도 마스크를 낀 채 대화를 나눴다. 본래 이유진 간호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자연스레 2명이 더 합석하게 됐다. 자랑스런 청년들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고 싶었지만, 노 터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돕고 다른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모습을 보며, 2014년 4월 진도 앞바다의 잠수사들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응원 '나라에 도움되는 일 해라'"
 
 아프리카 봉사활동 대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로 자원봉사를 왔다는 이유진(34) 간호사.
 아프리카 봉사활동 대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로 자원봉사를 왔다는 이유진(34) 간호사.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 코로나19는 감염력이 강한데 이런 현장에 오는 것 자체가 두렵지 않았는지. 대구에 올 때엔 이미 의료진 감염이 발생한 상태였는데.
이유진(아래 이) "맞다. 사실 정확히 어떤 병인지 몰라서 두렵긴 했는데, 이미 대구 내에서 의료진들이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도움이 된다면, 내가 조심하면 충분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감염병 관리수칙만 잘 지키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임은희(아래 임) "대구에 가서 도와주고 싶은데 자신이 의료진이 아니라서 안타까워 하시는 댓글들도 많이 봤다. 나는 이렇게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 대구에 올 때 가족들에게 말을 하고 왔나.
 "아프리카 의료봉사 간다고 할 땐 반대가 되게 심하셨는데, 대구로 간다고 하니 엄마의 반응이 달랐다. 엄마가 '뉴스에서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걸 봤다, 이왕이면 나라에 도움 되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 하셔서 가족들의 동의를 얻었고 응원을 받으면서 왔다."

최영(아래 최) "저희 어머니도 제가 여기 갈 생각을 한 걸 '멋있다'고 해줬다. 여동생이나 주위 사람들은 미쳤냐고 왜 가냐고 반대가 심했다. 처음 왔을 땐 체계를 잘 몰라 도움될 수 있는 일이 적어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또 소속 병원 없이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원이 날 경우 우리를 보호해줄 제도가 없다는 부분도 걸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할 수 있는 일도 늘었다. 새로 온 사람들은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다."

 "가족 반대가 엄청 심했다. 특히 할머니랑 같이 살기 때문에 할머니가 매일 매일 코로나19 뉴스 보면서 걱정하셨다. 처음엔 무조건 갈 거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다들 걱정하시니까, 사실 오기 전날까지 고민을 좀 하다가 눈 딱 감고 왔다. 매일매일 통화하고 있다. 특히 할머니가 지금도 걱정하신다. 빨리 오라고 하신다."  

"두려웠다... 한 사람 몫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감수"

- 대구에 와서 방호복을 입고 환자 앞에 갔을 때, 두려움이 없었나.
 "환자 얼굴과 내 얼굴 사이에 겨우 마스크 하나가 있다. 거기 의지해서 간호해야 하는데, 환자분이 가래가 그렁그렁 하고, 기침하실 때 두렵긴 했다. 하지만 대구 의료진은 이미 피로도가 높은 상태인데, 내가 한 사람 몫을 해내지 않으면 다른 분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은 감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이제 막 병원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감염 여부도 모르는데 이들을 처음 맞는 역할인 임은희 간호사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나.
 "처음엔 좀 무서웠다. 각막으로도 전파될 수 있다, 이런 뉴스도 있어서 안경까지 끼고 근무하고 있다. 실제 문진을 하면서 '신천지교회에 갔다 온 적이 있는가'에 '아니요'에 체크를 한 분이 다시 와서 자기가 신천지라고 한 분이 계셨다. 그때 좀 놀랐는데, 그 분도 겁이 나셨을 거다. 신천지라면 인식이 너무 안 좋으니까. 그 분은 다행히 음성이셨다."
 
 소방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 대구에 의료봉사를 하러 왔다는 최영(30) 간호사.
 소방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 대구에 의료봉사를 하러 왔다는 최영(30) 간호사.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 최영 간호사가 있는 응급실 상황은 좀 어떤지.
 "응급실을 찾아온 모든 환자들은 먼저 코로나19 검사부터 해야 한다. 보호자는 나가야 하고. 음성이 나와야 안전구역으로 가는데 코로나 검사가 밀려서 결과가 빨리 안 나오면, 보호자는 없지 휴대폰 충전기를 갖고 오질 않았으니 나중에는 전화도 안 되고, 그러면 환자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도 환자인데 아파서 죽겠다' 하는데, 이런 상황이 되게 답답할 수 있다."

- 피로도는 어떤지. 예전 병원 근무 때와 지금의 업무 강도를 비교한다면?
 "다행히 2시간 방호복 입고 나서 휴식 시간을 준다. 정확히 안 될 때도 있지만. 원래는 환자 식사하고 대소변 치우는 것은 간병인이나 조무사들이 도와주는데, 지금은 격리된 구역에 의료진밖에 없기 때문에 저희가 다 해야 한다. 환자를 들고 옮길 때 에너지 소모가 크더라. 마스크를 오래 끼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다. 한 명만 옮겨도 머리가 띵 하다. 하지만 다행히 휴식시간이 보장돼서 견딜 만하다.

방호복을 2시간 입고 나서 벗을 때면 머리도 젖고, 마치 물 속에 빠졌다가 걸어나오는 느낌이다. 물에 흠뻑 젖어 있다. 방호복을 벗으면 되게 추운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상황에 따라 시간이 짧아질 때도 있고, 더 길어질 때도 있다. 엊그제부터 새로운 방호복이 제공돼 입어 봤는데 통기성이 좋았다. 전에 입었던 것보다 땀이 덜 차고 뽀송뽀송했다."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있는 이유진 간호사. 투습기능이 있는 새 제품이다.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있는 이유진 간호사. 투습기능이 있는 새 제품이다.
ⓒ 이유진

관련사진보기

 
- 의료진 방호복이 부족하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부족한 상태이긴 하다. 그래서 한 번 입고 들어가면 할 수 있는 간호는 다 하고 나오려고 한다. 안 입고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처음보다는 많이 해소된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N95마스크 같은 건 부족한 상황이다."

- 자기도 모르게 감염관리수칙을 까먹고 행동할 때는 없나. 방호복을 입고 벗고 하는 과정에서라든지.
 "영남대병원에 와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감염관리에 대해서 제대로 잘 알려줬다. 저희가 수칙을 어기면 병실이 다 감염되기 때문에 긴장하면서 일하고 있다. 아직 수칙을 어긴 적은 없었다."

- 현재 근무하는 병실의 풍경을 묘사한다면? 돌보다가 퇴원한 환자는 없나.
 "보통 방 하나에 다섯 명이 계신다. 경한 환자는 자기 발로 걸어서 씻을 수 있고 밥 먹을 수 있는 환자들이다. 다른 병실엔 중증 환자분들이 계시고 음압기계들을 설치해놨다. 중증 환자는 밥 먹는 것부터 대변 처리까지 해야 한다. 해드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아직 퇴원하신 분은 못 봤다. 다른 선생님은 퇴원하신 분들 3, 4명 봤다고 했다."

"죽을 억지로 꿀꺽꿀꺽... 아, 정말로 살고싶어 하는구나"

- 돌보는 환자들 중 호전되는 분은 없나.
 "경한 환자는 CT상에서 폐렴이 호전 양상을 보이는 분들이 있다. 반대로 점점 더 나빠지시는 분도 있다. (울컥)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고유량산소요법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숨이 너무 차기 때문에 말하는 것도 되게 힘들어 하신다. 식사로 죽을 해드리면 그 힘든 와중에서도 억지로 끌꺽꿀꺽 삼키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아, 이 사람은 정말로 살고 싶어 하시는구나'하고 느껴지는 거다. 근데 내 자신이 이 사람들 도와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더라. 차도가 안 좋아지면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 노력했는데 차도가 없으면 마음이 상할 때가 있을 것 같다.
 "속상해서 밤에 집에서 울었던 때도 있었고, 그런데 이건 한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니까. 최근에 일일 사망자 통계가 나오면 '저 사람은 고령에 기저질환이 있었대' 하면서 젋은 사람의 죽음보다는 안 놀라는 경우들이 많은데, 나는 병동에 있으면서 몇몇 노인 분들 돌아가시는 모습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의사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데, 그 방법이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고, 모두 힘든 시기지만 스스로의 문을 걸어 잠가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그 분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격리된 곳에 있어 사랑하는 가족들을 못 만난다. 그 분들을 홀로 병실에 두고 나올 때 가슴이 가장 아픈데, (울컥) 혼자서 병과 싸우고 계시는 그 분들을 좀 많이 떠올려주셨으면 좋겠다."

- 환자들은 격리돼 있고 면회가 안 되니, 가족에게 뭘 좀 전해 달라는 등의 부탁을 하진 않는지.
 "가끔 그런 부탁이 있긴 한데, 병실 안으로 들어간 물건은 절대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대신, '집에 안경이 있다' 하면 가족에 연락해서 넣어드리는 정도? 핸드폰은 들고들 계셔서 가족과 연락은 주고받는다. 통제에 잘 따라주신다."

- 식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의료진에 컵밥을 줬다 해서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확진자 병동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은 발열 도시락이라고 해서 그걸 먹는다. 되게 맛있다. 컵밥도 종류가 다양하다. 맛도 있다."
 "가끔 일주일에 한 번씩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기도 했다."

- 숙소가 중앙로에 있고 여긴 맛집도 많은데 식당을 안 가나.
 "스스로 절제하고 있다. 못 돌아다닌다. 필요할 때만 최소한으로 나간다. 동성로는 한 번 지나가 봤다. 식사는 제공해주신 컵밥 등을 먹는다. 각자 방에서 먹거나 서로 쉬는 시간이 맞으면 여기 사랑방에 모여서 같이 먹고 그런다. 너무 감사하게도 홍삼 같은 것까지 보내주셔서 먹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숙소나 식사나 본래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봉사를 왔으니까. 그런데 너무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살면서 뭔가를 이렇게 많이 받아 본 게 처음이다. 감사한 마음뿐이고. 어떻게든 저희들 방식으로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일단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게 돌려드리는 일 아닐까."

 "저희는 겁쟁이라서 못 돌아다닌다. 만약 내가 돌아다니다가 확진나면 역학조사도 할 거고 문 닫는 곳도 생길 거고."      "대구 의료진은 필사적, 응원 많이 해 달라"

- 현재 병원 소속이 아니고 퇴직 상태에서 대구로 온 이들이 많은가.
 "우리랑 비슷한 분들이 많다."
 "저희는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본래 대구에 사는 의료진은 여기는 자신의 삶의 터전이라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 대구 의료진들은 집이 아니라 병원 제공 오피스텔에서 숙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가족들이 와서 밥을 놓고 간다고 한다. 피로도가 높고 훨씬 힘들 것이다. 대구 의료진에게 응원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 언제까지 봉사할 생각인가.
 "무기한?"
 "누구 한 명 떠나면 허전해서 따라서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난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고. 계획에 약간 어려움이 있다. 준비해 왔던 소방직 공무원 5월로 연기돼 있는 상황이긴 한데, 그 시험을 어떻게 할까 갈등도 있고, 일단은 일하면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있다. 근데 일단은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씀들을 해주시니까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이다."

- 코로나19 사태가 진정이 된 뒤, 나중에 대구를 어떻게 추억하게 될까.
 "여기 사랑방에서 모여서 오늘 힘들었던 일을 공유하곤 한다. 그렇게 서로 힘이 많이 되고 있어서, 나중에 대구를 떠올리면 이렇게 함께 땀 흘리며 일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숙소를 제공해주신 게스트하우스 대표님도 참 감사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여러 시민단체에서 응원물품 지원해주신 것 등 기억이 많이 날 것 같다."

 "정. 여기 와서 정이란 걸 가슴 깊이 많이 느꼈다. 숙소 무료 제공만으로도 감사한데 빠진 거 없는지 늘 살펴봐주신다. 또 국민분들이 정말 많은 걸 갖다 주신다. 뜯어서 쓰기도 미안하고. 대구 하면 아픈 추억도 있겠지만 국민들의 따듯한 정이 생각날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오고 싶을 것 같다."

"나는 제일 건강한 상태니까, 가족들 마스크 잘 하고 손 씻기 잘하길"

- 두고 온 가족에 해주고 싶은 말은?
 "가족들이 처음엔 응원해줬는데 갑자기 전화해서 '대구 가지 말래?' 얘기하고. 그동안은 공부를 한다고 몇 달 목포 집에 못 갔는데 이렇게 또 집에 가기 힘든 상황이 되고 보니 되레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여기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나는 제일 건강한 상태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엄마도 가족들도 마스크 잘 하고 손 씻기 자주 해서 같이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항상 연락해서 응원해줘서 정말 고맙고, 정말 보고 싶네요."

 "남을 돕겠다고 여기 와 있는데, 혹여나 엄마 아빠 건강을 못 보살필까봐 가장 걱정된다. 부모님이 감염관리수칙 잘 지켜주셔서 건강하시고 무탈하시길 매일매일 기도하고 연락드리고 있다. 봉사 끝날 때까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병원에 보호자들이 모시고 오는 고령자분들 보면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난다. 나도 사실  할머니 모시고 다니고 해야 하는데, 나 스스로 가족 챙기지를 못해서 죄송하기도 하고.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가족들은 마스크 잘 쓰고 건강 잘 챙기고, 내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강아지 너무 보고 싶고."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대구주재. 오늘도 의미있고 즐거운 하루를 희망합니다. <오마이뉴스>의 10만인클럽 회원이 되어 주세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